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이었다.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처음 보는 남자가 찾아왔다. 서귀포에 위치한 모 리조트의 영업담당인데, 지나가는 길에 들렀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요즘 사정이 안 좋아 고객 모집에 나섰다는 것인데, 내가 일하는 곳이 전국 규모의 환경단체이다 보니 가끔씩 제주도에서 세미나를 개최할 때가 있으면, 그 리조트를 이용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겠다고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에 그를 배웅했다. 그의 뒷모습에 안타까움이 보였다. 우리처럼 가난한 단체까지 찾아올 정도로 상황이 나쁜지는 모르겠지만, 올레 코스 중 가장 아름다운 곳 옆에 위치해 있어 경관도 좋은 곳이 이 정도일 줄 생각지 못했다. 제주도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관광패턴도 바뀌었지만, 아무래도 너무 많은 리조트들이 건설되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이미 농어촌 펜션들이 그런 상황에 처한 것처럼.
자기자본은 20%에 불과, 나머지 빚내거나, 분양 하거나
그래서 현재 제주도내 관광개발사업 중 골프장이 주된 사업이 아닌 '관광휴양 숙박시설' 10개를 무작위로 선정해 조사를 했다. 그리고 도대체 무슨 돈으로 그 많은 리조트들이 만들어지는지 확인했는데, 깜짝 놀랄만한 사실을 알아냈다.
전체 사업비 중 자기자본은 20%에 불과했고, 나머지 80% 정도는 은행대출 또는 해외투자자 유치, 그리고 콘도 회원권 분양 수익으로 채워 넣고 있었다. 이들 사업 이외에 자기 돈만을 들여서 진행 중인 사업은 서귀포 산록도로변의 '롯데관광단지'가 유일했고, 나머지 전부는 남의 돈을 끌어다 개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업이 어떻게 가능할까?
이 사업들 중 자기자본비율이 가장 작은 몇 군데를 언급해야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 돈을 10% 정도밖에 투자하지 않는 것은 제주도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상품화 해 나머지 90%의 수익을 얻겠다는 것 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하나. 'A 타운'. 사업자는 'ㄱ 파크', 'ㄴ 골프장' 등을 운영하며, 'ㄷ 케이블카'를 추진 중인 기업이다. 이곳은 원래 골프장 18홀을 조성할 계획이었으나, 이를 9홀로 축소하는 대신 7층 규모의 숙박시설 986세대를 건설하는 것으로 변경하였다. 전체 사업비는 약 5288억 원이며, 이 중 자기 자본 조달 비율은 9.5%(500억 원)로 조사대상 10개 사업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따라서 나머지 비용 중 무려 77.31%(4,088억)를 콘도분양 및 임대를 통해 조달할 계획이다. 전체 투자비용 중 토지매입비는 7.4%(390억 원)로 자기 자본의 대부분을 땅을 사는데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둘. 'B 휴양지구'. 2~3층 규모의 숙박시설 417세대가 들어선다. 총 사업비 1176억 원 중 자기자본은 11.9%(140억 원)에 불과하고, 분양 및 임대수입이 58.33%(686억 원)에 달한다. 전체투자비용 중 토지매입비는 4.25%(50억 원) 정도로 자기 자본의 절반 정도를 땅을 사는데 사용하고 있다.
위 두 사업의 공통점으로, 사업자는 토지 매입비와 인·허가 처리 비용 정도만 투자하고, 나머지 대부분은 콘도 분양 수익을 통해 외부에서 조달하며 개발 사업을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즉, 땅값만 있으면 사업 인·허가는 개발주의적 제주도정이 각종 혜택을 주면서 빠른 시간 내로 해줄 것이기 때문에, 수 천 억 원 벌어들이기가 어렵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셋. 위 둘보다 심한 곳이 있는데, 땅값도 없으면서 개발사업 허가를 받았다. C 해수욕장 옆을 매립해버린 'E 유원지 조성사업'의 경우, 총 사업비 4212억 원 중 자기 자본 조달비율은 10.7%(450억 원)으로 땅을 확보하는데 드는 토지 매입비(218억 원), 육상부지조성비(79억 원), 공유수면 매립비용(532억 원)을 전부 합한 829억 원보다 적어 자기 돈으로는 땅값도 충당 못하면서 바다를 메워버린 상황이 돼 버렸다. 그런데도 김태환 제주도정은 이를 허가해줬다.
지속가능할지 의문인 개발사업에 환경은 심각하게 훼손
2010년 현재 제주도 관광개발사업 대다수는 골프장, 호텔, 콘도미니엄 건설이며, 몇몇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개발 사업비의 대부분을 회원권 분양을 통해 조달할 계획이다. 자기 돈으로는 땅을 사고, 환경영향평가 용역비를 지불하고,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쥐어주는 정도가 고작이며, 이런 푼돈만 갖고 아무나 개발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김태환 도지사는 이런 개발 사업을 허가해 수 조원 대의 투자유치에 성공했다고 자랑한다. 투자 유치를 위해 인·허가처리 기간을 기존 22개월에서 5~8개월로 대폭 축소하였고, 도비를 들여 사업 부지를 미리 매입해주는 '토지비축제도'를 운영 중이며, 투자를 하면 각종 세금과 부담금을 감면해 주는 '투자진흥지구'로 지정해주는데 더해, 프로젝트 매니저(PM)라는 제도를 통해 '사업구상 단계인 상담에서부터 사업을 마무리해 정상적인 운영시스템을 갖출 때'까지 1투자기업에 1공무원을 지정해 담당'하고 있다.
투자유치를 위한 이런 지원제도가 투자를 적극적으로 이끌어 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자연환경을 심각하게 훼손시키는 것은 분명하다. 사업 인·허가 기간이 대폭 축소됨에 따라 환경영향 검토기간이 그만큼 줄어들었고, 문제를 제기할 틈조차 작아졌다. 또한 개발사업에 전담공무원을 지정해버려, 공무원의 역할을 주민의 공복보다는 개발사업자의 대리인처럼 비춰지게 하였다.
더욱이 현재까지 투자유치실적 중 실제 투자한 금액은 미미하고, 대부분의 개발 사업들은 골프장과 숙박시설 등 토목건설 일색이기에 중앙정부가 이야기하는 IT(정보기술), BT(생명기술)같은 '신성장동력'과는 거리가 멀며, 제주도 산업구조의 문제점을 심화시킬 뿐 질적으로 개선시킬 수 없다.
그동안의 지역개발은 토목건설업을 바탕으로 하는 관광 개발 사업이었다. 그러나 건설경기는 단기간에 반짝할 뿐이고, 골프장은 과잉공급 되었으며, 결국 유사관광지가 많이 생겨나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기존의 토목 건설 사업이 아닌 새로운 지역발전정책이 필요했지만, 김태환 도정은 지속불가능한 토목건설식 관광 개발 사업을 지속했을 뿐이었다. 그 마저도 자기자본비율이 20%에 불과한 빚쟁이 개발 사업들이었다.
개발업자 이익 위해 도민 구성까지 바꾸려
조만간 큰 일이 터질지도 모른다. 올 1월 말 현재 미분양 주택은 전국적으로 11만 9000 가구, 수도권만도 2만 5000 가구에 이른다. 때문에 이미 육지에서는 아파트 과잉공급에 따른 미분양 사태로 인해 주요 건설업체가 부도위기에 몰렸고, 이로 인해 건설업체에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을 해준 저축은행과 같은 금융기관이 망하고 있다.
위 10군데 휴양숙박시설에서 공급하는 호텔 및 콘도 객실 수는 4501실이다. 10개 사업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개발사업을 더하면 1477실이 추가되고, 이미 지어지고 있는 골프장내 숙박시설들을 합하면, 과연 전부 분양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과잉공급 된 제주도내 골프장 회원권 가격도 5년 간 43%나 폭락한 마당에 과잉공급의 여지가 큰 콘도 회원권에 투자할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정해진 가격에 콘도 회원권을 팔지 못할 수 있고, 그러면 개발 사업은 중단되고 제주도 자연환경은 흉물로 뒤덮일 것이다.
중앙정부가 미분양 사태로 부도나는 건설업체를 살리기 위해 각종 대책을 서둘러 발표하고 시행하는 것처럼, 제주도 또한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외국인 부동산 투자자 영주권 부여 제도'를 지난 2월부터 제주특별자치도 특례로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는 현행 제주특별자치도 특별법상 도내 개발사업 시행 승인지역 내 부동산 가운데 휴양콘도나 리조트, 펜션, 별장 등 50만 달러(5억여 원) 이상의 휴양체류시설을 매입하는 외국인 투자자에게 영주권을 부여토록 허용하고 있다. 전국에서는 제주도에서 가장 처음으로 시행하는 것으로, 5년 후에는 영구적인 영주권까지 부여할 계획이란다.
그리고 이 제도를 재빠르게 이용한 사업자가 자기자본 투자비율이 9.5%로 꼴찌를 기록했던 'A 타운'이다. 중국 부호를 전세기로 태워 2박 3일간 현장을 보여준 뒤 총 58건, 306억 원의 분양계약을 했다고 발표했다. 돈을 벌러 한국에 오는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은 3년이 지나면 돌아가야 하지만, 이 제도를 통해서는 집만 사면 아예 영주권을 그냥 주는 것이다. 집을 사는 것 아니라 영주권을 산다고 하는 게 낫다. 더욱이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영주권 취득 후 3년 이상 거주하면 지방선거 투표권이 생긴다. 김태환 도정은 토목건설자본의 이익만을 위해 제주도민의 사회문화적 구성까지 바꾸려 하고 있다.
제주 공간의 디자인과 미래에 대한 주체적 접근권 필요
현재 제주도의 공간 디자인을 대규모로 변형시킬 새로운 개발사업인 콘도미니엄과 리조트 개발사업이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위와 같은 각종 관광개발 사업들은 지하수 과다 개발, 중산간 지역 입지로 인해 불투수(물이 스며들기 어렵거나 스며들지 아니함) 면적 증가와 그에 따른 홍수 발생위험 증가, 자연경관 사유화, 지가 상승, 관광개발사업 중복투자 등 각종 문제점을 발생시킨다. 그리고 그 사업들 대부분이 자기자본비율이 20%에 불과했다. 향후 과잉공급에 따른 콘도 미분양 사태가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이에 대한 제주도청의 입장을 문의하였더니, 투자담당부서의 한 직원은 "관광휴양 숙박업을 규제할 기준이나 방법이 아직은 없다"며 "사업자가 자금조달 방안에 자신감을 갖고 사업허가 신청을 하는 것이며, 우리 또한 사업계획을 꼼꼼히 확인하면서 허가를 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언급한 A 타운의 마케팅 담당직원 또한 "현재도 중국이나 일본에서 해외투자가 많이 들어오고 있고, 앞으로 5~6회 더 해외홍보를 할 예정"이라면서, "모기업 회장이 사활을 걸고 본사까지 제주로 이전하면서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기 때문에 자금조달이 안 될 확률은 없다"고 강조했다.
토목건설업은 근본적으로 지속불가능한 한계를 갖고 있지만, 이와 같이 규제보다는 지원을 주로 하는 지방정부, 수익확보에 강한 확신을 하고 있는 사업자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개발사업들이 지속되고 있다. 그러는 동안 자연환경과 마을 공동체, 그리고 지역사회는 탈출 불가능한 파괴의 소용돌이 속으로 점점 빨려 들어가고 있어서 안타깝다.
덧붙이는 글 | 김동주 기자는 제주환경운동연합 팀장입니다. 이 글은 제주환경운동연합 홈페이지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