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작심했다. 글쓰기 아마추어들이 작정하고 덤볐다. <오마이스쿨> '세상과 소통하는 생활․취재글쓰기(광주)'를 듣는 수강생들이 '지리산 둘레길' 취재에 나섰다. 둘레길은 지리산 둘레 300km를 걷는 도보길로, 현재는 남원시 주천에서 산청군 수철까지 70여km가 열려있다. 개통된 지 이제 갓 3년 됐지만, 올레길과 더불어 전국에 걷기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 둘레길 기획 제 1부는 시범구간으로 지정돼 둘레길이 생긴 이래 가장 많은 변화를 겪은 매동마을에 돋보기를 들이댔고 2부에서는 매동~금계구간을 다뤘다.... 기자 주

지리산 주봉인 천왕봉을 한 눈에 바라다볼 수 있는 매동마을은 110여 명의 주민 중 절반 이상이 65세 이상 노인들이 사는 산골 마을이다. 대다수가 고령의 주민들이지만 유구한 마을의 전통과 공동체를 이어가기 위해 주민들은 5년 전 팔을 걷고 나섰다. 

이 마을은 주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으로 2005년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지정됐다. 그 후 매동마을은 계절별 체험 프로그램을 준비해 체험객들을 맞이했다. 봄엔 고사리나 감자 등 농산물을 재배하는 체험, 여름엔 다슬기잡기와 빈집놀이 체험, 가을에는 곶감깎기 목기체험 농산물수확체험 짚풀공예 프로그램 등 계절별 체험프로그램이 이어진다.

짚신삼기는 내가 젤이여~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으로 마을이 바빠지면서 주민들은 새로운 즐거움을 만끽한다. 옛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던 삶의 고단함이 이제는 '전통'이라는 단어로 자부심을 선사했다. 세상은 조상들의 전통을 잇기 위한 '달인'을 필요로 했다. 농사 지으며 한평생을 살아오던 올해 75세인 박용근 할아버지도 시대의 요구에 맞춰 '짚신공예 달인' 체험프로그램 강사로 등극했다.

"짚신 삼는 것을 어찌 말로 설명이 되간디? 지금은 안 되고 낼 아침에 일찍 와 보소."

늦은 저녁 갑작스런 방문으로 짚풀공예에 대해 알려달라고 하자 박 할아버지는 직접 시범을 해야지 어떻게 설명만으로 가능하겠느냐며 시간을 내어 볼 테니 다시 오라며 배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먼저 요로케 지푸라기 4가닥 정도를 가지런히 잘 추려서 새끼를 꼬아야제."

 옛날엔 1년 동안 신을 짚신을 겨우내 삼곤 했지~
옛날엔 1년 동안 신을 짚신을 겨우내 삼곤 했지~ ⓒ 이성옥
다음날 아침 다시 방문하니, 박 할아버지의 달인 솜씨가 눈앞에 펼쳐졌다. 마루에 자리를 깔고 한 움큼 짚단을 옆에 두고 본격적인 시범에 나선 박용근 할아버지의 손길은 아침부터 쏟아지는 빗줄기와 시합하듯 속도를 낸다. 마당 한켠에 할아버지 내외의 반찬으로 이용될 상추 고추 가지 등이 심어진 작은 비닐하우스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할아버지를 응원하듯 장단을 맞춘다.

어느새 달인에게서는 말이 사라졌다. 대신 두 손과 두 발이 능수능란하게 움직였다. 양말을 벗고 양쪽 엄지발가락에 가는 새끼줄을 건다. 짚신의 기본 틀이 될 날이다. 허리춤에도 둘러진 새끼줄에 고정을 시키며 짚으로 엮어 나간다.

짚으로 새끼를 한 발쯤 꼬아 4줄로 날을 한다. 이어 짚으로 엮어 발바닥 크기로 해서 바닥을 삼고, 양쪽 가장자리에 짚을 꼬아 신총을 낸다. 신총은 발등을 덮어주는 부분이다. 이어 뒷꿈치가 될 날을 하나로 모으고 다시 두 줄로 새끼를 꼬아 짚으로 감아 올려 울을 한다. 가는 새끼로 신총을 꿰어 두르면 신기 편하게 된다.

자신있게 열심히 짚신을 삼는 달인의 동작을 따라 메모하는 일이 쉽지 않다. 짚신에 사용되는 낯선 단어에다가 "요렇게 심(힘)을 줘야 총총허니 쪼매라도(조금이라도) 오래 신제…"라며 이렇게, 저렇게를 연발하는 달인의 실력을 표현하는 데 한계를 탓할 뿐이다.

"짚신 만드는 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니제. 일일이 손으로 새끼줄 꼬아서 만들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가버려. 양쪽 1짝식, 1켤레 삼으려면 한 3시간 정도 걸리더라고."

실제 박 할아버지는 짚신 한짝을 삼는 데 꼬박 1시간을 훌쩍 넘겼다. 그럼에도 얼굴엔 싫은 내색이 전혀 없다. 그저 한 켤레를 다 삼아 제 짝을 지어주는 것이 책임을 다하는 것인양 미안해 하셨다. 

박 할아버지는 짚신삼기 체험 프로그램을 요청하면 농삿일이 아무리 바빠도 거절하지 않는단다. 이제는 체험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민박하는 둘레꾼들이 짚신을 만들어 보겠다면 민박집 주인들이 먼저 박 할아버지를 찾곤 한다.

"이 시골에 뭐 볼게 있다고 이렇게 와서 궁금해 할까, 갖고 있는 기술이라곤 그 옛날 못 먹고 못 살던 시절 어떻게든 살아볼려고 짚새기도 삼고 했는디, 이젠 고것이 기술이 되야부렀당께. 허허. 이런 촌로한테도 배울거리가 있다고 찾아와 주니께 내가 더 좋제."

박 할아버지는 매동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7살 때부터 지게지고 농사지고 일을 했다. 박 할아버지의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지면서 작은 손 하나라도 집안일을 돌봐야 했다. 그때 함께 시작한 일이 짚신 삼기였다. 질긴 고무신이 모두에게 혜택을 주진 못해 그 빈틈을 짚신이 메웠다.

때론 남의 집에서 거취하며 일손을 도와줄 때는 그해 겨우내 멍석을 한 개는 만들고 나와야 했다. 여기에 1년치 신을 짚신 2죽(1죽=10켤레)은 기본으로 삼아야 했다. 그러니 사랑방에 모이면 누가 먼저 끝내는지 시합하면서 무료하고 고단한 삶을 달랬다.

체험하면서 가족의 돈독함이 더욱 물씬

 박용근 할아버지가 열심히 짚신을 삼는동안 양남수 할머니께서는 앞마당에 열린 보리수 열매를 따다 할아버지께 한 웅큼 입에 넣어드렸다.
박용근 할아버지가 열심히 짚신을 삼는동안 양남수 할머니께서는 앞마당에 열린 보리수 열매를 따다 할아버지께 한 웅큼 입에 넣어드렸다. ⓒ 이성옥

매동마을이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지정된 후 지난해 기준 한해 70여 팀 1800여 명 정도가 마을을 방문했다. 1사 1촌 교류및 기관단체 간의 협약체결로 단체 방문객들의 방문이 잦다. 더불어 둘레길이 열리면서 마을은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물론 방문객 모두가 체험을 한 것은 아니지만 때론 어린이들이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단체로 체험을 신청한다. 

직장동료들과 함께 한 단체방문객들이 옛 고향의 향수를 듬뿍 담고 돌아가기도 한다. 여러 가족들이 함께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몇 가족이 어울려 마을에서 민박을 한 적이 있었다. 이날도 박 할아버지는 민박집 주인에게서 연락을 받고 바삐 준비해 체험프로그램을 펼쳤다.

"요즘 전국적으로 축제가 좀 많은가? 웬만한 지역축제에는 요런 짚풀공예 체험도 많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체험을 하겄능가.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친 경우가 대부분이제. 근디 여그서는 직접 해볼 기회가 있잖여."

그러나 짚신만들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한번 해 보겠다고 덤비지만 끝까지 마무리하기란 만만치 않았다.

"그나마 젊은 아버지들보다 어린 아그덜이 잘 하더라니께. 새끼 꼬는 데만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경우가 허다하지. 각자 한 켤레 삼는 것은 포기하고 자녀들과 아빠가 한 짝씩 삼아 한 켤레로 완성하니 오히려 사이가 더 돈독해지고 허지."

민박 주인장에서 짚풀공예 강사로

젊었을 때 막노동에서 조선소 노동자까지 안 해 본 일이 없다는 박 할아버지는 요즘 짚신 달인이 되면서 세상사는 재미가 쏠쏠해졌다. 농사지어 아들딸 키우던 박 할아버지에게 농촌체험마을과 함께 새로운 삶이 펼쳐진 셈이다.

둘레길이 열리기 전부터 박 할아버지네 집을 포함해 10여 가구가 매동마을의 활성화를 위해 농촌체험마을 운영에 앞장섰다. 박 할아버지도 '청기와민박'으로 이름짓고 일찍이 민박을 운영하고 있다. 요즘엔 둘레길이 열리면서 찾는 등산객이 느니 사람 구경도 많이 하게 됐다. 덕분에 적적한 마음도 사라지고 마을에 활력이 넘쳐 그 또한 기분좋은 일이란다.

깨끗이 집수리도 했지만 요즘엔 뒤늦게 민박운영에 참여한 마을 주민들을 위해 가급적이면 손님을 양보한다. 대신 짚풀공예 체험요청이 있으면 강사로 활동하시는 게 더 기쁘다. 가끔은 짚으로 엮는 망태기나 멍석만들기 시범도 보인다.

올해 71세인 양남수 할머니 또한 남편 박 할아버지가 짚신 달인으로 활동하시는 게 자랑스럽다. 

 할머니의 응원이 할아버지께는 가장 큰 힘입니다.
할머니의 응원이 할아버지께는 가장 큰 힘입니다. ⓒ 이성옥

"요새 누가 짚신을 신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배우려고 할지 알았겠냐. 배운 것도 없는 할아버지가 어릴 때부터 정말 열심히 사시더니 이런 복도 있네."

양 할머니는 마당 한 켠에 빨갛게 익은 보리수 가지를 한 아름 꺾어 기자에게 내밀었다. 이윽고 보리수 열매를 한 움큼 따서 박 할아버지 입에 넣어 드리며 연신 싱글벙글 웃었다. 

"평생 땅과 함께하면서 자식들 다 키워내서 여한이 없다. 여태 농사만 짓고 할 줄 아는 것 없이 나이만 먹어 가는디, 노인네한테 뭔가 배워볼라고 한단디 얼매든지 해 줘야제? 언제든 생각있으면 미리 연락허고 오소."


#매동마을#짚신삼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