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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에서 신촌으로 넘어가는 길가에 위치한 두리반, 대다수의 시민들은 관심이 없어 잘 보지 않거나, 알면서도 모른 척 한다.
▲ 두리반 측경 홍대에서 신촌으로 넘어가는 길가에 위치한 두리반, 대다수의 시민들은 관심이 없어 잘 보지 않거나, 알면서도 모른 척 한다.
ⓒ 박김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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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용역들이 동작동 '정금마을'을 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밤 10시가 넘어서까지 3층에서 회의 중이었던 우리에게 '두리반'의 유채림 선생님이 올라와 전해준 이야기였다. 아주머니 2명이 깡패들에게 묵사발이 되었고, 지금은 용역들과 전국철거민연합이 대치 중에 있다고… 안종려 사장님은 이미 연대하러갔고, 유채림 선생님도 "아무래도 그쪽으로 가봐야 하지 않겠나" 라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말하길, "혹시 같이 가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하면서 힘을 실어줄 사람이 없겠느냐"고.

우리는 선뜻 아무도 나서지 못했다. 회의는 아직 반도 끝나지 않은 상태였고, 또 각자에게는 내일의 생활이 있는 터였다. 그러나 사실, 그것들은 아무래도 좋았다. 늘 '가진 것이 없다'라 습관처럼 말하곤 하면서도 정작 우리는 가진 것이 너무 많았다. 아, 놓칠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해야 더욱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우리 중 아무도 나서질 못했다는 것뿐이다.

다행히 '정금마을'의 상황이 일단락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와, 안종려 사장이 돌아오고 있다는 연락이 왔고, 유채림 선생도 그쪽으로 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됐다. 그제야, 우리도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정말 그러한가? 만약 그날 '정금마을'의 상황이 더욱 나쁜 쪽으로 기울었다면 그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과연 마음 편할 수 있었을까?

사정을 잘 모르시는 분이 더 많은 것이기에 간략히 '두리반'에 대해 적자면, 그곳은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에서 100m도 채 떨어져있지 않은, 동교동 삼거리에 위치한 칼국수집이다. 안종려님은 말 그대로 칼국수집의 사장님, 그리고 유채림님은 안종려 사장님의 남편 되시는 분이다(유채림 님은 소설가이기도 하다).

<두리반>은 2005년부터 장사를 시작했는데, '두리반'이 위치한 동교동 167번지가 2006년 '지구 단위 계획 지역'으로 선정되어 별 수 없이 재개발의 소용돌이 안으로 휘말려들었다. 으레 그렇듯, 사업주 측에서는 말도 안 되는 조건에 이주를 종용했고, 갈 곳 없이 거리에 나앉을 판이 된 '두리반'은 압박 속에서도 버텼다.

그러다 2009년 12월 24일, 용역들에게 단 2시간 만에 모든 집기를 털리고 가게를 빼앗겼다. 그러나 이틀 뒤인 26일, 안종려 사장은 절단기로 용역들이 쳐놓은 펜스들을 잘라내 '두리반' 안으로 들어왔으며, 그날부터 지금까지 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4월 3일이 농성 100일이었으니, 이제는 그보다도 훨씬 지난 셈이다. 그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일일이 말하자면 분량이 너무 많아지겠지만, 그 중에 아마 홍대앞에서 활동하는 (비록 나는 이 표현을 선호하지 않지만) 인디 뮤지션들이 토요일마다 정기적으로 공연을 개최하게 된 것도 사건이라면 사건이었을 것이다.

계속 공연을 하던 우리는, 내친 김에 이번 5월 1일 노동절에 아주 큰 공연을 준비해보기로 마음먹었다. '51+'라 하고, 51팀의 밴드를 모아 노동절에 종일 릴레이 공연을 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기조는 명확하다. "우리는 '두리반'과 GS건설의 정당한 재협상을 원한다."

지난 4월 16일에는 <51+>을 알리기 위한 스트리트 티져가 있었다. 당일날 아침에 인터넷에 공지를 띄워놓고 시간이 남는 친구들을 모아 진행한 이 티져는 생각보다, 꽤 멋있게 진행되었다. 다음 금요일에도 한번의 티져가 더 있다.
▲ <51+> 스트리트 티져 지난 4월 16일에는 <51+>을 알리기 위한 스트리트 티져가 있었다. 당일날 아침에 인터넷에 공지를 띄워놓고 시간이 남는 친구들을 모아 진행한 이 티져는 생각보다, 꽤 멋있게 진행되었다. 다음 금요일에도 한번의 티져가 더 있다.
ⓒ 박김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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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건이 꽤나 투박했음에도, 수많은 밴드들이 자발적으로 참여 의사를 밝혔다. 이미 51밴드는 훌쩍 넘은 지 오래다. 예매를 받기 시작했고, 또 그런 대로 성적이 좋다. 아마 예상대로라면 동교동 167번지에는 동네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릴 것이다.

그러나 이쯤에서, 우리에게는 새로운 고민거리가 주어졌다. 과연 노동절까지 '두리반'은 무사할 수 있을까? 혹여 철거 용역들이 5월 1일 전에 들이닥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금마을' 얘기를 듣고 나서 나는 더욱, 심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싸울 줄 아는 것도 아니고 막을 줄 아는 것도 아니고, 그저 가진 것이라고는 기타치고 북치는 재주밖에 없는 우리들이 막상 철거 용역들이 들이닥쳤을 때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기우가 아니다. 안종려 사장은 최근 못 보던 청년들이 '두리반' 주변을 하루 종일 빙빙 도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또 갑작스레 '두리반' 카페에 '손님'으로 접속한 사람이 많아진 것이, 건설사 측에서 모니터링 하는 것 같다는 제보도 있다. 만약 철거 용역들이 '51+'를 의도적으로 방해하기 위하여 노동절 전에 '두리반'을 친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글쎄… 이에 대해서, 나는 아직 확실한 답을 내리질 못하겠다. 단, '음악=정치'가 아님이 분명한 것처럼 '음악=물리력'이 아님 역시 분명하다. 아마 기타를 치는 것으로는 철거 용역들을 막아낼 수 없을 것이다. 노래를 부른다고 집기를 드러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정말 막아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실제로 막아내지 못할 가능성도 없다 말 못하겠다. 아마 최악의 상황이 온다면, '두리반'에서 '51+'을 개최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그런 국면이 온다고 해도, '51+'는 어떻게든 열린다. 5월 1일은 곧 '51+'의 날이기 때문이다. 막는다고 오지 않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다. '51+'은 어떤 형태로든 열릴 것이다. 그것은 현실의 문제라기보다는, 의지의 문제다. '그들'에게는 불행히도, 우리 의지는 꽤 충만한 상태이다. 이미 많은 이들이 "우리는 '두리반'과 GS건설의 정당한 재협상을 원한다"라는 슬로건에 동참하거나, 동참할 준비를 하고 있다.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서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혹 짓밟힌다 해도 여전히 우리에게는 노래가 남는다. 그리고 기타가 남는다. 그러나 실은 이것이 더욱 질긴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사실 이 글은 '그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장이기도 하다. 유일하게 감사할 것은 '그들'이 우리에게 처음으로 '두리반'이라는 공간과 우리의 관계를 고민하게 만들어주었고 나아가 '정금마을' 같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철거촌에 함께 살아가는 생활인으로서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게 해주었다는 점이다. 당신들이 '두리반'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없애버릴 방법은 아마 가짓수로 백 가지도 넘을 것이 분명하다. 당신들에게는 자금줄도 있고 인력도 있으니까.

그에 비해 우리가 가진 것이라고는 고작 몇 푼 안 되는 기타, 또 몇 푼 안 되는 앰프나 마이크, 북 등이 전부이다(물론 우리에게는 아주 비싼 것들이기는 하다). 그런데 아마 그렇게 당신들이 목표를 달성한다 해보았자, 실상 일이 그리 당신네들 좋게만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당신들과 '다른 힘'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 감이 잘 안 올지도 모른다. 그래, 그렇게 마음대로 해보세요. 곱게 돌아가지는 못할 걸? 협박이냐고? 협박 맞다. 지금까지 당신들이 늘 해왔던 바로 그것.

덧붙이는 글 | 아는 사람이 몇 되지 않겠지만 나는 음악에 관한 사담들을 쓰기 훨씬 이전부터 직접 음악을 만드는 생산자였으며, 또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가능한 활동(act)들을 꾸준히 모색하려 노력해왔다. 그리고 현재는 두리반에서 몇몇 문화생산자들과 <그룹51>이라는 느슨한 조직을 만들어 함께 토요일마다 정기적으로 이런저런 기획들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제 곧 맞이하는 5월의 첫날, 그러니까 노동절에는 <51+>라는 다소 큰 공연을 준비 중에 있다. 그에 관련된 짧은 글을 쓰게 되어 우리 웹진에도 올려둔다. 음악을 사랑하는 독자분들이 많이들 읽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두리반 레포트]는 별 생각없이 지은 코너명인데 썩 니쁘지는 않은 듯 싶다. 비정기적으로, 간헐적으로, 기록하고 싶은 사건들이 벌어질 때 쓰도록 하겠다(그렇게 꾸준한 스타일이 아니라서 정기 기고는 무리다). 혹시 이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51+> 홈페이지(party51.com), 두리반 <자립음악회> 홈페이지(duriban.eq.to), 두리반 홈페이지(cafe.daum.net/duriban)을 참조할 것.

대중음악전문웹진 <보다>, 그리고 <민족21>에도 함께 실린다.



태그:#두리반, #51, #메이데이, #노동절, #자립음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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