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자동차가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것은 2004년 10월.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은 적극 반대의사를 드러냈으나 소수 경영자들과 당시 참여정부는 쌍용자동차의 '헐값인수'를 승인하였다.
그후 4년 동안 상하이 자동차는 단 한 푼의 기술개발 투자금도 쌍용차에 지원하지 않았고 미국발 금융위기로 불거진 세계 금융위기는 글로벌수요 감소를 촉진함으로써 쌍용차의 자금난을 가속화시켰다. 이에 쌍용차는 2009년 1월 9일 법정관리를 신청하였고 2월 6일 법정관리 신청이 받아들여졌다.
이때까지 쌍용자동차 소속 노동자들은 경영정상화가 느리지만 분명히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졌다. 그러나 그 기대감은 이내 절망으로 뒤바뀌었는데, 법원이 쌍용차 경영정상화를 명분으로 강도높은 살인적 구조조정을 요구한 것이다. 회사측은 쌍용차 총인원의 36%에 해당하는 2646명의 인력감축안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미 노동이 자본에 포섭된 시장경제체제에서 이는 곧 2646명의 노동자들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노조측에서는 고용유지를 위한 자구책으로 3조2교대 형태의 순환근무와 주간연속 2교대제를 도입하자고 제안했으나 이 제안은 사측으로부터 철저히 무시당했다.
결국 노조는 같은 해 4월 15일 84%의 찬성으로 쟁의행위를 가결, 총파업을 포함한 모든 방법을 동원한 구조조정 결사저지 행동에 돌입하게 된다. 그리고 뜨거웠던 그 해 여름, 누구보다 뜨거운 가슴으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살인적인 일방적 해고를 막기 위한 투쟁의 날들을 맞이하게 된다.
그 뜨거운 투쟁의 현장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저 달이 차기 전에>(감독 서세진, 따이픽쳐스 제작)가 12월 15일 안성시립도서관을 시작으로 전국 상영회를 개최하였다. 기자는 17일 경기두 구리시 수택동 구리성당에서 열린 상영회를 찾아가 감상했다. 구리성당이 주최한 '이웃과 함께 하는 겨울밤 영화제'의 마지막 영화로 선정된 '저 달이 차기 전에'는 민주노동당 구리지역위원장과 다큐멘터리 연출을 맡은 서세진 감독, 그리고 관계자와 지역주민들 앞에서 구리에서는 처음으로 상영되었다.
올겨울 가장 추운 날씨 속에서도, 그날 투쟁의 현장을 기억하려는 뜨거운 열정은 한겨울 추상같은 혹한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상영이 되기 전, 성당 미사가 끝나지 않은 관계로 성당을 둘러볼 시간이 있었다. 성탄절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이라 그런지, 성당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하게 성탄 분위기를 담고 있었다.
성당옆에 있는 '평화의 어머니'상은 성모마리아의 외형을 한국의 어머니상에 맞게 살짝 변형해놓은 모습이었는데 푸근한 우리의 전통적 어머니상을 보는 것 같아 이내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상영시간은 8시로 예정되었는데 음향시스템 문제로 조금 지연되었다.
8시 20분쯤이 되어 민주노동당 구리시위원장이 나와 영화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해주었고 영화를 감독한 서세진 감독 역시 단상에 올라와 지역상영회에 대한 간단한 소회를 이야기했다.
그는 "상업영화가 아니라서 대대적인 광고는 할 수 없지만 여기 계시는 여러분들이 영화를 관람하시고 집에 돌아가 포털사이트에서 영화 평점을 좋게 해주신다면 그것이 홍보이자 큰 힘이 될 것 같다"며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감독에 따르면 <저 달이 차기 전에>는 지역상영회를 마치고 내년쯤 개봉 예정이 잡혀 있다 한다. 부디 이 담대한 희망을 담아낸 다큐멘터리가 전국적으로 개봉하여 올 여름 평택에서 벌어진 노동자들의 숨막히는 투쟁의 현장의 속내를 밝혀주기를 희망해본다.
영화는 일반 언론과 미디어에 소개되지 않은 노동자들의 공장점거 16일 동안의 기억을 담아 내고 있다. 감독은 몰래 뒷길을 이용하여 공장에 잠입할 수 있었고 그때부터 노동자들과 투쟁의 현장에 함께 하며 노동자 스스로 '전쟁터'라 불리는 공장 현장의 숨막히는 사실을 기록해 내었다. 2009년 5월 22일 파업시작과 함께 시작된 이른바 '쌍용차 사태'는 7월 22일 옥쇄파업 62일째를 맞이함으로써 노사간의 치열한 대립의 현장으로 그 외연이 확장된다.
거기에 사측과 관리자, 그리고 공권력과 용역들의 합종연횡은 이내 노동자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죽음의 칼춤으로 변질된다. 그들은 볼트, 너트를 이용한 새총과 몸에 접촉할 경우 치명적인 화상을 일으키는 최루액을 투척해가며 파업을 분쇄하려 한다.
노동자들은 부상자와 이탈자가 속출하고 구조조정을 막기 위한 투쟁은 이내 생명을 지키려는 본능적 투쟁으로 전환된다. 물과 음식, 그리고 의료와 전기같은 생필품들이 고갈되가면서 공장을 점거한 노동자들은 점점 사면초가의 위기에 몰리게 된다.
그들은 극한의 상황에서 최소한의 삶의 기제들만으로 간신히 버티어 내고 있었으며 그들을 각성시킨 것은 사측의 기만적 노조분쇄정책과 거듭되는 이간질이었다. 영화속에서 파업 중 노동자가 가장 행복했었던 때는 바로 경찰의 진압용 살수차를 위해 잠깐동안 열어놓은 소화전으로 '5분샤워'를 할 때였다. 그러나 이마저도 8월 3일 단전과 함께 끝기면서 공장은 쌍용차의 미래처럼 시컴한 어둠으로 뒤덮히게 된다.
8월 4일, 그 전날 경찰간부의 공장시찰의 영향이었을까? 대대적인 공권력이 투입되면서 노조는 마지막 투쟁의 순간이 왔음을 직감한다. 언론에서도 경고했듯이 인화물질을 쌓아둔 도장공장에 불이 붙고 만다. 노동자들은 그 불이 번질 경우 대참사가 벌어질 것을 직감하여 화재를 진압하려 애쓴다. 강넘어 불구경하는 전투경찰들 앞에서 말이다.
그리고 주지하는 대로, 노조와 사측은 교섭에 합의를 하였고 폐허같은 공장과 치유될 수 없는 노동자들의 마음의 상처만을 남긴채 끝나게 된다.
과연 그들은 무엇 때문에 목숨을 걸고 투쟁할 수밖에 없었을까? 청춘을 바쳐 20년동안 일한 댓가로? 주말까지 반납해가며 애정을 갖고 일했던 댓가로? 가족을 먹여살리려고 발버둥 치며 자신의 삶을 바친 댓가로? 그들은 그저 시키는 대로 일을 했을 뿐이다. 그러나 소수가 만들어낸 거대한 촌극앞에서 모든 원흉의 댓가는 노동자들이 치러야 했다. 그리고 그 댓가는 해고였으며 이는 노동자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그것을 알기에, 그들은 볼트가 날라오고 최루액이 쏟아지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떨어진 가운데서도, 그들은 돌아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영화의 제목인 <저 달이 차기 전에>는
초승달을 바라보며 저 달이 차기 전에 평화롭게 모든일이 잘 마무리 되고 집으로 귀향하고 싶은 노동자의 푸념어린 말에서 따왔다. 그들이 진정으로 바란것은 보름달 밑에서 동료들과 막걸리 한잔 마음편히 먹는 일이었다.
쌍용차사태는 끝이 났고, 노사합의는 사측에 의해 순식간에 거짓의 보증서가 되었으며 이어지는 건 집행부와 조합원들의 구속사태이다. 일부 조합원들은 회사에 복직했지만 새로운 노동자간의 갈등에 직면해야 했고, 다른 조합원들은 심리적 상흔과 육체적 상처로 괴로워 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드는 의문점은 왜 이땅에선 노동자들에게 막걸리 한 잔 자유롭게 먹을 권리조차 허락하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결국 파업은 끝이 났다. 마지막에 점거를 풀고 내려오는 노동자들은 단순히 회사의 동료가 아니라 뜨거운 피를 나눈 '전우'들이였음에 틀림없다. 수염이 가득하고 우락부락한 사내들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나왔다. 저 달이 차기 전까지, 이땅의 노동자들이 편안하게 막걸리를 기울이며 웃을 수 있는 날을 기원해 본다. 오늘밤은 달이 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