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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1시, 삼성 에버랜드 앞에서 패혈증으로 사망한 동물원 사육사 고 김주경씨 사건의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26일 오후 1시, 삼성 에버랜드 앞에서 패혈증으로 사망한 동물원 사육사 고 김주경씨 사건의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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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삼성 에버랜드에서 일하던 25살의 젊은 노동자 김주경씨가 삶을 마감했다(관련기사 : <삼성의 꽃다운 비정규직 사육사는 왜 죽었나>). 동물원 사육사가 되고 싶었던 25살의 청춘. 아파도 의무실 한번 제대로 갈 수 없었던 열몇 시간씩 되는 고된 노동은 그녀의 몸을 서서히 망가뜨렸다. 상처로 인한 감염, 패혈증. 온몸에 멍이 올라오고 팔다리가 괴사되어도 그녀는 긴 잠에서 깨면 "동물원에 가야 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외침이 공허하게도 그녀는 끝내 동물원 사육사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장례식장. 고인의 넋을 기리는 자리는 삼성의 직원들로 가득 찼다. 그녀의 부모님을 감시하는 수많은 눈들! 삼성의 말만 철석같이 믿었던 그녀의 부모님들은 딸의 죽음에 대해 계속 말을 바꾸는 삼성 직원들을 보며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밝혀진 하나의 문서. '고 김주경 관련 상황 보고'. 삼성은 그녀의 죽음 이후의 기록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문서로 기록했다. 부모님이 어떠한 행동을 했는지, 삼성노조와 만나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그녀의 기숙사 유품을 정리하며 부모님이 눈물 흘린 모습까지도. 삼성은 그녀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는커녕 딸을 잃고 슬퍼하는 그녀의 가족에게 감시의 눈을 치켜세우고 있었다. 

죽음을 숨기고 노동자를 감시해온 '초일류기업'

삼성전사 온라인 사내 게시판에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글을 올린 뒤 해고된 박종태씨가 2010년 12월 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열린 '삼성의 노동조합 설립 탄압규탄 및 삼성전자 박종태씨 해고무효확인소송 소장제출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박종태씨가 직무대기 처분을 받았을 당시, 컴퓨터도 없는 빈 책상에서 사내 메일도 사용할 수 없게 차단된 채 '왕따 직원' 생활을 하는 모습이 뒤로 보인다.
 삼성전사 온라인 사내 게시판에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글을 올린 뒤 해고된 박종태씨가 2010년 12월 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열린 '삼성의 노동조합 설립 탄압규탄 및 삼성전자 박종태씨 해고무효확인소송 소장제출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박종태씨가 직무대기 처분을 받았을 당시, 컴퓨터도 없는 빈 책상에서 사내 메일도 사용할 수 없게 차단된 채 '왕따 직원' 생활을 하는 모습이 뒤로 보인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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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녀뿐이겠는가. 삼성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세상을 떠난 고 황유미, 고 박지연, 고 황민웅,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스스로 세상을 등진 고 김주현 등…. 그리고 열거하지 못한 수많은 죽음들과, 지금도 투병 중인 노동자들이 있다. 이 수많은 죽음과 그들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들. 하지만 그 의혹을 밝혀야 할 당사자인 삼성은 입을 꾹 다물고 있다.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 감시의 눈으로.

삼성은 '초일류기업'이라는 브랜드 속에 노동자들의 죽음과 고통을 숨기고 있다.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선량한 이미지 뒤에는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도 반성하기는커녕 그 죽음의 진실을 왜곡하려는 삼성이 있을 뿐이다.

삼성이 감시의 눈으로 지켜본 게 죽음에 이른 그들뿐이겠는가, 투병 중인 그들만이겠는가. 살아 있는 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무노조 경영으로 수십 년을 버텨온 삼성이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노동조합을 만드는 날에도 삼성은 여전히 감시의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삼성노조 측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삼성노조를 만든다는 기자회견 날 그들을 뒤따르던 감시차량이 23대 정도였다고 했다. 삼성노조를 미행하는 차량을 도리어 따라가 혼을 내줬다는 한 노동자의 이야기는 씁쓸한 웃음을 안겨준다.

'세계 최고의 기업'이라 자부하는 삼성이 하는 짓이 법에도 당연한 권리로 명시되어 있는 노조를 만들려는 사람들을 미행하는 짓이었다니. '노조는 안 돼'라는 창업주의 가르침을 따라 무노조의 신화로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곳. 사람답게 살기 위해 외치는 목소리를 감시와 미행으로 단칼에 내리쳐버리는 곳. 그렇게 이룩한 삼성의 공화국이 어찌 사람의 공화국이겠는가.

그리고 여기, 삼성과 외로이 싸우는 한 노동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박종태. 삼성에 노조가 필요하다고 외치던 그는 2010년 11월, 23년 일한 직장에서 결국 해고되었다. 그리고 1년을 거리에서 보냈다. 그의 싸움이 안타까워 그와 함께 싸우고자 왔던 대학생들이 있었다. 하루는 박종태씨가 농성텐트 안에서 대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한 학생이 잠깐 화장실을 간다고 자리를 떴는데, 곧 그 학생은 얼굴이 벌개져서 돌아왔다.

"삼성 직원들끼리 하는 무전이 들렸는데요. 텐트 안에 누가 있는지 다 알더라고요."

웃어넘겼지만, 웃어넘길 수 없는 일. 한 노동자의 싸움과 그들을 지지하기 위해 온 이들이 누구인지 하나하나 다 감시한 이들. 이들이 바로 삼성이었다.

삼성의 '또 하나의 가족'은 떡값 검사들일 뿐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 사건으로 기소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을 받기 위해 2009년 8월 14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 출두,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 사건으로 기소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을 받기 위해 2009년 8월 14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 출두,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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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그간 이 사회에서 저질렀던 악행들은 다 열거하기조차 힘들다.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시도했던 노동자들에게는 감시와 미행을, 삼성SDI에서 해고된 노동자에게는 핸드폰 위치추적이라는 선물을 안겨줬다.

불법 비자금과, 탈세, 세습, 온갖 비리와 불법으로 얼룩진 삼성. 그들에게 '또 하나의 가족'은 삼성의 제품을 사는 사람들과 그들의 기업을 위해 일하는 힘없는 노동자들이 아닌, 그들의 공화국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온갖 불법을 눈감아주는 이 나라의 전직 판사, 검사, 장관들일 것이다.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책에서 나왔던가. 온갖 명품과 브랜드로 휘감고, 남들과는 다른 위치의 '신귀족'임을 자처하는 그들. 그런 이들에게 노동조합을 만들겠다는 일개 노동자가, "우리 딸, 우리 아들이 죽었어요"라고 외치는 힘없는 부모들이 얼마나 우습겠는가. 그저 그들의 힘을 이용해 감시하고, 돈으로 회유하고, 안 되면 모른 척 스리슬쩍 넘기며 자신들의 책임이 아님을 강조해버리면 되는 일을.

누가 힘없는 노동자의 이야기를 듣겠는가. 누가 자식 잃은 부모의 하소연을 듣겠는가. 누가 불법을 고발하는 내부고발자의 이야기를 듣겠는가. 이 사회는 돈으로 봉사하고, 돈으로 사회를 주무르는 삼성의 이야기를 진실인 양 믿을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법의 심판대에 불려나가도 휠체어를 타고 사회에 돈 몇 푼 쥐어주면 다시 선량한 기업가가 되어 나오는 것으로 보여준다.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이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저지른 비리 때문에 형을 선고받고도 2009년 12월 특별사면된 것을 보라. 또 2008년에는 이건희 회장의 차명재산 4조5000억 원이 드러나, 그 가운데 1조 원을 사회환원 할 것을 약속했지만, 3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획 마련 중'일 뿐이다.

결국 힘없는 이들의 진실은 묻혀버린다. 과연 우리는 누구의 눈으로 보고 있는가. 거대권력 삼성인가, 아니면 그들에게 당한 힘없는 이들인가?

이제는 전 세계 '공공의 눈'이 삼성을 감시할 것 

'공공의 눈'이 주최한 '최악의 기업' 투표 결과. 삼성이 3위에 올랐다.
 '공공의 눈'이 주최한 '최악의 기업' 투표 결과. 삼성이 3위에 올랐다.
ⓒ www.publiceye.ch/en/ran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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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그린피스 등이 주최한 퍼블릭아이피플스어워드(PUBLIC EYE PEOPLE'S AWARD, '공공의 눈') 행사가 종료되었다. 세계 누리꾼들의 투표로 '세계 최악의 기업'을 뽑는 행사였다. 자랑스럽게도 삼성은 여섯 개 후보 가운데 하나로 노미네이트 되었다.

가만히 있을 삼성이 아니었다. 삼성은 주최 측에 항의 서한을 보내 "직업병이나 노조 탄압 등 후보로 오른 이유가 모두 명백한 허위사실이자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며 "주최 측에 피해가 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삼성이 정말 최악의 기업이 아니고, 모든 증거가 허위라고 한다면, 그 수많은 피해자들의 존재는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이, 주최 측에 아무리 엄포를 놓는다고 해도 삼성의 부도덕함이 가려지진 않을 것이다.

투표 결과 삼성은 8만8000표 가운데 1만9014표를 얻어, '세계 최악의 기업' 3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순위는 중요하지 않다. 삼성이 저지른 악행이 지금도 존재하고 있음이, 오늘도 현재진행형임이 중요하다.

삼성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수많은 이들이 눈을 뜨고 지켜보고 있다. 이번 '공공의 눈' 세계 최악의 기업에 노미네이트 된 게 억울하다고? 이미 사람들은 공공의 눈과 무관하게 삼성의 부도덕함을 알고 있었다. 다만 삼성을 주시하는 눈이 한국을 넘어 세계로 확장된 것뿐이다.

삼성, 세계 최악의 기업 1위가 아니라고 안심하지 마라! 투표는 끝났지만, 세계의 공공의 눈은 삼성을 주시하고 있다. 삼성에 반기를 든 이들을 너희가 감시했듯이, 이제 전 세계 공공의 눈이 너희를 감시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안은정 기자는 다산인권센터 활동가입니다.



태그:#삼성, #나쁜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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