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아니면 돼!"
가끔 텔레비전에서 연예인들이 나와 이런 말을 한다. 언젠가부터 이 말이 사람들 사이에 유행처럼 퍼졌다. 사실, 연예인들이 그런 유행어를 만들기 전부터 내 삶은 '무한이기주의'를 표방하고 있었다. 내 가족의 안위와 행복만 지켜진다면 타인의 고달픈 삶에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내가 먹는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그 음식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알지 못했다.
'광우병 괴담'의 근원은 말 바꾼 메이저 신문사들
2008년 당시 내 아이는 5살이었고, 사설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다.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된다고 언론에서 연일 보도를 하고, 사람들이 하나 둘씩 거리에 모여 촛불을 들 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들이 왜 촛불을 들고 거리에 서는지 자세히 알지 못했다. 다만 그들이 왜 나왔는지 궁금했을 뿐이다.
그러다 여기저기서 소위 '광우병 괴담'이라 말하는 것들을 듣게 됐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언론 보도를 찾아보게 됐고, 그것이 왜 '괴담'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지 의아해졌다. 전혀 근거 없는 거짓 이야기가 사실처럼 꾸며졌을 때에야 괴담이라 표현하지 않는가? '광우병 괴담'의 근원지는 도대체 어디였을까?
나는 각 언론사가 2008년 이전 광우병의 위험성에 대해 상세하게 보도한 자료를 보게 됐고 '광우병 괴담'의 진원지가 바로 우리나라의 메이저급 신문사들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들은 몇 해 동안(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시절) 광우병이 얼마나 위험한 병인가에 대해 논평과 사설을 수없이 실었으며, 해외 유명 과학지를 인용하여 기사를 쓰기도 했다. 그런 그들이 정권이 바뀌자마자 자신들이 했던 말을 180도 바꾸어 갑자기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다고 떠들어 댔다. 광우병 괴담은 바로 거기에서부터 시작됐던 것이다.
나는 2008년 5월부터 거리의 촛불로 살았다. 한동안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등에 아이를 업거나, 유모차를 끌고 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시위 진압이 점점 강경하게 이루어지면서 주말에만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나가 밤새도록 광장을 지켰다.
그러나 귀를 꽉 틀어막은 정부는 나의 말에, 국민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회유조차 없었고, '국민 vs. 국민'의 대결구도만 조종했을 뿐이다.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미국산 쇠고기를 국민들에게 먹이지 말라고 했더니, 먹을거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메아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가족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필요했던 '정치적'인 삶
나를 보고 미국산 쇠고기를 반대한다고 '빨갱이',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시위에 참석했다고 '아동학대'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그들에게 나는 반문하고 싶었다.
"제대로 된 음식을 먹자는 것이 정치적인가요?"
그들은 나를 향해 정치적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내 가족의 식탁 위에 오르는 음식 하나하나가 정치의 산물이라면, 그것을 먹는 나는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했다.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내 가족의 건강한 삶을 지키기 위해서 나는 정치적인 삶을 살아야만 했다.
그런데 나는 정치적인 삶을 살지도 못했고, 정치에 관심 따위도 없었으며 국가정책에도 콧방귀만 뀌어 댔을 뿐이다. 나는 해마다 선거철이면 후보들이 남발하는 1회성 공약과 지키지 못할 약속을 들으며 '거짓말쟁이들'이라고 비웃었다.
선거가 끝난 뒤 불법 선거자금을 모으고, 향응을 제공했던 의원들이 언론에 속속들이 공개되는 걸 보면서 '나쁜 놈'이라는 욕했을 뿐이었다. 그들이 나의 목소리를 대변하도록 투표하지 않고, '정치후원금'을 단 한 푼도 내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런 내게 촛불은 정치에 관심을 가지라고 말해 주었다. 촛불 이후 나는 내가 옳다고 믿는 신념 있는 정치인에게 불법 선거자금과 불법 정치후원금을 받지 말라는 의미에서 작은 금액의 정치 후원금을 내기로 결정했다. 내가 지지하는 정당에 가입을 하고 당비를 매월 월 정액으로 약속했다.
바른 정치는 정치인 혼자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믿어주는 유권자, 든든한 후원자가 없다면 언제 어느 때고 청탁과 불법의 유혹에 쉽게 노출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정치인이다. 그들이 바른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나 같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인다면, 청탁과 불법이 없이도 그들의 신념을 펼치는 데 무리가 없을 것이라 믿는다.
촛불은 내가 친환경적으로 사는 길을 열어 주기도 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친환경적으로 사는 삶이 좋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데는 여러 가지 귀찮은 점들이 많았다.
하지만 촛불 이후 환경문제를 고민하게 되면서 세탁세제는 적게 쓰고, 섬유유연제 대신 구연산을 이용한 천연섬유유연제를 만들어 사용하게 됐다.
조선일보가 가르쳐 준대로 사느라 촛불을 끄지 못했다
그런지 지난 10일부터 시작된 <조선일보>의 광우병 2년 기획 기사를 접하면서 나는 참 할 말이 많았다. 어떤 이가 나에게 왜 2008년 중국의 저질고기 통조림이 들어왔을 때에는 촛불을 들지 않으면서 유독 미국산 쇠고기에만 반대를 하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분명하게 대답을 했다.
"법이 정하는 테두리 안에서 중국산 저질통조림 고기는 차단시킬 수 있지만 미국산 쇠고기는 그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도 수입하는 것이기에 본질적으로 접근방식부터가 다르다. 광우병 위험이 있는 쇠고기는 국가에서 합법적으로 수입하는 것이고, 중국산 저질통조림고기는 불법이기 때문에 촛불을 들 이유가 없다."
촛불 2년이 지난 지금, 조선일보의 기사를 보면서 나의 촛불 2년을 돌아본다. 그들은 왜 나 같은 사람에겐 인터뷰를 요청하지 않았을까? 나는 조선일보의 2008년 이전 광우병 관련 기사들을 모두 믿고 있는데 말이다. 나는 그들이 가르쳐 준 대로 행동하고, 실천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촛불을 놓지도 못하고 끄지도 못하고 있는데 말이다.
여전히 내 주변에는 나처럼 촛불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그들은 마치 촛불이 충동적이고 무지하다고 판단하는지 알 수가 없다. 나는 내가 충동적이거나 무지하다고 믿지 않는다. 촛불은 무지했던 나를 깨웠고, 나를 일으켜 세웠으며 앞으로 나아가도록 나를 끊임없이 독려하고 있다. 나에게 단순히 먹을거리 걱정만으로 시작했던 촛불은 들불처럼 퍼져나가 먹을거리가 바로 정치이며, 환경이며, 생활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이것이 촛불의 힘이다.
촛불이 주춤했을 때 나는 심한 자괴감에 빠져 있었다. 촛불이 과연 무슨 힘이 있을까? 내가 촛불을 들었던 것이 시간을 허비한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 변하지 않는 정권을 보며 바람 앞에 맨몸으로 나부끼는 촛불의 생명이 이대로 끝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패배감까지 들었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해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하면서 나의 그런 두려움은 깨끗하게 해소됐다. 아직도 그들은 나와 같이 '생활 속의 촛불'로 살아가고 있으며, 광장에 모였던 촛불들은 세상의 각자의 위치에서 주변을 밝히고 서 있었다. 그것이 촛불의 힘이었다.
내가 변하면 가족이 변하고, 가족이 변하면 주위가 변하고, 주위가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 일개 개인이고 무지하고 모자람 투성이인 내가 2년 동안 이렇게 스스로 변했다면, 세상엔 나같이 변한 사람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나는 세상에 혼자 촛불을 밝혀 들고 있는 게 아니라 내 이웃의 따뜻한 손을 잡고 세상의 변화를 함께 만들어 가고 있다. 그 때문에 나는 오늘도 생활 속의 촛불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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