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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기 전 김인성의 "KT, 아이폰 도입이 끝이 아니다"를 읽으시면 좋습니다.

 

요즘 이동통신사들, 와이브로(이동형 초고속 인터넷, Wireless Broadband Internet)에는 신경을 쓸 생각이 없나 봅니다. 2006년, 정부로부터 와이브로 사업자로 지정되어 야심에 찬 KT는 공격적으로 단말기를 준비하며 와이브로 사업에 뛰어듭니다. 2007년 말까지 전국 광역시로 커버리지를 넓히겠다는 약속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약속은 2009년 10월 현재에도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KT가 와이브로 장사를 시작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와이브로 커버리지는 서울 권역에서 머무릅니다. 이에 대한 책임을 묻자 "과징금을 물겠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단 1년만에 수도권 망을 완성시켰던 KT가 망을 확장할 능력이 부족할까요?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에서 와이브로 활성화를 저지하고 있는 걸까요?

 

GM의 전기자동차 EV1 1996년 GM이 제작, 리스 형태로 임대된 전기자동차. 1회 충전으로 180km의 거리를 주파한다. 최고시속은 130km이며, 1회 충전에 6.6kw만큼의 비용이 든다. <누가 전기자동차를 죽였는가>2006년작
GM의 전기자동차 EV11996년 GM이 제작, 리스 형태로 임대된 전기자동차. 1회 충전으로 180km의 거리를 주파한다. 최고시속은 130km이며, 1회 충전에 6.6kw만큼의 비용이 든다. <누가 전기자동차를 죽였는가>2006년작 ⓒ 크리스 페인
 

석유를 사용하지 않는, 저비용 고성능 전기자동차 EV1은 우리가 모르는 새 등장했다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습니다. 이 책임은 기득권을 지키려던 기업들과 정부에게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연방정부는 대형 SUV 자동차의 구입을 장려하며 보조금까지 지원했고, 자동차 제조사와 석유회사는 연방정부를 상대로 로비를 했습니다. 석유회사는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는 전기자동차를 없애고 싶었고, 자동차 제조사는 비싼 대형 차량을 팔아서 이익을 챙기고 싶었기 때문이죠.
 

폐기된 전기차, 도로 위의 SUV 전량 폐기된 GM의 EV1, GM이 끝까지 고수하려던 초대형 SUV. 에너지의 관점에서 봤을 때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자동차.
폐기된 전기차, 도로 위의 SUV전량 폐기된 GM의 EV1, GM이 끝까지 고수하려던 초대형 SUV. 에너지의 관점에서 봤을 때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자동차. ⓒ 크리스 페인

 

이런 기득권 놀이의 끝에는 전기자동차의 최후가 있었습니다. 리스된 전기차의 전량을 회수해 폐기하기에 이르렀고, GM은 저연비의 고급 SUV를 마구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전기자동차의 최후가 GM 자신의 최후일 줄은 생각하지 못했을 겁니다. 국제유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고효율 소형차가 인기를 얻기 시작합니다. 일본 자동차회사인 도요타는 전기 하이브리드 승용차를 내놓아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고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비싸고 이윤이 많은 저연비 고급차의 생산에만 집착하던 GM은 도요타와 경쟁할 수 있는 차종이 없었고, 경제성을 생각하는 소비자들은 GM을 외면합니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했던 GM은 이렇게 몰락합니다.

 
현재 KT가 유선전화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거두던 수익을 위협하는 존재가 나타났습니다. 100메가 급의 초고속 인터넷이 대중화되며 '인터넷 전화'가 집전화의 모양으로 상품화되어 소비자에게 보급되었고, 통화료를 유선전화에 비해 획기적으로 인하했습니다. 동사 가입자간의 무제한 무료통화까지 제공했지요. 이 인터넷 전화는 집전화를 필요없게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 전화가 요금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별도로 전화망을 구축할 필요가 없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전화를 구현하기 때문입니다. KT는 뒤늦게서야 변화를 감지하여 인터넷 전화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이미 인터넷 전화 시장은 경쟁사가 주도하고 있었지요.

 

만약 모든 전화가 인터넷 전화로 대체된다면, 더 이상 망 접속료 따위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인터넷 전화는 "인터넷"망을 사용하기 때문에 별도의 망을 구축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소비자는 그저 인터넷 이용료만 매달 꼬박꼬박 내면 아주 값싼 전화를 즐길 수 있지요. 만약, 그 값싼 인터넷 전화를 집 안이 아닌 집 바깥에서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소비자들은 통신비를 많이 아낄 수 있게 될 겁니다.

 

노트북과 PDA를 위해 개발되었던 초고속 휴대인터넷 와이브로. 어째서 한국의 이동통신사들은 '와이브로의 등장'을 무서워하고 있을까요? 해답은 '인터넷 전화'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한국의 이동통신사는 경쟁사간의 '접속료' 명목으로 엄청난 수입을 올리고 있습니다. 같은 통신사끼리는 통화비용이 발생하지 않는 '인터넷 전화'가 와이브로를 통해 대중화되고 "언제 어디서나" 접속이 가능해지게 된다면 여태까지 뜯어왔던 엄청난 '접속료'를 더 이상 꿀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터넷 기업과 이동전화 기업의 합병 소식이 전해집니다. 우리는 이 소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동전화망을 대체할 수 있는 와이브로의 주체인 KT와, 휴대폰 통신망으로 수익을 내는 KTF가 합병이 되었답니다. 두 회사가 하나가 되었으니, 와이브로는 이동전화망의 기득권을 위해 입 막힌 채 묶여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한국의 통신사들은 GM이 전기자동차를 버리던 당시를 재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와이브로를 이용해 값싼 인터넷 전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값이 싸지는 게 두려운" 통신사들은 와이브로 무선인터넷망 구축을 꺼리고 있고, 무선인터넷 이용고객에게는 전화망 기반의 비싼 CDMA 통신만을 강요합니다. 기술의 진보를 가로막아 기득권을 유지하려다 최후를 맞이한 GM을 보고 통신사는 배워야 합니다.


#무선인터넷#인터넷전화#와이브로#아이폰#이동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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