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화산재의 교훈, "지구는 좁다"

지구는 얼마만큼 넓은가? 지구의 면적이나 크기에 관한 수학적이고 논리적인 추리 이전에 생활의 감각으로 지구의 넓이를 가늠해보자. 지난 4월,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의 후폭풍을 상기해본다면 지구는 분명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이다.

아이슬란드 남부에 위치한 에이야프얄로요쿨의 화산 폭발 후, 지하에서 뿜어져 나온 마그마가 고원의 빙하를 만나면서 엄청난 양의 화산재가 발생했다. 화산재가 제트기류를 타고 유럽 전역으로 퍼지면서 화산폭발의 파문은 항공기 무더기 결항 사태로까지 번졌다.

그러나 아이슬란드 발(發) 화산재로 발이 묶인 것은 항공기와 승객뿐만이 아니었다. 항공기로 국경을 넘나들던 수출입품의 발이 묶이면서 화산폭발은 전(全) 지구적인 영향력을 과시했다. 유럽으로 향하는 항공기의 운행 중단으로 케냐의 화훼 업계 뿐 아니라, 네덜란드를 경유하여 케냐산(産) 장미를 수입하는 일본마저 연쇄적으로 타격을 입었다.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를 잇는 세 나라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화산재 앞에서는 무력했던 것이다.
      
지하 깊은 곳에 잠들어있던 마그마의 폭발로 푸른 하늘은 한동안 세계인의 가시권을 벗어났다. 그러나 같은 기간 동안 세계가 목격했던 것은 공기만큼이나 삶의 세세한 곳까지 침투해 있었던 글로벌 자본주의의 복잡한 네트워크였다. 자연재해로 인한 네트워크의 장애는 아이러니하게도 지구촌 곳곳을 연결하는 생산, 유통, 소비의 연결망을 더욱 확연하게 드러냈다.

애인에게 선물하기 위해 장미꽃을 구입하는 사소한 행위조차도 화훼농장이 운영되는 케냐, 자본과 기술을 제공하는 네덜란드, 장미를 수입하는 일본 사이의 네트워크를 더욱 굳건히 연결하는 소비행위인 것이다. 이제 화산재는 사라졌지만 그것이 남긴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지구는 이미 좁다."  
  
그 많던 참치는 다 어디로 갔을까?

지난 3월 18일, 에이야프얄로요쿨 화산이 폭발 기운을 서서히 고조시키고 있을 무렵인 카타르 도하에서는 또 다른 세계화의 편린이 그 균열을 드러내고 있었다. 도하에서 개최된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CITES)'회의에서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참다랑어 보존 안건이 찬성 20표, 반대 68표, 기권 30표로 부결되었다. 이로써 대서양과 지중해에 서식하는 참다랑어 개체의 보존 방편이 저지되었던 것이다.

지난 CITES 회의에서 보존대상으로 지목된 참다랑어의 정식명칭은 대서양 참다랑어 (Atlantic Bluefin Tuna)로, 이는 일본에서 태평양 참다랑어(Pacific Bluefin Tuna)와 함께 '쿠로마구로(黒マグロ)' 혹은 '혼마구로(本マグロ)'로 분류되는 어종 중 하나이다. 대서양 참다랑어는 다시 멕시코만에 산란하는 서대서양 참다랑어(western Atlantic bluefin tuna)와 지중해에 산란하는 동대서양 참다랑어(eastern Atlantic bluefin tuna)로 나뉘는데 지난 CITES 회의에서 언급된 참다랑어는 이동 경로가 유사한 두 아종(亞種)을 포괄한 명칭이다.

그런데 이 대서양 참다랑어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왜 세계는 대서양과 지중해에 분포하는 참치의 보존 여부에 대해 떠들썩해 있었던 것일까? CITES 회의가 있기 한해 전, 대서양 참다랑어 무역 규제안을 제의한 회원국은 지중해를 면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나라, 모나코였다.

모나코가 CITES에 제출한 제안서에 따르면, 산란 자원량(spawning stock) 추정치에 근거했을 때 1957년 이후 약 50년 동안 동대서양 참치 개체수가 74% 이상 감소했으며 특히 서대서양 참다랑어의 경우, 1970~80년대의 남획으로 지난 38년간 개체수가 약 82%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모나코는 참치 개체수 급감의 책임을 세계 참치 어획량(양식 생산량 포함)의 약 80%를 소비하는 일본과 '대서양참치보존국제위원회(ICCAT)'에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례로, 2007년 ICCAT에 보고된 일본의 참치 수입량은 전체 32,356톤이었는데 반해, 총허용어획량(Total Allowable Catch, TAC)은 29,500톤에 불과했다. 즉, 일본인의 참치 편애와 ICCAT의 직무유기가 개체수 급감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던 것이다.

참다랑어의 보존 문제보다 가격 상승에 더욱 민감했던 일본인의 입맛은 무역 규제안 부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표결 하루 전에 회원국을 대상으로 리셉션을 개최하여 회원국 대표단 설득에까지 나선 일본 정부의 노력은 결국 다수 반대표라는 성과로 귀결되었다. 일각에서는 일본 정부와 관련 산업 업계의 로비가 유효했다는 분석도 흘러나왔다.  

그러나 CITES 회의 부결을 자국의 식문화를 수호하기 위한 한 나라의 치열한 성공담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참치를 둘러싼 각국의 이권과 그 연결망은 지구의 모든 수역(水域)을 넘나드는 참치의 이동 경로만큼이나 복잡하다. 대일어업무역의 주력품목인 참다랑어 수출량이 대만에 이어 2위에 이르는 한국, 상어수출입에 관한 이권 문제를 수호하기 위해 일본과 상호지지를 약속한 중국은 반대표를 던졌다. 참치 문제에 관한 한 동아시아는 분명 한뜻이었다.

EU는 결국 찬성표를 던졌지만 모처럼 결집한 동아시아와 달리 유럽은 분열된 양상을 보였다. 어업 무력화에 관한 우려를 표하며 그리스, 스페인, 몰타 등의 지중해 연안 국가가 무역규제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취했던 것이다.

참치 문제의 본질로 돌아가 보자. 그 많던 참치는 다 어디로 갔을까? 이에 대한 답안은 개별 국가, 지역의 경계를 넘어 다시 세계화로 귀착된다. 참치를 가장 많이 먹는 국가는 일본이지만, 참치는 세계 전역의 바다에서 잡힌다. 참치를 잡아 일본으로 공급하는 주체는 비단 대서양, 태평양, 인도양에 면한 국가뿐만이 아니다.

일본인이 선호하는 양질의 참치를 잡기 위해 대형 원양어선이 바다를 누비고 각국의 기술과 자본이 교환된 결과, 1990년대 이후에는 참치양식마저 성공했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양의 참치를 어획하는 한국 역시 참치 생산량의 95%를 남태평양에서 잡아들인다는 사실은, 우리 역시 참치를 둘러싼 글로벌 자본주의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참치를 매개로 한 세계화의 양상

아이슬란드의 화산폭발과 참치 무역규제안을 둘러싼 소동은 언뜻 아무 관계없는 별개의 단편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기실 두 개의 단편은 하나의 메시지로 연결된다.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한 세계화의 네트워크가 '화산재'와 '자원고갈'이라는 균열을 만났다. 균열은 곧 네트워크의 중단 혹은 굴절을 유도했고 아이러니하게도 비정상적인 네트워크의 운행이 그간의 투명했던 연결망을 가시화시켰다.

그로 인해 개별 공간은 자기가 놓인 위치를 새삼 발견하게 된다. 세계라는 전체 속에서 사람, 자본, 기술, 상품, 제도 그리고 문화가 촘촘하게 얽힌 가운데 개별공간은 어느새 글로벌 네트워크의 참여자로 기능한다. 

세계를 연결하는 복잡한 연결망의 목격은 역사학을 향해 새로운 임무를 주문한다. "왜 우리는 여기에 있는가?" "언제부터 우리는 이 '좁은' 지구에 살고 있는가?" 근대 이후 가속화된 자본주의를 설명하기 위해 동원되는 다양한 이론에 함몰되기에 앞서 실증적인 검증이 필요하다. 참치를 둘러싼 자본주의 네트워크를 검증하다보니 어느덧 세계를 유랑하게 된 저널리스트 샤샤 아이센버그의 <스시 이코노미>는 검증의 중요성에 더해 흥미로운 시사점을 제공한다. 

스시는 20세기 후반에 돈, 권력, 사람 그리고 시대의 상호연결성을 규정짓는 문화의 흐름에 따라 발명된 요리이다. 제트비행기 덕분에 부패하기 쉬운 상품들도 대양을 건널 수 있게 되었다. 먼 바다로 나간 어부들은 위성 전화로 어획량을 보고한다. 중개인은 재빨리 제3세계 국가들의 외딴 항만으로 자본을 유입시켜 주문을 확보할 수 있다. 세상이 점점 좁아지면서 유리 진열장 안에서 이루어지는 선택의 폭은 점점 넓어지고 조건도 유리해진다. 그렇다면 스시 전문점에서 식사하는 것은 빠른 속도로 발전해 나가는 지구촌 교역과 동떨어진 일이 아니라 오히려 그 속에 참여하는 일이다.(필자 강조) 간단히 말해서 세계화란, 오랜 세월에 걸쳐 일어났지만 20세기에 가속화된 무역을 통해 지역경제들이 통합하는 과정인 것이다.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거래가 글로벌 자본주의(global capitalism)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았지만, 바다에서 스시 전문점으로 가는 참치의 여정만큼 세계화의 복잡한 역학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은 없다.    

- 샤샤 아이센버그, <스시 이코노미>, 해냄, 2008, 9~10쪽

<스시 이코노미> 표지
 <스시 이코노미> 표지
'스시'는 분명 전통적이고 일국적인 가면을 한 20세기 세계화의 산물이다. 아이센버그에 의하면, 전통을 부정할 수 있는 이유는 스시의 짧은 역사와 끊임없는 변형의 이력 때문이다. 생선의 부패를 막기 위한 발효음식이었던 스시의 기원은 18~19세기의 에도마에즈시(江戸前ずし)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선어를 얹어 만들어지는 오늘날의 스시는 20세기 후반의 냉동기술과 항공기술의 발전으로 비로소 가능해진 산업화의 산물이다.

전통이라는 가면은 경제 활황기 일본 기업 중역들의 세계진출에 동반한 스시가 고급스런 이국음식의 이미지로 소비되는 가운데 조형된 것이다. 이제 세계로 진출한 스시는 다양한 개작(改作)으로 변주된다. 로스앤젤레스로 간 스시는 '캘리포니아 롤'로 변형되었고 스시는 더 이상 단일하지 않다. 

또 한 가지, 참치는 일본적이지 않다. 오히려 세계적이다. <스시 이코노미>에서 기술되듯이 70년대 초 참치의 항공운송이 가능해지면서 참치 소비의 '탈공간성(placelessness)'이 현실화되었다. 일본에서 소비되는 참치의 공급처는 전 세계의 바다가 되었으며 이러한 공간감각의 변화는 참치를 매개로 연결된 세계 각 지역의 구매자, 판매자, 중개인, 취급상, 경매사, 유통업자, 기업가, 요리사, 손님의 경제행위를 재편시켰다.

네트워크 안에서 관철되는 경제행위에 관한 미시사는 때때로 세계체제 자본주의에 관한 고정관념을 철저하게 전복한다. 일본인의 '참치 편애'라는 기호가 스시를 먹는 미국인들에게 온전히 수입된 결과, 미국의 스시 바에서는 참치의 불안정한 가격 변동으로 인한 비효율성에도 불구하고 항상 참치를 제공해야 한다.

경제행위가 이익추구의 본질을 배반하는 국면만큼이나 전복적인 현상은 도처에 존재한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어획량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참치 가격이 곤두박질치면서 수요와 공급에 관한 경제학의 기초적 이론이 부정되었다. 이미 대중화된 유통구조에 기인한 저(低)가격 현상은 수렵형 참치경제를 대량생산, 표준화생산의 산업구조로 전환시키는 '참치양식'의 기술발전을 유도했다.

한편, 20세기 후반의 미일관계는 참치에 관한 한 주변-중심의 역할로 고정되어 있었다. 미국은 우월한 자연조건을 내세운 1차 상품, 즉 '참치'를 공급했고 첨단제품을 수출하는 일본은 미국에서 건너온 참치를 씹으며 분기실적을 축하했다.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은 이렇듯 20세기 참치의 세계사에는 무력한 설명이 되고 만다.         

샤샤 아이센버그의 <스시 이코노미>는 스시를 매개로 연결되는 각 지역에 현미경을 들이댄다. 그의 문장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아이슬란드와 CITES 회의의 교훈 즉, '세계화의 네트워크는 복잡하게 얽혀있으며 지구는 충분히 좁다'는 깨달음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네트워크는 단지 이음매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연결된 국가 간, 지역 간, 개인 간의 다차원적이고 다원화된 파급효과의 경로로 기능하는 것이다. 길 그 자체가 아니라 길을 통해 주고 받는 '영향'의 강도와 내용. 세계화의 균열이 어디선가 후폭풍을 준비하고 있을 지금, 우리는 그것에 대해 얼마나 깊이 인식하고 있는가?


태그:#참치, #대서양 참다랑어, #스시 이코노미, #샤샤 아이센버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