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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독립을 선언하고 집을 떠난 지 두 달이다.

몇 주 전이었다. 동생에게 전화를 했더니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난 믿을 수가 없었다. 막둥이 삼촌에게 전화를 했다. 삼촌은 특유의 욕을 하며 우리 불쌍한 누나라며 말을 잇지 못하셨다. 외할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할머니는 "이것아 한 달을 연락을 안 하니 니 에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지"라며 나무라셨다.

순간 나는 무너졌다. 일단 뛰었다. 어디라도 가지 않으면 엄마에게 가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다. 발걸음이 잘 떼어지지도 않았다. 오열하고 소리 지르며 뛰었다. 그리고 엄마, 아빠가 이혼하기 전 단란했던 옛집으로 갔다. 왜 지금 집이 아닌 그 집으로 갔는지 모르겠다.

작은 방에 동생이 있었고, 그 앞에 엄마가 누워계셨다. 난 달려가 엄마를 안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이불을 들췄다. 아무도 없었다. 동생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누나 뭐해? 엄마 일 나가셨어"라고 말했다.

잠시 멍했다. 순간 구토하듯 울음이 울컥 올라왔다. 펑펑 울며 엄마를 외쳤다. 엄마 냄새가 나는 베개를 붙잡고 꺼이꺼이 울었다. 우는 소리가 내 귓가에 들렸고, 같이 사는 친구가 나를 깨웠다. 꿈이었다.

일어나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우는 날 보며 궁금해 하는 친구에게 왜 우는지 이야기를 해주려고 했으나 그저 난 "엄마가 죽었어. 으앙. 엄마가… 엄마가…"를 연달하며 소리 내어 크게 울기만 했다.

난 엄마가 너무 싫다.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 절대, 절대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 그 여자의 말투, 욕이 반인 잔소리, 변덕, 불같이 화내는 개떡같은 성격, 딸이라고 무시하고 비인격적으로 대하는 무식한 태도, 딸에게 자신의 삶을 투사하는 비주체적인 인생, 불쌍하고 외로운 그 인생을 정령 결코 닮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중학교 때부터 대학 때까지 10년을 집에서, 엄마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쳤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니 감정적인 독립도 할 수가 없었다. 두 달 전에야 고이 모은 100만 원을 들고 일단 서울에 올라왔다. 난 이제 경제적으로 독립했으니 다신 엄마 쪽은 쳐다보지 않겠다고 엄마랑 전화통화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오는 전화는 받지도 않았다.

엄마 번호를 전화번호부에서 지웠다. 지긋지긋했다. 그놈의 잔소리, 그놈의 한풀이. 왜 나한테만 하는 건지 너무 괴로웠다. 엄마랑 상관없는 인생을 살 것이다. 그 여자가 어떻게 되든 난 상관없다. 이젠 그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없는 서울생활은 경제적으론 힘들었지만 마음은 한결 편했다. 스트레스로 인한 탈모도 많이 좋아졌다. 돈을 벌게 되면 날 낳아준 것에 대한 의무로 돈을 약간만 부치기로 마음먹었다. 명절 땐 핑계를 대고 여기서 지내야지 생각했다. 내 마음이 엄마에 대한 원망으로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일단 모든 것을 묻어두고 내 삶을 잘 살아야겠다 마음먹었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 꿈을 꾸게 된 것이다.

꿈 속에서 엄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난 살 수가 없었다. 엄마 없는 삶을 살 자신이 없었다. 엄마가 없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여자가 그렇게 밉고 싫고 용서할 수가 없었는데, 그 여자가 지긋지긋해서 때론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그 여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모든 것이 내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한 달 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다는 게 그래서 엄마의 죽음을 너무나 늦게 알았다는 것에 나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죄책감에 살 수가 없었다. 내가 엄마를 죽인 것 같았다. 여자 혼자 몸으로 10년을 넘게 우리 남매 뒷바라지를 한 그녀를 난 버렸었다. 버리려고 노력했고 결국 버리고 와서는 기뻐했다. 행복해 했다.

근데 원하던 대로 엄마가 사라졌고 어쩌면 큰 보험금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난 살아 있을 수조차 없다. 너무 괴로워서 살아 있을 수가 없다. 엄마가 없는 삶을 살 자신이 없다. 꺼이꺼이 울기만 한다.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죽은 그녀에게, 이미 죽어서 듣지도 말하지도 못할 그녀에게 가능하다면 죽어서 따라가서라도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엄마를 미워해서 너무 미안하다고 나도 너무 힘들어서 그랬다고 용서해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꿈을 깨고 한참을 울고 나서도 이게 생시인지 꿈인지 몰라 멍했다. 반나절을 그렇게 앉아 있다가 밥을 먹고 정신을 차려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난 잘 지내고 있다는 듯 밝은 척 엄마를 불렀고, 엄마는 "이 가시나는 엄마 전화 일부러 피하다가 뭔 일로 전화했냐"며 냉소적으로 전화를 받으셨다.

모녀간의 애틋한 정은 없었다. 그래도 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오래 살아야 해. 내가 나중에 돈 벌면 크루저 여행도 보내줄테니까, 호강할 날이 많이 남았으니까 오래 살아야 해. 명절에 꼭 내려갈게."

엄마는 "어느 세월에" 하면서 여전히 시니컬하셨지만 난 너무 기뻤다. 엄마가 살아 있지 않은가. 속으로 '엄마 죽지 않고 살아 있어줘서 고마워. 엄마가 죽은 게 그냥 꿈이라서 너무너무 다행이야.' 스스로 속삭이며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문자를 보냈다. 내가 생각해도 참 어이가 없다. 친구가 엄마한테 사랑한다고 문자 한번만 하라고 그렇게 부탁을 하고 소삭거릴 때는 절대 못한다고 해놓고선 꿈 한번 꾸고서는 사람이 이렇게 변했다.

다 용서한 건 아니다. 내 안의 원망이 엄마가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로 바뀌진 않았다. 여전히 밉고 싫고 때론 원망하고, 때론 그런 내 마음조차 무시하려고 노력하지만 엄마가 살아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고마운지 축축한 베갯잇과 이불만큼 내 가슴이 따뜻해진 것 같다. 내겐 가족이란 없다고 부정하고 살았는데 없는 건 아닌 것 같다. 없진 않은 것 같다.


태그:#엄마, #가족, #부모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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