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귀남 법무부 장관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국제앰네스티에서 활동하고 있는 고은태라고 합니다. 작년 아이린 칸 사무총장이 방한했을 때, 수차례 약속을 변경한 후 겨우 만나주시면서 그 큰 회의실에 '의자 하나를 더 놓을 수 없다'하셔서 통역의 자격으로 만나 뵌 일이 있지만, 아마 장관님께서는 기억하지 못하시겠지요.
오늘은 언론에 소개된 장관님의 16일 청송교도소 방문과 관련하여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지난 번 만남과는 달리 국제앰네스티라는 조직도 잠시 떼어놓고, 사형제에 대한 저의 평소 소신도 잠시 접고, 오로지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서 법무행정을 책임지신 장관님께 제 의견을 드리고자 합니다.
비록 법무부의 정부 기관 내 서열이 아주 높지는 않다 하나, 국민을 보호하고 사회의 안전을 확보해야 하는 법무부의 역할은 그 무엇에 비길 수 없이 중요하고, 법무부의 무게는 태산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런 부서를 이끄시는 장관님의 위치 역시 막중함에는 우리 모두 동의할 것입니다. 따라서 장관님이나 법무부의 언행이 이에 걸맞기를 기대하는 것은 국민으로서의 당연한 바람일 것입니다.
이번과 같은 흉악범죄가 발생하면 잘잘못을 가리기 이전에 국민 앞에 사전에 범죄를 막지 못한 점에 대한 반성이 선행되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이번 범죄를 충분히 막을 가능성이 있었다는 언론의 분석이 잇따르고 있는 현 상황에서 조차 장관님께서는 책임을 느끼시거나 사과를 하시기 보다는 다짜고짜 사형집행을 거론하셨습니다.
말로는 범죄를 막을 수 없습니다. 오직 신속하고 엄정한 법 집행만이 사회안전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데도, 장관님께서 청송교도소에서 보여주신 모습은 실망스러웠습니다.
예를 들어 나영이 사건의 범인인 조두순에게 "반성하고 있지요"라 묻고, "반성하고 있습니다"라는 대답이 있자 다시 "반성해야 합니다"라고 대답하셨다는 보도를 봤습니다. 비록 장관님께서 교도행정의 책임자로서 흉악범의 교화에도 관심을 기울이셔야 하는 직위에 있지만, 참 납득하기 어려운 장면입니다. 아무리 추상같은 법무부 장관이라 해도, '반성하라'는 말 한 마디에 반성할 사람이면, 그가 거기 들어가 있겠습니까.
또한 사형집행시설을 설치하라고 지시하셨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사형을 집행하지 못한 것이 시설이 없었기 때문입니까. 대한민국의 법무부에서는 이런 시설 하나를 설치하는 데도 장관님께서 직접 지시를 하셔야 합니까. 사형집행은 법무부의 고유업무이며, 따라서 집행원칙만 정해져도 당연히 시설은 정비되거나 설치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별도로 이런 구차한 지시를 하신 이유가 무엇인지요.
사형의 집행은 법무부 장관님의 고유한 업무입니다. 비록 사형집행이 지난 12년 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사형제도가 남아있고, 현 정부가 사형집행을 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원칙을 정하지 않은 한, 사형의 집행은 상시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법무부의 기본업무입니다.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기초적인 업무임에도 사형집행 가능성에 대해 별도로 언급하신 것은 역시 해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에피소드들에서 제가 느끼는 것은, 법무부가 현재의 치안상황을 심각하게 여기고 이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하고 실천에 옮기기 보다는, 일종의 보여주는 행정을 통해 당장의 민심을 달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입니다. 앞에서 말씀 드렸듯이, 국가기관 내에서 법무부가 가진 특별히 중요한 무게와 그 성격에 비추어 볼 때, 결코 전시행정이 이루어져서는 안되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장관님께서는 지금 행동보다는 말을, 실천보다는 모습을 앞세우시는 것 같아 걱정이 됩니다.
더구나 얼마 전에 헌법재판소가 사형제도에 대한 논의를 국회의 몫으로 돌렸고, 오늘 국회를 책임지고 있는 김형오 국회의장께서 사형집행의 성급한 논의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신 만큼, 법무부로서는 사형제도 자체에 대한 논의에 끼어들기보다는 보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조치에 집중하시는 것이 대한민국의 정부구성의 기본정신에도 부합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제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장관님께 기대하는 것은 겉모습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치안상황을 회복하고 국민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도 효과적인 행정을 펼쳐주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번 사건을 계기로 현재 미해결상태에 있는 각종 흉악사건의 범인을 전원 검거하여 법의 심판을 받게 하고, 수사가 중지된 상태로 있는 각종 성폭력사건이나 여성실종사건들을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서 혹시 그 배후에 잔인한 범죄가 숨어있지 않은지 파악하여 조치하는 것 등이야말로 시급한 일이 아닙니까.
이외에도 법에 무지한 제가 모르는, 중요한 일들이 더 많이 있을 것이 분명함에도 장관님께서는 사형집행에만 매달려 정작 소중한 일들을 놓치고 계시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사실, 현재 장관님께서 처형하려는 사형수들만 해도, 그 대부분이 이전 정권에서 체포하고 기소하여 사형을 받도록 한 자들이 아닙니까. 과연 현 정부 들어서 새로 체포하여 사형을 받은 사형수의 수가 지난 2년이 넘도록 몇 명이나 됩니까. 반면 아직도 잡지 못해 거리를 활보하는 흉악범의 수는 얼마나 됩니까.
굳이 사형에 집착하시려거든, 집행도 문제지만 우선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자유로이 돌아다니는 흉악범들을 검거하시어 이들이 사형선고를 받게 하는 데 노력을 집중해주시는 것이 청송교도소를 방문하시는 것보다는 더 시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시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갇혀있는 살인범들과 활보하는 살인범 중 어느 쪽이 더 우리 사회에 위험한 요소이며, 범죄율을 낮추는 데 걸림돌이 되는 요소입니까.
다시 한번 말씀 드리지만, 우리 모두가 동의해 마땅한 법무부의 태산 같은 무게에 맞도록 부디 당장의 모양새보다는, 그리고 국민의 감정에 영합하기 보다는, 정말로 악독한 범죄자를 색출하고 처벌하여 이들이 사회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고,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올바른 대책들을 만들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 드립니다.
두서 없는 긴 글 죄송합니다. 건강하십시오. 장관님과 법무부의 앞길에 영광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인 www.amnestydiary.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