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과 주민이 함께 사는 지역을 만드는 과정 중에 하나인 <무안갯벌 기념품 공모전> 마감일을 얼마 안 남기긴 했지만 지역 예술가들의 참여를 권하고자 지난 3월 17일 1박2일 동안 무안, 목포, 광주를 다녀왔다.
4시간 만에 목포역 도착, 비가 오려는지 하늘이 흐렸다. 봄을 가깝게 해 줄 테니 살짝 들떴다. 점심부터 먹기로 했다. 푸짐한 콩나물 국밥이 뜨끈하게 속을 채워줬다. 무안 읍내까지는 목포역 앞에서 좌석버스를 타고 갔다. 차가 달리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차
창엔 빗방울이 부딪혔다.
거기 사람이 있었다
처음 가는 무안군 해제면 용산마을 무안생태갯벌센터. 읍내에서 다니는 버스가 없어 센터에 파견 근무 중인 선배가 읍내로 마중을 나왔다. 센터의 규모는 꽤 컸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자연에게 맡겨지는 것인데···. 자연 자원 없이는 어떤 것도 만들 수 없으니 말이다. 많은 사람의 생계유지와 욕구 충족을 위해 사라지는 숲, 강, 생물들을 보고 있자면 이거 나도 사람이지만 사람이 없어야 하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정말 바라는 건 사람이 자연에서 최소한의 것만 얻어 쓰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이다. 사람이 살고 있어 파괴되지 않고, 자연과의 공생을 꿈꿀 수도 있는 곳, 사실 무안은 그런 꿈같은 일이 실재한 곳이다. 1992년 정부는 영산강 간척사업을 발표하고 무안갯벌을 막으려 했다. 주민들은 생업도 뒷전으로 미루고 피켓을 들고 반대를 외쳤고, 정부는 마침내 간척사업을 취소했다. 이렇게 앞장선 주민들이 없었다면 간척되고 말았을 갯벌을 생각하니 아찔하다.
이후 무안갯벌은 습지보호지역, 람사르습지로 지정이 되면서 주민과 지자체의 습지보호에 대한 인식은 더 커졌다. 그 덕분에 지어질 수 있었던 무안생태갯벌센터, 앞으로 알뜰살뜰 채워가고 많은 사람들과 나눠 쓰려 하고 있다. 주민들은 바다와 더불어 살아 온 것처럼 외지인들과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갯벌센터를 활용하여 마을 주민과 외지인들이 만나고 함께 하는 시간을 늘려가려 하며, 주민들이 직접 문화와 살림과 역사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 갯벌센터를 찾는 손님들에게 그동안 기대어 살아온 바다 이야기를 들려주고, 공연을 준비하고, 전라도 손맛으로 음식 대접을 하고, 고향을 나눠주려 한다.
갯벌은 저금통장
무안갯벌은 세계 5대 갯벌인 서해안 갯벌 중에서도 태고의 원시성이 빼어난 곳이라고 한다. 천연기념물인 노랑부리저어새, 흰물떼새, 흰발농게, 둥글레조개, 말뚝망둥어, 고동, 쏙 등 많은 생물들이 살아가고 있는 무안갯벌은 삶과 죽음이 항상 진행 중인 곳이다. 그곳에 사람도 더불어 살고 있다. 먹을 게 없던 보릿고개를 칠면초를 뜯고 짱뚱어를 잡아먹으며 넘길 수 있었고, 낮에는 소고기보다 맛있다는 농게를 줍고, 밤에는 불을 밝혀 낙지를 잡으며 철저히 물때에 순응하는 삶을 살아왔다.
몇 해 전 한국에서 열린 람사르 총회에서 무안군 현경면 월두마을 주민들은 극단 갯돌과 함께 당신들의 삶을 마당극에 담았다. 극중 "(낙지를 들어보이며) 요놈이 효자여! 효자! 요것으로 새끼들 갤치고 다 묵고 살았는께 말이여. 그라고 본께 요 뻘땅들이 모다 저금통장이여! 저. 금. 통. 장~~ 필요할 때는 빼쓰고 말이여. 갯벌이 있응께 먹고 살 꺽정이 없당께" 고개가 끄덕여진다. 갯벌에 기대어 살다보니 바다로 밀려드는 오염물질에 노심초사하고, 갯벌이 연안 매립 계획으로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갯벌과 주민이 함께 사는 방법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나친 어업활동으로 인한 훼손이 우려될 수도 있는데 그 또한 자발적인 조절을 시도할 수 있고, 자연 그대로 보존된 경관을 보러 오는 외지인들이 늘어나 식사와 숙박업, 수산물 판매 등으로 이어지게 되면 갯벌은 지역 주민들에게 또 한 번 귀한 재산이 된다. 갯벌이 지역 주민들에게 가져다 주는 금전적 가치 못지 않게 삶의 터전으로써의 의미는 크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역사와 문화를 쓰는
장인 것이다.
전라도로 간 <무안갯벌 기념품 공모전>포스터
센터를 둘러 본 후 어느새 비는 그쳤고 본격적으로 <무안갯벌 기념품 공모전>응모 권유를 위해 나섰다. 무안황토갯벌영농조합 박종주대표님의 도움을 받아 첫 번째로 간 곳은 도예 명인들이 사는 무안군 월선리 예술인촌, 명인과 함께 하는 도예 체험이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도자기 명인들에게 공모전 응모 권유란 살짝 무안(?)한 일이기도 하지만 지역을 위해 부탁드리고 돌아서는 길, 무안 하면 바다와 갯벌만을 떠올렸는데 아늑한 산촌의 정취도 마음에 담을 수 있었다.
직접 공모전 권유를 할 수 있는 곳은 아니지만 마을 이야기가 풍부한 몽탄리 약실 정보화마을도 겸사겸사 들렀다. 산촌체험의 진수를 맛 볼 수 있는 곳이라며 박태석위원장님의 열정과 자부심이 대단했다. 약실마을은 가족회원을 모집하고 있는데 철마다 장 담그기, 농작물 가꾸기, 수확하기 등 산촌의 삶을 공유하는 계획을 갖고 있다.
목포 맛집에 이어 박태석위원장님의 안내로 간판도 없는 일반 가정집 같은 식당에 자리 잡고 앉았다. 역시 전라도라는 감탄이 나오게 한 깔끔하고 담백한 맛. 아는 사람만 가는데도 심심찮게 붐빈단다.
광주 가는 길 다시 들른 목포 유달산 중턱의 유달 예술인촌에는 몇 년 전 월두마을 주민들과 갯벌 마당극을 공연한 극단 갯돌도 자리하고 있다. 징한 예술과 그 예술과 어우러진 사람들의 삶에 너무 큰 애정을 가진 문관수대표님은 무안갯벌 일대 마을 주민들과 함께 주민들의 삶을 극에 담아 정기적으로 공연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번 일정의 종착지 광주 대인시장은 2008년 광주비엔날레 때 하나 둘 비어있는 대인시장의 점포와 골목이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 공간으로 기획 되면서 대인 시장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생겨났다고 한다. 시장 상인들의 삶을 작품으로 표현했고, 작품은 시장의 일부가 됐다.
옷을 팔고, 잡화를 파는 시장 골목 한 켠에 위치한 전라도 사람, 문화, 자연을 담은 월간지 전라도 닷컴( www.jeonlado.com) 사무실은 새 것이 아니여도 깨끗하고 멋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이렇게 지역의 문화와 예술이 알콩달콩 이어지는 사이 자연에 대한 고민도 자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이 솟았다.
갯벌 그리고 공존
사람과 자연이 비슷한 모습을 하고 어우러져 살고 있는 남녘을 다녀와 사람이 있는 한 자연은 파괴될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있어 지켜질 수 있으면 하고 바래진다. 자연에 기대어 살고 자연에서 얻는 만큼 자연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면, 산, 들, 강, 바다 어디든 사람과 자연이 사이좋게 공존하면 좋겠다. 오랜 동안 지방에서만 살면서 종종 느꼈던 것이지만 분명 사람들은 자연만큼 아름다운 풍요로움을 가지고 있다.
그 사실을 아는가 모르는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자연에 해를 입히지 않으려는 작은 노력들을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은 거의 사소하게 여기고 있다. 그런 생각과 노력을 해서는 끝없는 욕구를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과 같이 날마다 새로 생산하고 조금 쓰다 금방 버리고 또 생산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선망의 대상이 되고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사람으로서 사람이라면 갖춰야 할 사람됨과 거리가 먼 것임을 짚어보았으면 한다.
자연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지역은 현대 사회의 몹쓸 욕망이 비교적 적고, 삶의 터전에 대한 배려와 사람 특유의 정서가 어우러지기가 보다 수월하지 싶은데, 실은 이런 점이 무안에서 갯벌과 주민이 공존할 수 있는 비결 중에 하나로 보였다. 지역에서는 그래도 희망과 미래를 보게 되는 이유이다. 우리는 지금에서 미래를 볼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싶은 미래대로 지금을 살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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