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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일본에서는 1947년부터 49년까지의 3년간, 평균 26%라는 급격한 인구 증가율을 기록하며 이른바 '제 1차 베이비 붐'이 일었는데, 이 시기의 출생자들을 가리켜 흔히 '단괴(團塊)의 세대'라 부른다. 1947년 일본 오카야마(岡山)현에서 재일한국인 2세로 태어난 <토지>의 번역자 김용권씨(金容權, 64) 또한 '단괴세대'에 속하는데, 그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김영사, 1998)를 비롯, 윤정란의 <조선의 왕비>(차림, 1999) 등 다수의 한국서적을 일본에 소개한 중진 번역가이자 저술가이기도 하다.

 

고단샤비씨 담당 편집자 가타부치(片渕)씨의 협력으로, 8월 13일 김용권씨와의 전화 인터뷰 기회를 얻었다.

 

[인터뷰(상): "한국의 대작 <토지>, 일본에 소개해 뿌듯하다"]

 

이하, 김용권씨와의 일문일답.

 

특정 지역 선입견 염려, '표준어' 번역으로

 

 고 박경리 선생
고 박경리 선생 ⓒ 토지문화관

- <토지> 번역 작업 중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

"박경리씨의 박람강기(博覽强記)함이랄까, 사전에 없는 단어나 표현, 그리고 지방 사투리가 많이 사용돼 번역하는 데 애를 먹었다. 사투리의 정확한 뜻을 알고자 <토지>의 무대가 된 하동 지역 등을 직접 찾아가기도 하고, 주변 한국인 지인들의 도움을 얻기도 했다. 고생은 많았지만 많은 공부가 되기도 했다."

 

- 고단샤판 <토지>는, 원작의 사투리가 모두 '표준어' 일본어로 번역됐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일본은 한국 이상으로 지역별로 천차만별의 사투리가 사용되고 있다. 어느지역의 사투리로 번역할지 논의가 많았지만, 결론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왜냐면, 특정 지역의 이미지가 편중돼, 외려 독자들에게 선입견을 심어줄 수 있고, 결과적으로 원작의 뉘앙스를 해칠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원작의 뜻과 뉘앙스를 일본 독자에게 정확히 전달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정하고, 한국 출판사의 양해를 얻어 '표준어' 번역을 결정했다."

 

- 원작 <토지>에는 예를 들어 '식지(食指)가 움직인다'(뭔가 하고자 하는 마음이 이는 것.) 등의 한국인에게는 생소한 일본어식 표현이 종종 등장한다. 식민지 시대에 성장기를 보낸 작가가 일본어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대해 번역자 생각은 어떠한가.

"한국 현지 조사를 통해 느낀 건, 인지도에 비해 실제로 <토지>를 읽은 한국사람이 의외로 적었다는 것이다. 논자에 따라 '지식인'의 정의는 다르겠지만,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지식인의 조건이기도 하다. 내 생각으론 <토지>의 주요 독자층은 연재 당시 실시간으로 접했던 대학생이나 고등교육을 받은 지식인들이 아니었나 싶다. 당시의 독자들 또한 그들 대부분은 자신이 직접 일본어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거나, 일본어 세계와 무관하지 않았던 사람들로서, <토지>의 일본어식 표현에는 큰 거부감이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의 정신 문화, <토지>에서 찾길"

 

- 번역자는 <토지>를 어떻게 읽었는가. 독후감을 말해 달라.

"박경리씨는 청소년판 <토지> 머리말에, '연방제가 무너지고 러시아가 큰 혼란에 빠졌을 때 어느 말단 관리 한사람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문화가 있기 때문에 다시 일어날 것이다." 그 말에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으며 부러움도 느꼈습니다'라고 쓰고 있다. 작가가 <토지>에서 전하고자 한 한국(조선)의 '문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 예로 <토지>에는 근대적 교양을 체득한 이른바 '동경유학파'라 불리는 신(新)지식인이 상당수 등장하지만, 작자의 '신지식인' 평가는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반면, 최참판가 마지막 직계 후손인 '서희'는 어떠한가.

 

'서희'는 구태의연한 몰락 양반으로 묘사되는 평사리의 '김훈장'으로부터 한학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작중(作中)에서 '서희' 스스로가 '구시대의 사람'이라 자기정의를 내리기도 하는데, 작가는 조선 문화를 체현(體現)하는 이상(理想)의 양반상(像)을 '서희'에게 맞춘 것 같다. 물론, 실제 역사에서는 사리사욕에 눈이 멀고 민중을 억압하는 양반들이 많았겠지만,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조선)/ 한국인(조선인)의 생활규범으로서의 도덕, 윤리, 예의범절, 이를 '정신 문화'라 바꿔 말해도 되겠는데, 그 이상(理想)세계를 '서희'를 통해 나타내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 일본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내 부모님은 둘 다 마산에서 태어나 식민지 시대에 일본으로 건너온 재일한국인 1세인데, 여태껏 부모로부터 일본 문화를 선망하고 동경하는 식의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왜냐면, 일본에 살고는 있지만 그들은 한국(조선)인이고, 한국(조선)에는 한국(조선) 고유의 문화가 있다는 신념이 그들에게는 있었기 때문이다. <토지>를 통해, 한국(조선), 한국인(조선인)에게는 일본과는 다른 그들 고유의 삶의 철학, 문화가 있다는 것을 일본인이 깨닫길 바란다."

 

-원작 <토지>에는 무려 600명에 이르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무리한 질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굳이 묻자면, 번역자가 가장 애착을 느끼는 등장인물은 누구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토지> 제 2부 이후에 등장하는 '주갑'이다. 그는 전라도 출신의 명창 못지않은 소리꾼이기도 한데, 만주 일대를 떠돌던 중 평사리 출신의 주인공 '이용'과 친교를 맺는다. 한편으로는 <토지>에서 유일하게 실명으로 등장하는 역사상의 실존 인물 '강우규(1859~1920)'를 따라 독립운동에 가담하기도 하는데, 일정한 거처없이 부초(浮草)처럼 타지를 떠도는 그의 나그네적 삶에 동경을 가지는지도 모르겠다."

 

이상이 약 30여 분에 걸쳐 이루어진 김용권씨와의 전화 인터뷰 요지다.

 

취재를 마치며, '한국 현지에 가서 보니 <토지>를 읽어 본 한국인이 의외로 적었다'란 번역자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사람에게 있어 <토지>는, 대하소설 <토지>보다는, TV드라마 '토지'로 기억되고 있는것일까. 박경리씨는 일찍이, 2002년판 <토지> 간행 머리글에서 '문학작품이 자본주의 원리에 따라 생산되고 소비되는 오늘의 추세는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상인(商人)과 작가의 차이는 무엇이며 기술자와 작가는 어떻게 다른 것인가. 차이가 없다면 결국 문학은 죽어갈 수밖에 없다'며 시장원리에 끌려가는 문학의 존재의의에 대해 위기감을 피력한 바 있다.

 

20세기 한국이 낳은 문학의 거인(巨人) 박경리 선생은 가고 없지만, 고인이 남기고 간 <토지>는 고단샤가 장만한 일본어로 옷을 갈아입고 일본 독자에게 찾아갔다. '<토지>는 다름아닌 일본 자신이 깊게 관여한 한국의 역사와 한국인의 아픔'을 그리고 있다는 편집자 가타부치씨의 지적과, '작가 박경리씨는 <토지>의 서희를 통하여 한국인의 정신문화와 이상세계'를 표현하고자 했다는 번역자 김용권씨의 말을 되새겨보며, 일본인에게 <토지>가 어떻게 읽혀질지 주목해 보고자 한다.

덧붙이는 글 | 사진제공: 토지문화관
*이번 취재에 협력해주신 고단샤비씨의 가타부치 모리히코 편집자님, 김용권 번역자님, 고 박경리 선생의 사진을 흔쾌히 제공해 주신 토지문화관 관계자님께 감사를 표합니다.


[2019년/마로니에북스][완간판]New 박경리 대하소설토지[20권+토지인물사전]

, 마로니에북스(2019)


#토지#박경리#김용권#일본어#고단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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