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를 여행하는 여행자라면 한 번 쯤 기차여행을 한다. 체계적 시스템으로 유명한 인도 열차는 어느새 인도를 대표하는 상징 중 하나가 되었다. 그저 한 번 기차를 타고 유람을 하든, 어쩔 수 없이 기차를 타고 이동을 하든, 인도 여행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체험 관광의 하나가 바로 기차여행인 것이다.
대개의 식민 지배 국가들이 그랬듯, 영국인들 역시 손쉬운 수탈을 목적으로 인도 전역에 철도를 건설했다. 어떤 사람은 인도 경제의 밑바탕이 될 사회간접자본을 선물한 영국 사람들을 찬양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넓은 땅덩이에 그 많은 노선을 건설하다 이름없이 스러진 사람들은 영국인이 아닌 인도 사람들이다. 영국인들은 그들이 완성한 철도로 면화와 곡물을 손쉽게 영국으로 가져갈 수 있었고, 가공된 의류와 소비재는 몇 십 배의 이윤을 붙인채 철도를 통해 다시 인도사람들에게 돌아왔다.
가끔 누군가로부터 제국주의 찬양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들은 이미 본전 챙길 것 다 챙겼으니까 손해볼 것 절대 없다"는 이야기를 꼭 해 준다. 물론 뼈 아픈 일제의 식민지배를 당한 동병상련의 정이 느껴져서이기도 하지만 "세익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는 거만한 그들의 세계관이 비위에 거슬리기 때문이다.
인도의 기차는 그 등급이 천차만별이다. 호화 특급 열차부터 삼등열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카스트와 능력에 따라 사람들은 자기가 탈 기차를 고른다. 인도는 워낙 넓은 나라이기에 특급 열차로 이동을 해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서 거의 모든 열차에는 승객들 편의를 위한 침대칸이 있다. 침대칸은 열차 등급에 따라 침대의 갯수가 다르다. 1등칸은 두 개, 2등칸은 네 개, 그리고 3등칸은 여섯 개의 침대가 있다.
삼등칸을 이용했을 경우의 이야기지만 인도의 철도망을 적절하게 이용하면 비교적 싼 비용으로 인도 각지를 여행할 수 있다. 인터넷이 발달된 지금은 한국에서도 인도 기차를 쉽게 예약할 수 있다.
인도의 특급열차 중에는 라즈다니 익스프레스라는 기차가 있다. 그 옛날 인도의 유명한 왕이었던 라즈다니의 이름을 붙인 열차인데 장거리 특급열차로 유명한 열차이다. 출발 보름 전, 한국에서 예약한 라즈다니. 욕심같아서는 해리포터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객실과 흡사한 1등실을 예약하고 싶었지만 좌석수가 한정된 관계로 안타깝게도 라즈다니의 2등실을 예약했다.
인도의 기차는 여행자의 호주머니 상태에 따라 많은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다. 기차 안에서 특별 대우를 받고 싶다면 승무원들과 친해지면 된다. 나중에 팁을 많이 줘야 할 상황이 생길수도 있지만 일단 그들과 친해지면 상당히 괜찮은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여행객 입장에서 너무 날씬한 쿨리들을 볼 때 그들이 불쌍해지곤 한다. 인도인 치고도 너무 마른 쿨리들이 대여섯개의 짐보따리를 들고 대합실을 헤맬 때가 그렇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들에게 짐을 맏기는 것이 진정으로 쿨리들을 도와주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로 변신한지 얼마 되지 않은 인도지만, 그들의 생활 속에는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스며든 서비스 문화의 내음이 물씬 풍겨난다.
3140Km. 인도 남부 트리밴드럼에서 수도 델리까지 거리이다. 라즈다니는 꼬박 이틀에 걸쳐 이 거리를 달린다. 특급 열차답게 중간 기착역이 거의 없는 라즈다니.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여행이 될 수 있지만 옆자리 승객을 잘 만나면 의외로 재미있는 여행이 될 수 있다.
샤르마 경위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미국의 FBI와 같은 인도의 CBI 소속 형사인 샤르마씨. 가족들과 남인도를 여행하고 델리로 돌아가는 중이었던 샤르마씨는 앞 자리에 앉은 할머니와 내게 많은 친절을 베풀어 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같은 칸에 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많이 알 수 있게 되는 것이 장거리 기차여행의 특징이다. 닫힌 공간에서 가끔씩 눈이 마주치게 되고, 그러다보면 사람들은 서로에 대한 경계를 풀게 되고 자신을 드러내게 된다. 그래서 어쩌면 여행이란 다른 사람들을 알아가고 이해하는 하나의 과정일지도 모른다.
종착역에 도착한 후 자신들과 인연을 맺었던 옆자리의 승객들과 간단한 작별의 인사를 나눈 사람들이 또다시 정해진 약속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48시간의 기차여행이 나름의 추억으로 간직될 사람들... 나를 포함한 그들은 라즈다니의 추억을 기억 한 편에 고이 접어두고 새로운 여정을 향해 나아간다. 대개의 인생이 그러한 것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