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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엔젤레스 총영사관 옆건물 위로 작년도에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영업 정지 명령을 받은 한국계 미래은행의 간판이 보인다.
▲ 총영사관 로스엔젤레스 총영사관 옆건물 위로 작년도에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영업 정지 명령을 받은 한국계 미래은행의 간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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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침체 이후 LA 한인 타운에서 커뮤니티내 동포간 상호 신뢰가 붕괴되고 있다.

부동산 침체로 야기된 불경기로 인해 한인사회 곳곳에서 불협화음이 터지고 있다. 코리아 타운내 자금 흐름의 젖줄로 알려진 자바(Jobber) 시장은 연일 부도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고 마켓과 식당가는 줄어드는 매상을 막느라 세일에 세일을 거듭하고 있다. 한인 타운 곳곳의 소매매상은 작년보다 올해가 저조하고 8월보다 9월이 더 떨어지는 추세다. 아직 하강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문 광고란은 주택 차압 방지와 융자 소송 변호사 안내 광고로 시작하여 최근에는 개인 파산과 부채 탕감이 대세를 이룬다. 한결 같이 어려워진 경기를 대변하는 내용이다. 더욱 암담한 사실은 향후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와 전망은 퇴색되고 오히려 가난한 미국으로 전락한다는 비관적인 기사가 경제면을 장식한다는 사실이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한인동포들간 상호 신뢰가 깨지고 의심의 눈초리가 더해지고 있다. 자바 시장에서 원단 거래를 하는 수입 도매업체가 중국의 하청공장을 미끼로 소매업체로부터 선금을 받고 일을 진행하다, 어느날 갑자기 제조업체가 생산을 중단했다는 핑계로 수만달러를 챙겨 도주하는 사건이 터졌다. 역으로 의류주문업체가 다량의 오더를 선주문하고 대금결제를 미뤄 피해를 보는 로컬 생산업체도 늘고 있다.

부동산 거래시 실제 매상보다 늘려서 매매가격을 책정했다가 인수인계가 끝난 뒤에 바이어를 속인 것이 들통나서 고소를 당하는 중개인과 매도인의 예는 비일비재하다. 뿐만 아니다. 한국행 영구 귀국자들을 대상으로 한몫 챙겨준다며 은행으로부터 최대한 자금을 빼내어 브로커와 일정비율로 나누는 식으로 돈을 챙기는 수법도 등장했다. 잔고가 없는 수표를 돌려 은행 출금가능액으로 맞춘 뒤 전산 시스템으로 현금을 빼는 일명 시간차 입출금 수법과 상품구매를 이용한 카드깡 나눠먹기 그리고 아예 장기적으로 유령회사를 설립해 창업 대출을 받는 형식으로 돈을 챙겨 한국행에 오르기도 한다.

이로 인해 은행업계로부터 한국인들의 신용도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부동산 차압만 하더라도 그렇다. 부동산 경기가 한창 상승세를 타던 4~5년 전에 로스엔젤레스 인근의 위성도시인 빅토빌 팜데일 밸리 등지에서 무차별 부동산 매입에 나선 사람들 행렬에 어김없이 한국인들도 동참했다. 그런데 막상 주택가격이 급락하고 차압 관리에 나서게 되자 집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는데 그 중 한인들에게 나타난 공통점이 있었다. 한두 채는 기본이고 재융자 방식을 악용해 많게는 다섯채 이상 구매한 사람들이 유독 한인사회에 많았다는 사실이다.

강남 부동산에 일던 투기바람이 그대로 미국에서 재현된 것이다. 아메리칸 드림이 부동산 사재기에서 그렇게 무너진 꼴이다. 시세보다 융자금액이 훨씬 많은 일명 깡통주택(속칭 언더 워터)이 범람하게 되었고 결국은 그 모든 짐을 숏세일(은행에서 기존 소유주에게 빚을 탕감해 주면서 시세에 맞게 제3의 구매자에게 파는 방법)을 통해 은행이 짊어지다보니 은행 부실이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벌몬트 거리에서 바라본 윌셔가 한인타운 모습
▲ 윌셔가 벌몬트 거리에서 바라본 윌셔가 한인타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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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숏세일 거래가 늘어나면서 숏세일 사기도 덩달아 기승을 부리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전체 금융 대출기관들의 연간 손실 금액이 약 3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됐다. 또한 총 5000여 건 이상의 숏세일 사기 제보가 접수된 가운데 이중 변호사가 연루된 케이스가 35% 정도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주택가치가 실제보다 훨씬 낮은 것처럼 꾸며내 은행으로부터 최저의 숏세일 가격을 책정받고 실제 거래에서는 제 가치대로 대금을 주고 받는 수법이다. 거꾸로 주택가치를 실제보다 부풀려서 주택구입자에게서 더 많은 돈을 언더 테이블(암거래)로 받아낸 뒤 은행 등 대출기관에 상환하는 금액을 뺀 차액을 주택소유자와 나눠 갖는 수법도 동원되고 있다. 친인척의 명의를 빌려 본인의 주택을 다시 숏세일로 승계하는 편법 또한 기승을 부리고 있어 부동산 감독국에서 수사에 나섰다고 한다.

도덕과 윤리를 철저히 신봉하는 미국사회에서 경제가 파국으로 치닫고 형편이 어려워 지면서 부정과 부패의 고리가 독버섯처럼 번져나가고 있는 형국이다. 청교도 이민 정신의 근간인 정의와 도덕이 무너지고 있는 양상이다. 금융위기의 여진이 휴화산처럼 남아있는 한 살아남기 위한 생존 경쟁은 더욱 격해질 것이다.

청년실업이 늘고 있는 것 또한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젊은 변호사들마저 벌이가 없어 터전을 잃고 있다. UC계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 중에 맥도날드나 서브웨이 등 레스토랑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례가 빈번하다. 꿈나무들의 벤처기업이 밀집한 실리콘 밸리에서 바라본 미국의 미래 역시 암울하다. 벤처 창업 자금이 대폭 줄어들어 기존의 기업들마저 울상을 짓고 있다. 미국의 미래의 원동력이라 할 수 있는 젊은 성장 동력이 멈추어선 셈이다.

미국에서 전국적으로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인구가 늘고 있는 가운데 한인 교포사회에서 한국으로 영구 귀국하는 역이민이 증가하고 있다. 한국 외교통상부가 최근 발간한 외교백서에 따르면 2009년 한해 동안 미국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영구 귀국한 역이민자는 총 2058명으로 이는 지난 2008년 역이민자수에 비해 24.4% 증가한 것이며 2005년과 비교해서는 무려 56% 늘어난 수치라고 한다.

한국 영화 전용 상영관인 엠팍극장 광고 벽보에 빈사무실 공간 렌트를 안내하는 문구가 적혀있다.
▲ 엠팍 극장 한국 영화 전용 상영관인 엠팍극장 광고 벽보에 빈사무실 공간 렌트를 안내하는 문구가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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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경제가 세계 10위권을 넘보는 현실에서 미국의 성장이 멈추고 패권주의가 무너지는 한편 한국의 경제발전이 살기 좋은 고국으로의 귀환을 늘렸다. 최근 미국으로 향하는 무비자 여행객이 점차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향후 한미 양국의 경기 동향에 맞춰 한인 커뮤니티의 풍향계가 이동함에 따라 교민사회에도 커다란 변화가 나타날 조짐이다.

때마침 한국의 부동산 시장에 대한 거품론이 일고 있다. 그간 지속적인 상승세가 꺾이고 침체기에 접어 든 느낌이다. 평균소득에 대비해 내재 가치와 시세를 대비해 보면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이제 거품이 걷히는 초기단계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다. 일본 부동산이 10년 침체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닮은 꼴로 가고 있다는 이론이 제기되기도 한다.

한국의 주택 융자가 미국의 모기지 방식과 다르기는 하지만 거품 제거라는 차원에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현실이다. 미국 경제의 타오르던 불꽃은 모두 지고 불씨마저 사라진 마당에 다시 타오르기는 커녕 현재 남은 회색 잿가루가 미국 경제의 참모습이라는 이론이 오히려 설득력을 얻고 있다. 부동산은 본래 신성한 주거수단일 뿐 투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아니된다. 부동산의 전성기는 금세기에 다시 찾아오지 않을 듯하다.

글로벌 부동산 시장의 주기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 부동산의 봄날은 어느덧 가고 남은 하락 국면에서 빚어지는 참상을 목격하면서 일본과 미국이라는 견본을 참조용으로 놓고 최악의 답습은 모면하는 길이 남아 있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주조선에도 게재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한인타운, #윌셔가 , #부동산 , #숏세일, #미주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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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하 기자는 미조리 주립대애서 신문방송학을 수학하고 뉴욕의 <미주 매일 신문>과 하와이의 <한국일보>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의 시사 주간신문의 편집국장을 거쳐 현재 로스엔젤레스의 부동산 분양 개발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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