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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상황이 온 나라를 강타하고 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그 시점을 두고 왈가왈부가 있을 만큼 절묘한 시점에 터져 나온 '곽노현 사건'. 사건을 접한 국민들이 느꼈을 충격과 배신감을 십분 이해한다. 오죽하면 잘 아는 지인들조차 절대 곽노현을 옹호하지 말라고 내게 충고했을까.

"사람은 버리되 정책은 지키자!"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다. 인정이나 의리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정책을 지키기 위해서다. 이토록 쉽게 사람을 평가하고, 그래서 물건처럼 버리고, 버림받는 상황이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되는 사회에서 인간을 위한 정책이 구현될 리 만무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곽노현이 걸어왔던 길을 옆에서 함께 지켜봤던 사람으로서, 나는 인간을 위한 정책을 지키기 위해서 먼저 그 정책을 상징하는 한 인간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의리 이전에, 인정 이전에 그와 함께 길을 걸었던 사람으로서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 문제는 곽노현 교육감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손쉬운 재단과 인간을 그저 도구로만 바라보는 대한민국,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러니 우리의 문제다.

자살 직전까지 내몰린 박명기 후보의 상황이 염려스러워 '선의'로 2억 원을 주었다는 곽노현교육감의 주장에 대한 우리사회의 냉소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선의로 주기엔 액수가 너무 크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설사 선의라 하더라도 불법이고 공인으로서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한편 삼성과 검찰을 상대로 '법치주의의 전사'로서 질긴 싸움을 벌여온 그의 강한 이미지와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나는 곽노현 교육감의 '선의'를 믿는다. 여야를 막론한 사퇴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미련스럽게 버티는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강한 포청천 같은 이미지로 알려진 그는 한없이 유약하고 부드러운 사람이다. 또 진보 법학자로 외길을 걸어온 곽노현은 진실에 기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적어도 내가 아는 곽노현은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그가 그렇게 버티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나는 그가 교육감이 되기 전 그와 꽤 오래 장애인인권운동을 함께 해왔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어려운 장애인,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시설장애인을 위한 인권운동현장을 지키며 탈시설정책위원회를 이끌었다. 아무런 대가도 없고,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지도 않아 명예를 얻기도 힘든 그 일을, 장애인단체들에서조차 외면받던 그 일을, 그 많은 사회복지전공교수들이 외면하던 그 일을 그는 선뜻 맡아 성실하고 열정적이고 유쾌하게 이끌어왔던 사람이었다.

그는 가끔 돈키호테와 같은 돌발 행동을 하곤 했다. 2004년쯤 캐나다에 안식년을 가 있던 곽노현 교수는 이메일을 보내 수차례 발달장애인과 정신장애인의 인권을 위한 운동을 함께 할 사람들을 찾아 연결해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법학교수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해외에서 국내 관련 단체를 찾아 함께 운동을 하자고 제안하는 일 역시 실은 돈키호테 같은 일이다. 운동현장에서 학자와 전문가는 대개 활동가들의 섭외와 호소에 의해 결합하곤 한다.

귀국 이후 그는 단체들로 이뤄진 '시설장애인의 인권확보를 위한 연대단체'에 가입의사를 밝혀왔다. 당시 개인이 가입한 예도 없었고 개인이 가입을 주장한 적도 없었다. 난감해하는 활동가들에게 그는 "'단체'들로만 연대를 꾸린 것은 잘못이라며 '개인' 자격으로 가입하겠다"고 주장했다. 사실 그의 주장은 이치에 맞았다. 통념과 관심에 익숙해 있는 건 오히려 나를 포함한 활동가들이었다.

경기고, 서울대, 펜실베니아 대학을 거친 엘리트, 먹고살 만한 그는 그렇게 동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외길을 걷곤 했다. 그래서 세상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면서도 명백한 잘못이라고 지탄하는 이 일의 근본에 나는 박명기 후보에 대한 곽노현 교육감의 '따뜻한 가슴과 연민, 자살을 결심할 정도로 어려워진 상대후보의 상황을 외면하지 못하는 인간적 결단'이 있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 이면에 나도 알지 못하는 더 구체적인 사정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함께 진보라는 테두리 안에서 같은 꿈을 꾸고, 또 경쟁했던 한 사람에 대한 연민과 안쓰러움이 그 결단의 본질이었으리라 나는 믿는다. '금전을 대가로 한 후보 단일화는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그는 일관되게 피력해왔었다. 친구를 돕기 위해 어려움에 처한 강아무개 교수 역시 그런 사람이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세상이 '사람을 버리고 정책과 정치를 구하자'는 구호를 외쳐도, 정치와 정책의 이면과 궁극적인 목표가 '사람'임을 기억했으면 한다. 정치적 판단과 위법성 논쟁이 매우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선의'를 주장하는 곽노현 교육감의 주장을 냉소적으로만 바라보지 않았으면 한다. 적어도 확인되지 않은 '피의사실'을 흘리며 여론재판을 주도하는 검찰을 경계하고 차분히 법 앞의 평등이 지켜지고, 공정한 수사가 진행될 수 있기를 바란다.

ps. 아직 해보지 못한 숙제

법은 사람을 위해서 존재한다. 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그 무엇도 한 인간의 진실과 진심을 짓밟을 만큼 절대적이지 않다. 그 진실을 그 진심을 그대로 믿어달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한번쯤 함께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한 인간에게만 속한 문제가 아니라, 어떤 정책에만 속한 문제가 아니라, 내가, 당신이, 세상을,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에 관한 문제다.

곽노현 교육감 사건은 아직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은 숙제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톨스토이 소설 <바보 이반>은 상식과 통념을 깬 원칙에 충실한 행동을 통해 세상을 바꾸곤 한다. 우리 스스로 기존 프레임과 상식에 너무 갇혀 있는 것은 아닌지 조용히 따져보았으면 한다.


#곽노현#곽노현교육감#박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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