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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소식이 19일 낮 12시에 발표되면서, 이에 대한 정부적 차원의 조의 표명이나 조문 여부를 둘러싸고 진보와 보수 간의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

 

진보 측의 입장은 주로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 남북관계의 리스크 관리 차원, 과거 북한이 한국의 전임 대통령 서거 시 조문 경험 등의 이유를 들어 애도의 뜻을 표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보수 측은 그동안 김정일 위원장을 중심으로 진행돼 온 대남 안보 위협 사건들 및 북한 내의 혹독한 독재정치 전적을 연계하면서 조문에 대한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갑작스러웠던 돌발 변수가 발생함에 따라 '한반도의 정세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경제는 어떤 영향을 받게 될 것인지' 등에 대한 걱정이 앞서고 있다. 하지만, 다른 어떤 문제보다 '조문 문제'는 우리가 충분히 대응해 나갈 수 있는 외교적 분야이므로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한국이 거칠고 세련되지 못한 외교 자세를 취하면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지속되는 한국의 정통성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 재임시기 동안 모두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추진했다. 비록 김영삼 정부 당시 예정됐던 정상회담이 김 주석의 갑작스러운 사망 때문에 이뤄지지 못했지만, 북한과 정상회담을 추진했던 것은 북한 정상을 대화 상대로 인정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헌법 제3조 영토 조항이 여전히 존재함으로써 북한 지역의 체제는 법적으로 '반국가 단체'이며, 그 지도자는 반국가 단체의 수장인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북한 지도자를 대화 상대로 인정했다는 것은, 법적인 해석과는 달리 역대 한국 대통령들은 이미 북한을 국가로 인정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더구나 김정일 위원장은 김 주석과는 달리 두 분의 한국 대통령들과 실제로 정상회담을 했을 뿐만 아니라, 공동선언에 서명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간 역대 대통령들이 했던 '외교적 대화 시도'를 통째로 무시하는 것과 같다. 개인적으로 이는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통성을 폄하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또한, 조문이 한국의 국익과도 무시할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영삼 정부 시기 김 주석 사망과 관련한 조문 파동으로 인해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은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따라서 북미 간 대화에 개입하지 못했으며, 결국 경수로 지원이라는 재정적인 지원만 제공할 수밖에 없었던 뼈아픈 과거를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현재의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이라는 점, 그리고 현재 남북 간 대화 창구가 없기 때문에 급변 사태에 남북공조를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한국이 북한을 섣부르게 자극한다면 향후 한반도 문제에 대한 주도권을 가지기는커녕, 오히려 불필요한 피해를 양산시킬 수 잇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적절한 수준에서의 조의 표명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김 위원장의 사망에 조의를 표명한다고 해서, 그동안 북한의 못된 행동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북한의 혹시 모를 위협이 무서워 조의를 표명한다고 볼 필요도 없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한국의 외교적 노력을 인정하는 차원에서, 국익과 국가적 리스크를 관리하는 차원에서 명분을 쌓을 필요가 있다. 그래서 조의 표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 위원장 사망 소식 이후, 일본은 애도를 표하며 이례적인 공식 표명을 했다. 감정적인 외교는 아무 때나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외교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할 수 있다. 또 그런 외교는 전략적으로 치밀하게 추진해야 한다. 이에 대한 특별한 전략이 없다면, 대북 조문은 현 상황에서 가장 적실한 전략이 될 것이다.  


#김정일#남북관계#조문#국익#전략적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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