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나는 6년차 교사다. 작년에는 처음으로 교과전담교사로 아이들을 만났다. 5학년 과학을 가르쳤는데, 지적 호기심이 왕성한 시기의 아이들답게 과학을 좋아하고 잘 따라주어 정말 수업할 '맛'이 났던 1년을 보냈다. 하지만 초등교사의 진정한 묘미는 역시 담임교사 아니겠는가. 40분씩 아이들을 '반짝' 만나고 돌아서려니 학급에서 아이들과 알콩달콩 정을 나누는 일이 몹시 그리워졌다. 그렇게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을 가득 안고서 3월 2일, 드디어 '우리 아이들'을 만났다. 그런데.

 

우리반 아이들은 유난히 아프다고 하는 아이들이 많다. 체육시간이 되면 서너 명은 꼭 몸이 안 좋다며 교실에 남아 있으려고 하고 발표도 잘 하지 않는다. 전담교과 선생님으로부터 다른 반과 비교했을 때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조금 처진다는 소리를 들으면 내가 혼난 것처럼 속상하기도 하다.

 

그러던  3월 어느 날 자기존중감 검사를 했다. 기준치보다 수치가 낮은 학생이 보통 한 학급에 서너 명 정도 나오는데 우리반은 33명 중에 9명이나 기준치보다 낮아 별도의 상담이 필요하다는 결과를 받게 되었다. 우리반 아이들 중에 많은 아이들이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하단다. 자기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것도 나쁘지만, 스스로 자신을 아끼지 못하는 삶 또한 행복하다고 할수 없다. 이를 어쩌나.     

     

우리 학교는 예전에 상담교육과 관련한 연구학교를 운영했다. 연구학교를 할 때의 교육활동들이 이어져서 아직도 운영되고 있는 상담 프로그램이 많다. 마침 집단상담 프로그램에 참가할 학급을 모집하고 있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신청해 보았다.

 

참가하게 될 프로그램은 품성계발 "멋진 우리". 울산광역시청소년지원센터 소속 상담 전문가를 초빙하여 1회에 두 시간씩, 모두 4회기 8시간으로 기획된 품성계발 프로그램이다. 4월 한 달, 매주 금요일마다 우리 아이들은 '마음 속 나'를 알아가는 공부를 함께 하게 된다.

 

4월 첫째 주 금요일. 첫 만남.

 

책상을 뒤로 밀고 교실 가운데 크게 동그라미를 만들어 앉았다. 역시나 아이들은 친한 친구끼리 자리를 붙여 앉는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이라 자기 옆에 남학생이 앉으면 여학생들이 질색을 하고, 남학생은 나도 싫다며 얼굴을 찌뿌려 보인다.

 

"친구들, 어떤 과일 좋아해요?"

"딸기요."

"난 바나나."

"메론, 메론, 메론~!"

 

저마다 좋아하는 과일 이름을 불러댄다. 아이들 말을 받아 전문가 선생님께서 칠판에 쓴 과일 이름은 수박, 산딸기, 바나나. 동그랗게 둘러앉은 아이들을 차례대로 하나, 둘, 셋, 다시 하나, 둘, 셋을 부르며 자기 번호를 알게 된다. 번호가 하나인 친구들은 수박, 둘인 친구들은 산딸기, 셋인 친구들은 바나나.

 

품성계발 프로그램에 참가한 아이들.  아이들이 동그랗게 둘러 앉아 있다.
품성계발 프로그램에 참가한 아이들. 아이들이 동그랗게 둘러 앉아 있다. ⓒ 한나라

 

"지금부터 과일놀이를 할 거예요. 술래가 된 친구는 아무나 한 명 골라서 무슨 과일이 있는지 물어봐요. 그 친구가 과일장수가 되는 거예요. 과일장수가 된 친구는 수박, 산딸기, 바나나 중에서 팔고 싶은 것 아무 거나 말하면 돼요. '산딸기'라고 하면 산딸기인 친구들은 모두 일어나 자기 자리 말고 다른 빈 자리로 가서 앉아야 해요. 자, 시작해 볼까요?"

 

아이들은 이내 흥미를 보인다. 꼭 한 개만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규칙을 알게 된 아이들은 "전부 다"라고 말하기도 하고, 교실은 그때마다 빈자리를 찾아 내달리는 아이들로 들썩거린다. 여학생끼리, 남학생끼리, 친한 친구들끼리 붙어 있던 자리가 제법 섞였다. 개중에는 새 학기 들어 처음 옆자리에 앉아본 친구들도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마음 열기는 벌써 시작되었다.

 

멋진 사람이 되려면

 

"여러분, 멋진 사람이 되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요?

"멋진 외모요."

"재능!"

"돈이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아이들은 가르치지 않아도 현실 속의 잣대를 이미 내면화하고 있다. 이처럼 아이들은 장난스레 얘기하지만 가르치는 교사 입장에서는 씁쓸하기만 한 대답들이 수업을 하다 보면 너무나 잦다.

 

"그런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이번 시간에는 멋진 사람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마음들에 대해 공부해봐요."

"거짓말 하면 안돼요."

"다른 사람을 잘 도와야 해요."

"배려요! 배려하는 사람이요."

도덕도 '공부'하는 우리 아이들은 이미 '정답'을 잘 알고 있다.

 

진실한 마음(정직). 더불어 사는 마음(배려). 다스리는 마음(조절).

 

칠판 가득 쓰여진 글귀. 품성계발 프로그램은 '정직, 배려, 조절'에 중점을 두고 고안되었다. 앞으로 4주 동안 아이들은 진실되게 사는 법,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 자신을 다스리고 절제하는 법을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서 배워나갈 것이다.

 

33명의 아이들 모두가 자신을 소개하는 동안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자기 차례가 끝나면 옆에 앉은 친구와 금방 조잘거리고 다른 친구 얘기를 잘 듣지 않았다. 남학생은 여학생을 지목하고 여학생은 남학생을 지목해야 하는 규칙에 '우~' 하고 싫은 척 하지만, 누가 누구를 지목하는지 자기가 지목하고 싶은 이성친구를 다른 아이가 먼저 하지는 않는지 연신 신경 쓰고, 좋아하는 친구가 누군지 알려진 아이의 차례가 되면 자기 차례도 아니면서 '니 남친 하라'면서 부추기기도 한다. 이런 경향은 역시 여자 아이들 사이에서 심하다.

 

신기한 문방구.

 

"여러분 이번에는 문방구 놀이를 할 거예요. 학습지에 내가 사고 싶은 마음과 내가 버리고 싶은 마음을 한 번 써보세요."

 

아이들은 이내 진지해진다.  몇 가지씩 써내려가는 아이도 있다.

 

다음은 우리 아이들이 사고(갖고) 싶어 하는 마음들이다.

 

약속을 지키는 마음. 공부에 욕심을 내는 마음. 성질대로 하지 않는 마음, 꾸준한 마음. 남을 배려하는 마음. 더 잘하려고 노력하는 마음. 편안한 마음. 남을 먼저 칭찬하는 마음. 좋다, 싫다를 분명하게 말하는 마음. 자신감 있는 마음.

 

아이들이 버리고 싶어 하는 마음은.

 

돈을 쓰고 싶은 마음. 오빠와 싸우고 싶은 마음. 애들이 때리면 똑같이 때리는 마음.  당당하지 못한 마음. 남을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 지는 것을 싫어하는 마음. 욕심이 많은 마음. 조금한 마음. 약한 마음.

 

욕심이 좀 있었으면 하는 아이가 많은 반면에 욕심을 버렸으면 하는 아이도 많았다. 자신감 있고 당당한 마음을 가지고 싶다는 아이들도 많았다. 우리반 아이들의 대체적인 성향이 설풋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아이들은 사고 싶은 마음과 버리고 싶은 마음이 적힌 학습지를 들고 문방구에 간다. 문방구에서는 상담 선생님과 특별히 오늘 하루 문방구 주인이 된 영환이가 학습지에 쓰인 마음들을 하트 모양 포스트잇에 새로 적어서 바꿔 준다. 아이들은 저마다 하트 모양 포스트잇을 소중하게 들고 서로 바꿔보기도 한다.

 

신기한 문방구.  문방구 주인이 된 영환이가 학습지의 내용을 하트 모양 포스트잇에 새로 써주고 있다.
신기한 문방구. 문방구 주인이 된 영환이가 학습지의 내용을 하트 모양 포스트잇에 새로 써주고 있다. ⓒ 한나라

다음 시간에 아이들은 저마다 사고 싶은 마음과 버리고 싶은 마음을 위해 한 주 동안 노력한 것을 얘기해보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비록 4주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이런 기회를 통해 아이들이 자신을 알고 친구를 알고 우리를 좀 더 가까이 알게 되면 좋겠다. 자신을 긍정하고 내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마음도 받아들일 줄 아는 성숙한 사람이 된다면 더욱 좋겠다. 나에게도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사고 싶은 마음과 버리고 싶은 마음을 아이들 속에서 찾아가는 시간이 될 것 같다.


#집단상담#품성계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