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 서식지 옆에서 포격 훈련이라니
다음날 아침, 다시 대책위 차량을 타고 무건리 훈련장으로 향했다. 직천 초등학교에서 차를 타고 출발한 지 10분도 채 안 되어 무건리 훈련장 경계를 알리는 '경고' 표지판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하나 같이 강압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경고 글들이다. 애써 무시하고 경고판 너머를 바라본다. 훈련장 안에는 숲이 우거져 있지만, 곳곳에 이곳이 훈련장임을 알려주는 거대한 포탄 자국들이 산 여기저기에 상처를 남겼다.
차를 타고 계속 훈련장을 둘러보니, 말로만 들은 550여만 평이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로 넓고도 넓다. 이렇게 넓은데도 국방부와 미군은 아직도 모자라다고, 더 큰 훈련장이 필요하다며 주민들이 가꾸어놓은 삶의 터전을 내놓으라 한다. 대체 무엇을 위한 훈련장 확장인 것일까. 중간에 차를 세운 뒤 함께 온 박석진 상황실장의 간단한 설명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무건리 훈련장 확장은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계획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전략적 유연성이란 주한미군이 한반도의 주둔군으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세계 곳곳의 분쟁지역에 즉각 투입될 수 있는 기동타격군으로 성격을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 위해서 주한미군은 현재의 용산기지를 평택으로 옮겨 전략거점으로 삼고, 대구와 부산을 후방지원기지로 삼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주한미군은 원래 사용하던 전용 훈련장을 폐쇄하고 대신 한국군이 원래 사용하던 훈련장을 미군이 공동으로 사용함으로써 훈련장 관리비용을 한국군에게 대신 부담시키려는 조치도 취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훈련장 확장도 결국 미군을 위한 것이지요. 여기 훈련장을 사용하는 한국군들도 미군에 대해 불만이 많아요. 미군은 훈련만 하고 뒤처리는 한국군이 다 하니까요. 현재 남한에 있는 한국군 훈련장 총 넓이는 여의도의 144배에 달합니다. 국방부는 이것도 모자라서 2억 평까지 늘리려는 계획을 추진 중입니다."
다시 차에 오른 뒤 두 번째로 도착한 곳은 우리나라 천연기념물인 백로 서식지가 있는 곳. 산 중턱에는 백로들이 때를 지어 둥지를 틀고 있고, 하늘에는 십수 마리에 달하는 백로들이 긴 날개를 펴고 유유히 날고 있다.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백로 무리이다. 대책위 위원장님은 이곳에 훈련장이 들어서기 전에는 이보다 훨씬 많은 백로들이 있었다고 한다. 훈련장이 들어서고 포격 연습이 시작되면서 많은 백로들이 무건리 서식지를 떠나가고 있는 것이다. 천연기념물 서식지를 바로 옆에 두고서 포격 연습을 하는 나라가 과연 몇이나 될까. 국방부에게는 천연기념물 보호보다 미군에 대한 훈련장 제공이 더 우선이란 말인가. 갖가지 상념들이 머릿속을 맴도는 순간이었다.
국방부의 '주민은 나몰라라' 정책
그날 오후에는 직접 한 오현리 주민 분의 깨밭을 찾아가서 모를 심는 일을 도와드렸다. 장마철임에도 불구하고 구름 한 점 없이 햇볕이 쨍쨍 내리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모를 심기 위해 낸 이랑 사이사이로 파리들이 떼를 지어 날아다녀 밭일을 하기가 힘들 지경이다. 처음에는 그저 밭에 준 거름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나, 주민 분은 이게 다 무건리 훈련장에서 무단 투기한 음식물쓰레기 때문이라고 한다.
최근에 무건리 훈련장 음식물 쓰레기 처리를 담당하는 업체에서 오현리 마을 주변에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여 물의를 빚었다는 기사가 머릿속에 떠오른다(참고 기사: 오마이뉴스 '파주 무건리 군 훈련장 음식물 쓰레기 불법 투기'). 주민 분은 이번 쓰레기 무단투기의 궁극적 책임은 감독을 소홀히 한 국방부 측에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다음 날에는 다른 주민 분의 농장에 찾아가 보았다. 소, 암탉, 사슴, 염소 등 다양한 가축을 키우는 농장이었다. 농장 한 편에는 아기자기하면서도 소박하게 지은 하얀색 집이 있었다. 농장은 시작한 지는 20년 즈음 됐으나 집을 지은 지는 1년 남짓 되었다 한다. 주민 분이 집을 짓는 과정과 관련된 사연을 들려주었다.
"원래 농가는 지으려면 관청에 신고만 하면 된단 말이야. 근데 어느 날 보니까 과징금을 내라고 통지서가 날아왔어. 왜 그런가 하고 (담당 공무원에게) 물어보니까 집을 짓는 데 동의를 얻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야. 이게 무슨 신고제냐고. 나중엔 벌금고지서도 날아왔어요. 난 그걸 안 내고 버텼는데 말야, 나중에 검찰들이 와서 같이 좀 가자고 그러더라고, 벌금 안 냈다고. 훈련장 확장부지로 지정되고 나서 주민들 재산권 행사를 계속 제약하고, 이런 식으로 갖다가 집 짓는 것도 마음대로 못하게 만들고 말야. 국방부가 주민들에게 주는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녀."
그 분은 주민들이 자기 땅에서 조용히 잘 살고 싶은데 국방부에서 계속 나가도록 괴롭힌다며 화를 냈다. 평화롭게 농사짓는 땅 옆에 음식물쓰레기가 무단투기될 때에는 제대로 된 감독 하나 하지 않으면서, 농장에서 소박하게 살기 위해 집을 짓는 데에는 각종 벌금과 과징금 고지서를 들고 달려드는 것이 오현리를 대하는 정부의 실상이란 말인가. 마음이 무거워지지 않을 수 없었다.
전쟁 훈련의 이익보다 오현리 주민들의 평화권이 우선이다
오현리에서의 3박 4일 취재 일정이 끝나고 돌아가는 날. 다시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다. 부슬비 속에서도 오현리의 들꽃들은 그 본래의 아름다음을 잃지 않고 조용히 바람에 흩날린다. 그 모습이 오현리 주민들의 마음씨를 대변하는 듯이 보인다. 순간 깨밭에서 일하면서 함께 새참을 먹었던 주민 분의 모습, 무건리 훈련장 하늘 위를 날아다니는 백로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새삼 떠오른다. 이 모든 것들이 무건리 훈련장 확장계획이 실현되면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의 울렁거림을 주체할 수가 없다.
서울행정법원은 8일 파주시 주민 39명이 "무건리훈련장의 확대는 해당지역 주민을 차별하고 한반도 전쟁을 도발하는 것"이라며 국방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주민 패소 판결을 내렸다. 판결 내용에는 "훈련장 확장으로 인해 확보되는 공익이 침해되는 사익보다 크다"는 문구가 포함돼 있다. 법원의 말대로라면 미군이 한국군 훈련장을 사용할 권리가, 오현리 주민들이 자기 땅에서 평화롭게 농사지을 권리보다 우선한다는 것일까.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 너머로 군부대의 녹슨 철조망이 스쳐 지나간다.
에필로그: 오현리의 싸움은 우리 모두의 싸움
서울에 돌아오자 오현리 주민 분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오현리 주민들은 매일 국방부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국방부 앞에 찾아가보니, 한여름의 땡볕이 내리쬐는 아래에서 김종양 대책위 간사가 '국방부는 오현리와의 대화에 나서야 합니다'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서 서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저기에 머리를 민 채 모자를 쓴 젊은 청년들이 국방부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나중에 그들이 오현리 주민들의 1인 시위를 감시하기 위해 파견된 사복경찰임을 뒤늦게 알았다.
그런 식으로 경찰은, 국방부는, 그리고 정부는 오현리 주민들의 저항을 소리 없이 억누르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현리는 거기에 굴하지 않고 싸우고 있었다. 첫 날 촛불문화제에서 "우리가 끝까지 하나가 되어 투쟁하는 길밖에 없습니다"며 목소리를 높이던 주민 분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오는 듯했다.
오는 8월 1일이면 오현리 주민들의 '무건리 훈련장 확장 저지 촛불문화제'가 1주년을 맞는다. 무건리 훈련장 확장은 단순히 오현리 주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주민들의 터전을 빼앗는 것을 넘어서서, 무건리 훈련장 확장은 분단선을 둘러싼 군사시설을 증가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현리 주민들의 투쟁은 한반도 전체의 평화와 연결되어 있는 투쟁이다. 오현리의 싸움에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함께 해야 하는 이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