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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땐 <명심보감> 등 고전의 가르침이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말'을 논하는 부분이 그랬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꼭 해야 하는 것이 말인데, 옛 선생님들은 왜 '혀는 칼이다', '입을 다물고 혀를 놀리지 말라', '침묵이 금이다'같은 말을 지겨울 정도로 되풀이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미흡하나마 세상 경험이 쌓이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 보니, 그 말들이 참 옳다고 느꼈습니다. 정치하는 사람이나 똑똑한 학자도 말을 잘못 해서 그동안 쌓아 놓은 명성을 잃고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치는 걸 보니, 말의 위력은 정말 대단하고도 위험하단 걸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야말로, 그 사람이 숨기려고 애쓰는 그의 진짜 사람됨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자신이 쓰는 말을 자주 되돌아보고, 그것이 자기가 눈치채지 못한 나쁜 마음됨, 즉 편견과 증오와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건 아닌지, 더 좋은 말로 바꿀 순 없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교과서나 주류 신문에 실리는 말보다는, 대중문화나 삶 속(회사나 관청 등 '공식 생활'보다는 친구 사이 등 '비공식 생활'에서!)에서 쓰는 말을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말들이 우리 삶에 더 큰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요즘 누리꾼들이 종종 쓰는 '품절녀'라는 말이 있습니다. 몇몇 여성 배우가 결혼하자 그 남성 팬들이 안타까움을 담아 쓰는 말입니다. 이제 '찜'한 사람이 있으니 자신의 우상이 될 수 없다는 안타까움입니다. 거기까진 이해하겠으나, 그렇더라도 이런 말을 쓰는 게 옳은지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물건에게 쓰는 '품절'이란 단어를 쓰는 것부터 한 사람을 상품, 또는 경쟁해서 따내야 하는 상금처럼 여기는 생각이 깃들여 있습니다. 특히 여성에게 이런 단어를 쓰니, 힘 있는 자가 모든 여자를 강제로 아내로 삼는 고대 사회의 야만성까지 느껴집니다. 사실 고대 사회에서도 이런 야만 문화가 있는 곳은 흔하지 않았습니다.

 

또 이 말은 결혼한 연예인 부부에게도 심각한 모욕을 줍니다. 그들의 마음은 참된 애정이 아니라 그저 탐욕이며, 영리한 처세술이란 뜻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몇몇 연예인들이 좋지 못한 모습, 위선에 찬 모습을 보인 적이 있기에, 이런 냉소가 나오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그런 몇몇 사람 때문에 다른 연예인들까지 나쁘게 이야기하는 건 잘못된 일입니다. 거기다 우리가 보는 건 그들의 대중 매체 속 모습일 뿐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잘 아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품절녀'와 함께 또 어감이 좋지 않은 말이 '폭탄'입니다. 주로 젊은 남녀가 만났을 때, 자기 마음에 들지 않을 뿐더러 혐오감을 느끼는 상대가 있을 때 이 말을 씁니다. 하지만 사람은 자기 행복을 위해 사는 것이지, 남을 기분좋게 해주려고 사는 게 아닙니다. 물론 미팅 자리에서 마음에 맞는 짝이 생긴다면, 그 때부턴 상대를 즐겁게 해 주기 위해 노력해야겠지요.

 

하지만 아직은 남남인 사람이 자기를 불쾌하게 한다고, 그것도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는 예의범절이나 유머 감각도 아니고, 부모에게 물려받은 소중한 외모를 가지고 '폭탄'이니 하는 말을 쓰며 모욕을 주는 건 매우 비열한 태도입니다. 물론 앞에서는 아닌 척 하고 속으로만 생각하더라도, 이런 사고 방식은 사람의 인격을 떨어트리고 사회를 각박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더구나 아직도 남존여비 풍토가 남아 있는 한국에서 남성들이 더 이상 이 말을 쓰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성들끼리만 쓰는, 정말 '쉬쉬하며' 쓰는 말이지만 '걸레'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다양한 여성을 욕할 때 쓰는데, 경멸과 증오심이 강하게 배어 있다는 점은 똑같습니다. 이 말에는 여성이 자기 말만 들으며, 자기 성욕을 채워 주는 데만 전념하길 바라는 마음이 깃들여 있습니다. 이 욕망에 맞지 않는 여성, 자기 말고 다른 사람과도 관계를 맺는 여성은 따라서 '더러운 여자'가 되며, 더러운 걸 닦는 '걸레'와 다름없게 됩니다.

 

한 사람을 물건에 빗대는 태도도 상스러울 뿐더러, 앞서 나온 '폭탄'처럼 이 말에도, 여성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성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태도도 깃들여 있습니다. 비속어도 민중의 정신이 깃들여 있기에 무조건 더럽게만 보면 안 된다고 하지만, 이런 말은 21세기에 이른 지금 빨리 버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언어는 혼자서 뇌까리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어울려 살기 위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태그:#바른 언어생활을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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