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진화하고 있다. 그동안 여행은 관광의 다른 이름일 뿐이었다. 어떤 곳의 생경한 풍광과 풍물, 풍속을 보고 즐기는 데 만족했다. 여행지에서 손가락을 V(브이)자로 만들고 찍은 사진들만이 남았다. 그저 구경꾼으로 만드는 관광을 여행이라 해왔던 것이다. 어쩌면 여가를 소비하는 또 다른 방편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젠 인문학을 녹여낸 여행이 등장했다. 무료한 일상을 버리고 인문학적 상상으로 도착할 그곳은 바로, 만주다. 만주는 흔히 20세기 초 항일 민족운동의 본거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항일역사 속의 박제된 만주를 넘어서려 한다. 그저 과거역사에만 머문 만주가 아니다. 인문학적 상상력을 더하면, 더 크고 깊은 의미로서 만주가 다가온다. 살아있는 시대정신으로서의 만주, 여전히 유효한 교훈으로서의 만주, 다시 되새겨보아야 할 현재가치로서의 만주, 그런 만주를 꿈꾸는 여행이 시작된다.
이름 하여 <여행과 인문학 2011-만주 기행>. 대구지역의 복합문화공간인 '물레책방'(링크)과 '생명평화마을연구소'가 손을 맞잡고 강좌와 여행을 마련했다. 4주간의 '만주전문가' 강좌와 7박 8일간의 만주 여행으로 꾸며져 있다.
이번 강좌와 여행을 기획한 박선미 생명평화마을연구소 연구원은 "만주는 새 시대를 꿈꾸고 이상향(理想鄕)을 실현하려 했던 인문학적 공간"이라면서 "강좌를 통해 충분히 공부한 뒤 만주를 직접 찾아가서, 여행자 각자가 '인문학적 화학작용'일으키는 촉매제 같은 여행이 되었으면 한다"고 여행의 의미를 밝혔다.
공부하고 떠나는 여행
오는 28일부터 4주 동안 매주 화요일 저녁에 미리 만주를 배울 수 있는 강좌가 열린다. 장소는
물레책방(대구시 수성구). 첫 강좌인 28일에 영남신학대학교 정경호 교수가 '만주와 마을공동체'라는 주제로 강연에 나선다. 1월 4일엔 르포작가인 박영희 시인의 '만주와 문학', 1월 11일엔 계명대학교 이윤갑 교수의 '만주와 근현대의 민족운동', 1월 18일에는 박선미 연구원의 '여행과 인문학' 등이 이어진다.
강좌를 모두 마치고 이틀 뒤인 1월 20일부터 27일까지 만주 땅을 밟게 된다. 먼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하얼빈을 방문한다. 저격 장소와 안중근 기념관를 포함해 인체실험으로 악명이 높았던 731부대, 러시아거리, 송화강 등을 두루 여행한다.
그러고 나서 심양과 연길을 잇는 기차로 이동해, 북한-중국-러시아 국경이 있는 '방천'과 북한-중국 국경이 있는 '도문'에 들른다. 안중근 의사가 머물던 옛터와 '눈물 젖은' 두만강, 봉오동 반일 전적지에도 간다.
그 다음 방문하는 곳은 바로 명동촌과 북간도 일대다. 마을과 공동체가 있었고, 함께 어울려 사는 이상사회를 실현하려 했던 곳이다. 또한 일본에 저항하는 민족정신이 싹트던 곳이자, 무력저항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오래된 미래'로서의 만주
명동촌의 역사를 되짚다보면 왜 '살아있는 시대정신으로서의 만주'가 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우리가 꿈꾸어 봄직 한 '미래' 이상향의 모습이 100년 전 명동촌에 얼마간 '오래돼' 존재해왔다.
명동촌이란 마을은 1899년 김약연, 김하규, 문치정, 남위언 등 네 가문이 화령현 지신향 장재촌 마을에 자리잡았고, 다음해 1900년에 윤재옥 가문이 합류해 자리 잡았다. 19세기말 한반도는 열강의 각축장이었다. 안으로는 조선사회의 부패가 극에 달하고, 밖으로는 일본과 서구 열강의 침략 세력이 밀려오고 있었다. 이런 역사적 상황 속에서 명동촌이 형성된 것이다.
강좌를 맡은 정경호 교수에 따르면 "생명평화가 넘치는 이상적인 공동체 마을을 건설하여 새로운 이상적인 사회를 형성하고자 했다, 이들 가문들은 힘을 합하여 중국인으로부터 사들인 황무지와 임야 등 100만평의 땅을 사들여 투자한 몫에 따라 나누어 함께 일심동체가 되어 돌짝밭을 개간하여 기름진 옥토를 만들고 그들이 살 각각의 서당을 세워 민족의 지도자들을 배출한 뜻 깊은 마을"이라고 한다.
훗날 명동촌 마을에서 시인 윤동주와 송몽규가 나왔고, 민족운동가 장준하, 영화감독 나운규, 통일운동가 문익환 목사와 그의 동생인 문동환 목사가 배출됐다. 정 교수는 "명동촌의 이상촌(理想村)운동은 후일 만주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구국운동의 모태가 되었으며, 해방 후 그곳에서 배우고 훈련한 사람들의 민족의 지도가로서 자기매김하여 사회와 민족에 크게 기여했음을 알 수 있다"고 명동촌의 의미를 밝혔다.
100년 전 형성된 명동촌은 상부상조하는 상생의 공동체였다. 집단농장에서 함께 일하고 함께 추수를 거두어 가난한 이웃을 도왔다. 마치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했던 홍길동의 '율도국'과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다함께 어울려 사는 이상(理想)사회에 대한 열망과 꿈을 잊어버린 현재의 우리에게 잊어버린 '오래된 미래'가 곧 만주라고 할 수 있다.
아름다운 겨울 백두산에서 통일을 떠올리다
여행의 마지막은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 두근거리는 '백두산'이다. 겨울의 은빛 천지폭포는 빼놓을 수 없는 비경(秘境)이다. 정신을 번쩍 들게 할 맑은 소천지의 차가움을 손으로 직접 느낄 수도 있다.
2009년 백두산을 다녀온 장우석 물레책방 대표는 "걸어서 올라가는 길이 무척 아름답다, 그런데 중국은 그 길을 막아 놓았다, 한국인의 접근 자체를 꺼려하는 기색이 역력했다"면서 "애국가의 첫 문장이 '동해물과 백두산이'라고 할 정도로 우리에게 백두산은 정체성 그 자체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근데 굳이 장백산이라 부르고 접근을 힘들게 하는 중국을 보면서 다시 한번 통일을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면서 이번 여행에서 다시 찾아갈 백두산을 떠올렸다.
박선민 연구원은 "여행과 인문학을 통해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는 곳에서 그 시대의 시공간을 상상하고 현재 가슴속에 그려보았으면 한다"면서 "우리에게 만주는 이상향을 꿈꾸는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남녀가 평등하고, 계급이 없고, 조합을 만들고 농사짓고 교육하던 대동(大同) 세상을 만들려던 곳이 있다, 만주는 꿈꾸는 걸 실현할 수 있었던 그런 공간이었다"고 말했다. 여전히 유효한 교훈으로서의 만주, 다시 되새겨보아야 할 현재가치로서의 만주를 발견하는 것이 여행의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뜻이다.
그동안 우리의 근현대사 속에선 만주를 등한시돼 왔다. 하지만 오늘의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과거의 역사가 있었기에 가능하다. 아마 강좌와 여행으로 "내가 여기에 있기까지 풍성한 이야기가 많았구나" 깨달을 기회를 얻게 될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역사도 풍성해지고 '나'라는 존재도 풍성해지는 느낌이 들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강좌와 여행만을 각각 따로 참여할 수도 있다. 28일 첫 강좌는 강의료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관심있으신 분은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자세한 문의는 070-4237-0423, 010-5148-65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