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 체험학교 연못에 얼음이 녹았다. 제법 비싼 돈을 주고 지난 가을 연못에 입식한 비단 잉어 20여 마리 중 첫 겨울나기를 무사히 넘긴 비단잉어가 몇 마리인지 확인하기 위해 연못을 뚫어지라 쳐다보며 수를 헤아려 보았다.
며칠을 헤아려 보아도 스무 마리 중 다섯 마리 밖에 보이지 않았다. 분명 얼어 죽었다면 사체라도 보일 텐데 흔적도 없이 열다섯 마리가 사라진 것은, 어떤 놈의 뱃속으로 들어간 것이 분명했다. 용의자가 두 놈으로 좁혀졌다.
한 놈은 연못에서 아침식사를 즐기다가 나에게 들켜 여러 번 도망을 친 왜가리, 또 한 놈은 생태계의 무법자로 지명 수배되어 쫓겨 다니다가 체험학교 연못에 나의 허락도 없이 눌러앉은 황소개구리였다. 왜가리와 황소개구리를 잡아다가 취조를 할 수 없어 안계파출소와 '공조 수사'에 들어갔다.
사라진 비단잉어... 범인은 누구?
얼음이 얼어있는 연못에서 왜가리가 비단잉어로 식사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왜가리는 용의 선상에서 제외되었다. 남은 것은 황소개구리, 이놈은 일반 개구리와 달리 겨울잠을 자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용의자는 황소개구리가 분명했다. 황소개구리가 범인이 분명하다는 확신이 들자 나의 머리 온도가 갑자기 높아졌다.
'이놈의 황소개구리 다 죽인다.'
나의 뇌구조는 전투모드로 전환되면서 황소개구리를 처단 할 무기를 생각했다. 물 밖보다 물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황소개구리의 특성에 맞는 무기로 나는 창을 선택 하게 되었다. 창고에 찾아가 적당한 재료를 찾아보니 마침 8자(240cm)짜리 각목이 있어 낫으로 끝을 다듬어 긴 각목 창을 하나 만들었다.
'이제 너 죽었어!'
각목 창을 연못 주변에 두고 생각이 날 때마다 하루에 몇 번이고 연못에 나가 황소개구리의 동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전국의 포위망을 뚫고 체험학교 연못에 은거하고 있는 황소개구리 추노 꾼은 쉽게 자기 몸을 보여주지 않았다. 내가 황소개구리를 발견하기 전에 그놈이 나를 먼저 발견하여 깜짝 놀라는 소리를 내며 물속으로 뛰어들 때만 순간적으로 볼 수 있었다. 며칠간 황소개구리의 동태를 자세히 살핀 덕에 이놈의 물속 은신처 위치를 파악했다. 각목 창을 들고 물속 은신처에 다가가자 이놈이 마음을 놓고 있었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각목 창을 있는 힘껏 내던졌다. 물 먼지가 뿌옇게 일어났다. 물 먼지가 가라앉으면 선혈이 낭자한 황소개구리가 떠오를 것이라 생각했는데, 황소개구리는 어느새 모습을 감추었다.
보름동안 추격자와 도망자의 숨바꼭질이 계속되었다. 보름동안 황소개구리의 움직임을 관찰하니 물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물 밖으로 나와 일광욕(?)도 즐기는 것을 알아냈다. 내가 누구인가! 한 번 마음을 먹으면 끝을 보는 송 국장이 아니던가!
꽃샘바람이 몰아치던 어느날, 황소개구리가 연못가에 나와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보름을 기다린 나에게 '바로 이때다'라는 느낌이 왔다. 다른 날과 달리 오늘은 잡을 수 있겠다는 확신으로 각목 창을 움켜잡았다.
나의 몸은 아드레랄린 분배로 심장 박동수가 늘어나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전투태세를 완비했다. 황소개구리의 반대편으로 논산훈련소 각개전투 때 배운 낮은 포복으로 다가갔다. 마침 바람은 제갈량의 적벽대전에서 분 동남풍에 버금가는 동서풍이 불어 황소개구리가 나의 냄새를 전혀 맡을 수 없었고 나뭇가지를 흔드는 바람소리는 나의 발자국 소리를 감추어 주기에 충분했다. 황소개구리는 자신의 운명을 눈치 채지 못하고 유유자적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20여일 추적, 승리하긴 했는데....
유효사거리에 도달했다. 각목 창을 황소개구리의 등을 향해 조준했다. 한번 내려찍는 시늉을 해도 황소개구리는 눈치를 채지 못했다. 있는 힘껏 각목 창을 황소개구리의 등에 내려찍었다. 각목 창이 등뼈에 정통으로 찍혀 관통되지는 않았지만 큰 충격을 받은 황소개구리는 몸이 뒤집혀 사지를 부르르 떨며 꼼짝을 못했다. 황소개구리를 밖으로 끄집어내어 머리를 한 번 더 찍어 확인 사살을 했다.
20여일간 계속된 추격자와 도망자의 숨바꼭질은 도망자의 사망으로 끝이 났다. 전투상황이 종료되자 허무감과 함께 혼란이 밀려왔다. 20여일간 황소개구리를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었던 나는 누구였는가.
나는 황소개구리가 비단잉어를 잡아먹는 모습을 본적은 없다. 설사, 황소개구리가 비단잉어를 잡아먹었다고 한들 잡식성인 황소개구리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는 여러 끼의 식사거리가 아니었겠는가!
미안했다. 이 미안함을 스스로 달래기 위해 나는 핑계논리를 만들었다. '네가 한끼의 식사를 위해 비단잉어를 잡아먹었듯이 나도 비단잉어의 관리를 위해 너를 죽여야 하는 것이 먹이사슬 속의 운명이 아니겠는가!' 인간의 기준에 의해 이로운 동물과 해로운 동물로 분별되고 그 분별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한 그 이름 황소개구리여.
연못의 한 귀퉁이마저 허락하지 못한 나의 복수심에 잠시 어지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