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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9대 총선을 하루 앞둔 지난 10일 오후 서울 노원구 공릉역 부근에서 열린 팟캐스트 방송 <나꼼수> 출신 김용민 민주통합당 후보 유세에서 김 후보가 'V'를 만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제19대 총선을 하루 앞둔 지난 10일 오후 서울 노원구 공릉역 부근에서 열린 팟캐스트 방송 <나꼼수> 출신 김용민 민주통합당 후보 유세에서 김 후보가 'V'를 만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 권우성

<나는 꼼수다> 김용민 PD가 '국민 욕쟁이'로 활동을 재개했다. 그는 지난 15일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잡놈이라서 털고 일어날 수 있다, 활동의 전제는 더 이상 정치는 안 하겠다는 것"이라며 "그런데 일상의 한 사람, 한 시민으로서 활동을 하겠다는 것에 자숙을 요구하는 것을 나는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용민은 자유다. 무슨 일이든 그가 '꼴리는 대로' 할 수 있다. 막말 파문으로 민주통합당이 후보직 사퇴를 권고했을 때 그가 '완주하겠다'며 '자유의지'를 실천한 것과 마찬가지다. 범법자만 아니라면 선거 전이나 지금이나 그가 '자유의지'와 '무한(?)권리'를 가진 한 개인임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보 쪽의 많은 사람들이 '김용민 때문에 선거에 패배했다'는 것은 조중동이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런 얘기에 딴죽을 걸라치면 그런 것이 '야권 내부의 분열'을 만들어 새누리당을 이롭게 만든다며 너나 할 것 없이 '쫄지마 씨바!'를 연창했다. 이를 보다보면, 마치 민주통합당이 선거한 것이 아니라 '나꼼수'가 선거를 치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선거가 끝난 지금도 그 분위기는 여전하다. 그러나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역사에 가정법은 존재하지 않는다지만 '나꼼수'가 민주통합당의 여러 지지세력 중 하나로만 자리매김했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명숙 전 민주통합당 대표는 여성학을 전공한 여성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그 때문인지, 한 전 대표가 김용민 후보의 막말파문이 처음 터졌을 때 여성적 관점에 서서 다르게 대처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의문이 여전히 남는다.

여성감수성이 곧 인권감수성이다

여성문제에 대한 감수성은 생물학적인 여성정치인을 한 명 더 늘리는 것과는 무관하다. 정치의 장에서 여성적인 가치관을 수용하고 그에 따른 정책을 만들어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공천에 몇 %를 요구하는 여성할당제보다 정당정책에 여성적 가치관을 반영시켜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김용민 후보의 후원회 회장이었던 조국 서울대 교수는 김용민씨의 '국민 욕쟁이' 활동 재개에 '권주가'를 보내며 '인권감수성'을 키우라고 말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인권감수성과 여성감수성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인권감수성이 곧 여성감수성이고 여성감수성이 곧 인권감수성인 것이다.

김용민 PD는 "억울하고 서러운 사람, 약자, 없는 사람을 위해서 할 말을 하겠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언급한 모든 약자들에 여성도 들어가고 노인도 들어가고 장애인도 들어가고 노동자도 들어간다는 사실을 아는 것일까? 그리고 약자를 위해 말한다는 것은 곧 우리의 사고 프레임을 약자 배려의 프레임으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인가?

그가 말하는 약자에는 자신들이 정치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진보 쪽 사람들만 포함되는 것인가? 나만이 옳고 정의롭다고 우기는 것처럼 나쁜 태도는 없다. 무조건 모든 것을 자기 반대당에 대한 공격, 정권 심판으로 푸는 것은 현실 정치인으로서 자가당착적인 싸움꾼의 논리다.

위험한 '자기 우월주의'

 제19대 총선을 하루앞둔 지난 10일 오후 서울 노원구 공릉역 부근에서 열린 김용민 민주통합당 후보 유세에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나꼼수) 동료인 김어준 총수와 주진우 기자가 참석해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제19대 총선을 하루앞둔 지난 10일 오후 서울 노원구 공릉역 부근에서 열린 김용민 민주통합당 후보 유세에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나꼼수) 동료인 김어준 총수와 주진우 기자가 참석해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 권우성

'나꼼수'와 관련된 그동안의 사태를 보면 '나꼼수'와 그 지지자들은 자기들만이 옳다는 자기 우월주의에 빠져 있는 것 같다. 더구나 그 우월주의를 표현하는 방법은 매우 전투적이고 마초적이다. 그래서 억울하고 서러운 모든 사람들을 대변해 풀어놓는다는 그들의 말에는 성희롱적 망언과 약자 배려가 없는, 인권감성 제로의 망언들이 포함돼 있는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그런 사고가 또 안 터진다는 보장은 없다.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문제다. 김용민 PD는 자신의 활동 재개에 대해 "내가 내 매체를 통해서 내 말을 한다는데 그 말에 대해 하지 말라고 하고 여기서 쫄게 되면 표현의 자유에 대해 자기 검열을 하는 그런 게 아니겠나"라며 의문을 표했다.

8년 전 김용민 PD의 발언이 문제가 된 건 검열 때문이 아니다. 또한 성문제에 대한 엄숙주의 때문도 아니다. 그것을 마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검열이나 또는 도덕주의에서 비롯된 엄숙주의 때문으로 인식하는 것은 정말로 난센스다. '나꼼수'에 대한 비판은 아무리 과거라도 그들이 그토록 열렬히 주장해 마지않는 '약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그들 사고의 실체가 맘껏 누린 '표현의 자유' 덕에 만천하에 드러났고, 대중이 그에 대해 반응을 보인 것뿐이다.

그러니 공중파도 아닌 '나꼼수'는 심의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이 마음껏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쫄지마 씨바' 한다고 뭐라 그럴 사람 아무도 없다. 나도 처음에 '쫄지마 씨바'를 들었을 때 통쾌하고 속이 후련했다. 그러나 자유롭게 말할수록 자신들의 거짓 없는 본 모습이 여과 없이 그대로 노출된다는 사실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기득권 보수세력은 각종 예의와 '엄숙주의'로 치장해 그들의 머릿속을 들킬 기회가 그만큼 적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엄숙주의 #검열#약자 배려#나꼼수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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