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말리는 하루가 간신히 지나갔습니다. 어제(21일)는 경찰측이 공장에 있는 농성노동자들에게 헬기로 수도 없이 최루액을 뿌려댔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헬기가 최루액을 뿌려대고 있습니다. 작업복 한 장 달랑 걸친 노동자들에게 말입니다. 지난 주까지 비바람을 있는 그대로 맞더니, 이젠 따가운 최루액과 햇볕이 우리 남편들을 타들어가게 합니다.
저 역시 피곤과 긴장감으로 얼굴에 알러지가 생겨서, 눈은 붓고 얼굴 곳곳에 붉은 반점이 생기고, 하얀 각질이 일어납니다. 예전의 제 얼굴이 어땠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이 망가졌습니다. 공장 밖에서 애태우는 제가 이 정도인데, 다른 가족들이며 공장에서 농성하고 있는 우리 남편들의 몸과 마음은 얼마나 더 탈이 났을지 짐작하기도 어렵습니다.
장례식장에서 남겨진 가족들을 만났지만...
제 이웃 두 분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뇌출혈로 쓰러진 뒤 돌아가신 엄인섭 조합원은 저희 가족과 한 아파트에서 5년을 지낸 이웃이었습니다. 마주칠 때마다 인사하고 다니던 가족이었습니다. 6살 4살 된 두 아이의 아빠였습니다. 이틀 전 경찰병력이 투입된 날 스스로 목숨을 끊으신 아기 엄마의 남편은 제 남편 바로 앞 책상에서 업무를 보는 노조 간부입니다.
장례식장에서 남겨진 가족들을 만나 뵈었지만,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뭐라 드릴 말이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밖에 없었습니다. 목숨만 붙어있을 뿐인 우리 남편들과 가족들도, 순간순간을 정신 잃지 않으려고 이 악물고 두 발로 간신히 서 있을 뿐입니다.
4살 된 우리 아이를 데리고 왕복 70km가 되는 거리를 천안에서 평택까지 매일 다녔습니다. 노조 간부인 남편이 1월부터 거의 집에 들어오지 못 했습니다. 남편 얼굴을 보고, 촛불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2월 중순부터 매주 한 번씩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다가 5월 9일 가족대책위가 출범한 뒤로 하루가 멀다하고 왕복 70km를 달렸습니다. 이상하리만치 가벼운 마음으로 남편과 저녁 한 끼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공장을 드나들었죠.
그러다 6월부터 회사 관리자들과 용역직원들이 파업 노동자를 비난하며 집회를 열고, 급기야 6월 26일 회사를 침탈하면서 모든 상황은 180도로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공장으로 밀고 들어온 법정관리인과 관리자, 비해고자들이 이틀만에 철수하는 27일 밤에는, 가족대책위 식구들이 심한 공포에 시달렸습니다. 퇴거하는 관리자들이, 농성조합원들 때문에 회사가 파산되어 자기네들도 죽게 생겼다면서 입에 담지 못할 욕을 가족들에게 퍼붓고, 들고 있는 쇠파이프와 물병을 우리들에게 집어던지며 나갔습니다.
그 와중에 우리 아이는 지나가는 회사 사람이 던진 물병에 눈을 맞았습니다. 아이가 지른 비명 소리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눈은 시뻘겋게 충혈되고 부어서 눈 크기가 절반도 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 날 이후로 4살 아이는 용역, 관리자, 경찰이란 말을 입에 달고 다니고 집에서는 쟁반이나 큰 책을 '방패'라고 하면서 경찰을 막고 있겠다 합니다. 집에 있는 모든 장난감을 꺼내와 울타리처럼 줄을 세우고는 경찰 못 들어가게 막는 거라 합니다. 현실에서 아빠를 만날 수 없게 가로막고 방패로 땅을 찍으며 놀라게 한 경찰을 향한 공포와 분노를 이렇게 푸는 걸까요?
오늘(22일) 새벽 2시 40분경엔 급기야 회사 직원들이 가족대책위 천막을 철거해 버렸습니다. 한달 전부터 공장 밖으로 밀려나 공터에 천막을 세워 장맛비를 피해왔는데, 그 공터 주인에게 땅을 임대한 회사측은 어제 철조망으로 공터 사방을 두르더니, 결국 눈엣가시 같았을 우리 가족들의 지붕을 걷어냈습니다.
경찰과 회사측의 공조로 회사 관리자들이 정문을 관리하게 된 뒤로, 지금처럼 비인도적인 회사측의 처사로 가족들이 더 큰 상처를 받고 있습니다. 공장 안으로 들어갔던 음식물이며 의약품은 일체 금지 당했고, 정문 너머로 서로 얼굴이나마 볼 수 있었던 것도 가로막혔습니다.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의 방문도 회사 사람들이 막았구요.
함께 일하던 동료가 적으로 변했습니다
가족들과 농성 조합원들에게 협박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직접 집으로 찾아가 공권력 투입하라는 서명을 하라고 하고, 회사가 건 손해배상청구에 큰 피해를 입을 거라며 압박하고 다녔습니다. "당사자들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정부의 일관된 방관 아래 이렇게 한 공장안에서 수년을 얼굴 맞대고 일해 온 관계는 적으로 돌변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남편들이 테러리스트들인가요? 경찰특공대를 투입해야 할 만큼 위험한 사람들인가요? 3000명의 경찰과 용역깡패들의 손에 끌려 나와야 하는 범죄자들입니까? 회사임원들은 거침없이 이렇게 말합니다.
"공장 안에 있는 1000명 때문에 4500명이 죽어야 하냐." 그럼 우리 1000명과 그 가족들은 죽어 마땅한 목숨이란 말인가요! 1000명보다 4500명이 많으니 1000명을 버리자는 건데,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을 단순한 셈으로 죽이고 살리고 할 수 있단 말입니까. 하루도 조용할 날 없이 크고 작은 사건들이 일어났습니다. 매일같이 분하고 원통하고 슬프고 지치고 아픕니다.
경찰병력이 도장공장 바로 앞까지 진출해있는 상황입니다. 용산 철거민을 진압할 때 특공대가 타고 들어갔던 컨테이너가 제작되었다는 소식이 방금 들어왔습니다. 아니, 사람을 불태워 죽게 만들고, 옥상에서 떨어져 죽게 만든 그 진압방법을 또 쓴단 말입니까. 미친 짓입니다. 제발 중단하십시오. 이제 저희 가족들은 남편을 잃을까하는 두려움에 죽을 것 같습니다. 정말 숨 한 번 크게 쉬지 못하고 시시각각 공장 상황에 발을 동동 구릅니다. 가만히 있어도 남편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납니다. 가슴이 딱딱해지고 목에 멥니다.
상하이차로 매각한 것부터 꼬인 오늘의 사태는 정부가 방조한 결과입니다. 대통령이 나서 주십시오. 경찰병력을 투입해서 농성자들을 해산하려는 시도를 당장 멈춰주십시오. 남편과 만나고 싶습니다. 남편과 한 지붕 아래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