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정선 아우라지
 정선 아우라지
ⓒ 최윤식

관련사진보기


정선의 아우라지강은 그 대단한 이름 값에도 불구하고 정작 찾아가보면 별 볼 일이 없다. 두 개의 시냇물이 합수되는 그저 그렇고 그런 강마을일 뿐이다. 양평의 두물머리처럼 장관의 물천지이길 하나 악소리나는 풍경이 있기를 하나…. 볼 거리를 찾는 여행객으로서는 싱겁기 짝이 없는 여행지이다.

여량은 강마을이다. 오대산 줄기인 발왕산에서 발원하여 노추산을 굽이굽이 돌아 구절리 갓거리로 흘러드는 송천(일명 구절천)과 태백산 줄기인 삼척 동근산에서 발원하여 임계면을 두루 돌면서 구미정의 으슥한 승경을 이루고 반천을 거쳐 유유히 내려오는 골지천(일명 임계천)이 여 곳 여량에 와서 합수된다.

 정선 아우라지
 정선 아우라지
ⓒ 최윤식

관련사진보기


두 물줄기가 아우러진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 아우라지강이다. 강은 별로 크지 않으나 모래밭은 사뭇 넓고 길어 마주보이는 산들이 제법 멀어보이고 희고 검은 강돌들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여름에 큰 물이 나면 자갈밭까지 차오르며 겁나게 쿵쿵거리고 초겨울부터 해동 때 까지 강물은 꽁꽁 얼어붙어 저 건너 싸리골을 한 마을로 연결한다. (유홍준의 우리 문화유산답사기 중에서)

정선 아리랑의 발상지, 아우라지를 찾아간다. 그 아우라지를 찾아가는 길은 숨이 막히게 아름답다. 한 구비를 돌 때마다 막아 서는 발목 잡는 풍경 때문에 속도계는 자꾸 떨어진다. 그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면 길 가에 차를 세우고 한 커트 찰칵! 나중에 보니 이런, 여행 가이드북마다 내가 찍은 그 곳이 그 앵글 그대로 실려 있었다. 내 눈에 예쁜 것은 남의 눈에도 예쁘기 마련.

 정선 아우라지
 정선 아우라지
ⓒ 최윤식

관련사진보기


마침내 아우라지강이 흐르는 여량(餘糧). 이 정겨운 지명 뒤에도 나는 서글픔이 느껴진다. 전라도 산이 곡선의 머언 산이라면 강원도 산은 직선의 앞을 막아서는 산이다. 그런데 이 곳 여량에서는 두 물줄기가 합쳐지면서 산은 몇 발치 물러서 있다. 그래서 제법 너른 비탈 밭에서 나는 곡식으로 식량이 조금 남을만 했다고 해서 여량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이다. 김제평야 지평선 마을 사람들이 들으면 헛웃음만 나올법한 이야기다.

아우라지를 찾아 좁은 진입로를 따라 들어가 보니 장맛비 속에서도 아우라지는 지금 공사중! 그래서 한국의 로렐라이 전설을 안고 있는 아우라지 처녀상은 가까이서 볼 수도 없었다. 대형 중장비는 강 바닥을 헤집고 있어 누런 황토물을 연신 만들어내고 있었고 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제 돌탑들이 강가를 지키고 있었다. 여량역 쪽에서 아우라지 처녀상이 서있는 작은 솔밭으로 넘어가는 강 위에도 새 다리가 걸렸다. 다리 위에 초승달이 떠있는 모습의 새 다리도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지라 건너 갈 수가 없었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백은 낙옆에나 쌓이지
잠시 잠간 님 그리워 나는 못 살겠네.

정선 아리랑 중에서 대표적인 이 가사에 얽힌 사연은 매우 유명하다. 지금부터 100여 년 전 사랑하는 연인이었던 여량리의 한 처녀와 구절리의 한 총각이 동네 사람들 눈을 피해 싸리골에 동백을 따러 가기로 했다. 그런데 밤사이 비가 내려 나룻배가 떠내려 가버렸다. 그래서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바라보게 된 두 사람의 심정을 당시 아우라지 뱃사공이 아라리로 불러냈다. 그 사공이 바로 장구를 잘 쳤던 지 씨, 지장구 아저씨요 노랫말 속에 나오는 올동백을 따러 가기로 했던 아가씨가 처녀상의 주인공이다.

 정선 아우라지
 정선 아우라지
ⓒ 최윤식

관련사진보기


내 기준으로는 개 발에 편자 같은 그 공사 때문에 나도 아우라지 처녀상을 그 안타까운 마음으로 강 건너에서 지켜봐야만 했다. 건너지 못해 발을 구르던 그 아우라지 처녀의 안타까운 마음을 그렇게나마 느끼게 해준 것이 그 공사에 내가 고마워해야할 일이라면 일이겠다.

그 사연말고도 이 아우라지강에 또 하나의 안타까운 현대판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지금부터 40여년 전 초례를 치른 여량의 한 처녀가 강을 건너 시집으로 가는 날. 하객과 친척들이 많은 짐을 나룻배에 싣고 강을 건너다가 무게 중심을 잃고 뒤집히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 때 신부는 가마에서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하고 가마째 쓸려갔다. 그 비극적인 참사 뒤로 해마다 두 세명 씩 이 물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처녀상이 세워진 이후로는 그런 사고가 없었다고 한다.

여기에 왜 저런 새 다리가 필요한지를 나는 모르겠다. 물이 적을 땐 잘 생긴 바위 돌 몇 개를 놓은 징검다리를 폴짝 폴짝 뛰어 건너면 될 것이고 장마 져 물이 불어나면 줄 배 한 척 매어두면 될 터인데... 왜 저렇게 미끈한 새 다리가 필요할까? 번듯한 새 다리를 놓아 아우라지강을 흐르는 이런 안타까운 전설의 한이라도 풀어주겠다는 심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아우라지의 한은 풀어져야 할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이들의 가슴 속에서 매일 매일 확대 재생산되어야 한다.

애꿎은 다리에 시비 걸자는 것이 아니다. 아우라지가 어떤 곳인가? 사람들이 이 산골짜기 까지 찾아오는 것은 세련됨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것이 아닐 것이다. 구절양장의 구절리라는 이름에서부터 팍팍 느껴지듯 가장 오지 산골 마을이니까 그 정취에 젖기 위해 찾아오는 것일 것이다. 여기는 한국의 대표적인 산골 마을 정선 아우라지가 아니던가? 아우라지강은 느껴야할 곳이지 보아야할 곳이 아니다. 가슴이 즐거운 여행지지 눈이 즐거운 여행지가 아니다. 

 정선 아우라지
 정선 아우라지
ⓒ 최윤식

관련사진보기


저 다리 하나만 떼어놓고 보면 나름 미끈하고 세련된 다리라고 봐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아무리 세련된 다리라 해도 이 곳에는 저런 다리가 필요 없고 그런 세련됨은 더더욱 필요하지 않다. 강 가 솔밭 속에 서서 아우라지 강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서있는 처녀상 하나면 족하다.

코펜하겐의 인어 공주상을 생각해보라. 바다를 바라 보고 앉아있는 크지도 적지도 않게 마침맞은 인어공주상. 그 것 이외에 무엇이 또 필요한가? 저 세련되고 우람한 다리 때문에 아우라지 처녀상은 잘 보이지도 않는다. 눈에 띄려면 아우라지 강과 처녀상이 눈에 띄어야지 세련된 새 다리나 서양식 강변 공원이 눈에 띄어서는 안된다고 나는 믿고 있다. 지나침은 차라리 모자람만 못하다는 것을 왜 모르는 것일까?

거대한 돌탑도 그렇다. 아우라지강에 얽힌 가슴 아픈 전설로 마음이 쨘해진 사람들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나씩 쌓아올린 자연발생적인 돌탑이라면 훨씬 아우라지다울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관청이 돈 들여서 하루 아침에 쌓아올린 돌탑은 아무리 커도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감동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아우라지 강가에 파랗게 잔디를 깔고 현대적 블럭을 깐 서양식 공원이 널직하게 만들어 놓았다. 이런 서양식 공원이 바로 옆에 있는 아우라지 강과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산골 아지매의 미니 스커트처럼 내 눈에는 생경하기만 하다.

 정선 아우라지
 정선 아우라지
ⓒ 최윤식

관련사진보기


더욱 한심한 것은 시내물을 건너 강원도 산골 마을들을 이어주는 섶다리를 넓직한 잔디 밭에 만들어 놓았다. 날지 못하는 것은 새가 아니듯이 건너지 않는 것은 다리가 아니다. 대단한 설치 미술 작품일 수는 있어도 다리는 아닌 것이다. 다리가 아닌 다리를 놓아놓은 현대판 코미디를 나는 여기서 보면서 내 표정은 울지도 웃지도 못한다. 줄 배 대신 번듯하고 세련된 다리가 걸리고 넓직한 잔디가 깔린 강변 공원은 내게는 시각적 주객전도(主客轉途)요, 뱀의 발(蛇足)에 다름 아니다.

목포 유달산에 가면 매일 일 년 365일 이 난영의 유행가 <목포는 항구다> <목포의 눈물>이 고장난 레코드 판처럼 반복된다. 제천과 충주를 잇는 박달재에도 박재홍의 <울고넘는 박달재>가 울고 또 운다. 칠갑산 고개 길에도 유행가 <칠갑산>이 나오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라면 아우라지 강 가에서 매일 애절한 정선 아라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하겠다. 내가 갔던 날처럼 부슬부슬 비라도 내려준다면 그 정선 아라리는 나그네의 객수에 불을 지펴 산골 마을의 삶과 애환을 절절이 느끼게 해주지 않을까? 그래야 아우라지가 아우라지이지 않을까?

♪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 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이밥에 고기반찬 맛을 몰라 목 먹나♬
사절치기 강낭밥도 마음만 편하면 되잖소

떴다 감은 눈은 정들자는 뜻이요
감았다 뜨는 것은야 날 오라는 뜻이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 주게♬


#아우라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제 전공은 광고크리에이티브(이론 & 실제)이구요 광고는 물론 우리의 전통문화나 여행 그리고 전원생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궁남지는 유원지가 아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