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내의 성화가 장난이 아니다. 그 착하디 착했던 아내가 홈스쿨인지 뭔지를 한 다음 부터 몹시도 민감해졌다. 별 것도 아닌거에 화내고 큰소리치고 짜증낸다. 홈스쿨 수업은 자신의 집을 모르는 남에게 최소한 욕실과 강의할 수 있는 거실은 개방해야지 수업 진행이 가능한지라 타인의 방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내의 성격도 한몫했다.
그런 이유로 아내로선 집안 청소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어수선하게 놓여 있는 책과 물건들은 큰방과 작은방에 가져다 놓고 정리하면 되지만 욕실만은 필히 청소해야 된다는 게 아내의 생각이다. 내가 보기엔 괜찮은데 이상하게 욕실의 찌든때와 곰팡이에 민감한 아내이다.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욕실청소를 시작하기로 했다. 수세미로 밀고 욕실 청소 세정제로 해도 별로 깨끗해 보이질 않는다. 이것 저것 시도해보다 안되어서 결국 인터넷에 '욕실 곰팡이 제거'라는 검색어로 방법을 찾아보니 화장지와 ○○락스를 이용한 방법이 소개되어 본격적으로 곰팡이 제거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일단 락스와 화장지를 준비했다. 자세한 락스 비율에 관한 용법은 설명이 부족해서 청소노동자로 일하고 계신 어머니에게 방법을 물어봤다. 100% 원액을 사용해야 된다고 이야기하신다. 그래서 락스 원액을 스프레이에 넣고 75m 세 겹짜리 싸구리 화장지를 가지고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벽면부터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난관이다. 생각대로 되질 않는다 연신 떨어지길 일쑤이고
기껏 분무질을 했는데 엉뚱한 곳에 갖다 붙는다.
실수도 몇 번했지만 조금 지나니 요령이 생긴다. 벽면에 화장지를 붙이는 작업에 속도가 나기 시작했다. 조금 지나니 수영장 에서 맡아본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환기가 잘 안 되는 좁은 욕실에서 이곳저곳 원액 100%를 뿌려되서 그런지 갑자기 눈이 따가워지며 가렵기 시작했다. 좀 더 있으니 머리가 아프고 구토가 나올 것 같다. 이러다 곰팡이를 죽이려다 사람이 먼저 죽게 생겼다. 눈물이 나기 시작해서 도저히 작업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작업을 낮에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밤에 식구들 다 잠든 사이에 했다. 곤히 자고 있는 아내가 원망스럽다. 확 꿀밤이라도 때려주고 싶다.
청소노동자로 매일 이런 작업을 몇 년째 하고 계신 어머니가 생각났다. 락스도 100% 원액으로 사용하면서 안전보호구는 제대로 하고 작업하는지, 마스크는 끼고 하시는지 걱정이다. 집에서 조금 하는 것도 이렇게 머리가 아프고 구토가 나올것 같은데 이것이 일상인 어머니는 얼마나 힘드실지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하지만 이런 힘든 작업을 해도 이것저것 떼고 하면 실수령액 75만 원도 안 되는 어머니의 임금. 몇 해 전에는 심지어 최저임금과 법정퇴직금 자체도 지키지 않았던 용역업체에 일하신 적도 있었다.
그나마 지금 일하시고 계신 업체는 최저임금은 지키고 있다곤 하지만 눈물겨운 용역업체의 비용절감의 일환으로 근무시간을 8시간 근무에서 7시간으로 줄여 임금을 삭감하여 비용을 줄인다. 계약기간은 어찌나 짧은지 3개월씩 재계약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퇴직금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매일 TV에 나오는 "기업이 잘돼야 국민이 편안하다"는 CF, "기업 하기 좋은 도시"라고 떡하니 붙어 있는 지하철역 광고판, '기업 프랜들리'를 몸소 실천하고 계신 정부와 기업 관계자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낙수효과 등. 도대체가 동떨어진 이야기이며 와닿지 않는 이야기인 것 같다.
노동하기 편한 도시가 진짜 행복한 도시이며 잘 사는 나라 아닌가? 기업만 편안하면 만사 오케이인가? 누굴 위한 비용절감인가? 지금 정부의 선진화 정책이니 입만 열면 선진국, 선진국 노래를 하시는 분들의 선진국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곰팡이 제거를 위한 욕실 청소로 비롯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나를 더욱 어지럽게 한다. 아직도 코끝에서 나는 수영장의 그윽한 향내가 떠나질 않는다. 소금을 주원료로 만들었다는 락스는 왜 이렇게 나를 어지럽고 구토하게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떠나질 않으며 왠지 세상이 다 거짓말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