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두 번째 '잡년행진(슬럿워크, Slut walk)'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들 그동안 입지 못했던 옷을 당당하게 입고, 그런 나를 보며 '잡년'이라 단언하는 사람들에게 '그래도 네가 만질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외치기 위해 간다고 했다. 마치 축제 같은 느낌이라 흥미로웠다. 그동안 복장과 몸만으로 함부로 사람을 평가하고 함부로 할 수 있다는 듯이 얘기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아왔기에 한번 찾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장을 열었지만 무언가 'slutty(잡년 같은)'한 옷 같은 건 내게 없었다. 몸매가 안 좋은 내가 입어봤자 타인의 불쾌감만 돋울 거란 생각만 해왔으니. 한참을 고민하다가 웃음이 터졌다. 아니, 꼭 어떤 옷을 입으란 법이 있나. 평소에 내가 입고 싶고 이쁘다고 생각하는 옷을 입으면 되지. 그 기준은 사람들마다 다를 것이고, 다들 입고 싶었을 텐데 주체적으로 입지 못했던 것을 입고 나가는 것이 아닌가. 내 몸은 그 누구도 손댈 수 없는 내 것이라고 외치기 위하여.
고민 끝에 브래지어를 벗고 행진에 가기로 했다. 보이지 않지만 절대 풀어서는 안 되는 금기. 가슴을 예쁘게 모아주기 때문에 찰 때도 있지만 그럴 필요가 없을 때에도 차야만 하고,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보여져서'도 안 된다. 어떤 선택지를 택해도 '헤픈 년'으로 보이니 꽁꽁 숨겨야만 하는 것이었다. 작년 잡년행진 참가자들이 진행했다는 '속옷 벗기 퍼포먼스'도 이런 통념을 거부하기 위해서였을까.
잡년행진 당일인 28일, 참여 준비를 위해 한여름의 지하철역 화장실에서 속옷 후크를 풀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차기 시작했으니 이 답답한 것을 꼬박꼬박 찬 지도 10년이 넘었다. 한번도 집 아닌 곳에서 풀어볼 생각도 못 했고 '추한 것'이라고만 배웠으니, 그것들은 나 나름의 탈주이자 저항이었다. 불현듯 '아, 남자들은 항상 이런 느낌으로 다니겠구나. 부럽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눈물이 날 정도로 시원하고 자유로운 느낌이었다.
"'꼴리는' 건 본능 때문이라도 '덮치는' 건 권력 때문"오후 4시 서울 탑골공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미리 도착해 있어서 놀랐다. 1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은 저마다 팔이나 등, 어깨에 바디페인팅으로 구호를 써 두었고, 분위기는 생각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널널했다. 일부 여성은 속옷을 그대로 드러내거나 나처럼 벗은 채 참여했고, 행진에 참여한 남성들은 더운 날씨에도 감히 생각지 못하던 짧은 반바지부터 시작해서 편하고 예쁜 치마까지 거리낌 없이 입고 왔다.
탑골공원과 명동에서 진행된 잡년행진은 '야한 옷을 입어도 성폭행 당하지 않을 권리'부터 시작해 '자신이 주체가 되어 당당하게 욕망을 드러낼 권리', 나아가 '소수자의 권리'나 '청소년의 성적 결정권' 등 다양한 권리를 외치기 위해 만들어졌다. 행진에 '잡년'이라는 수식을 쓴 이유는 여자를 '성녀'와 '창녀'로 쉽게 구별 통치하려는 시선에 대항하기 위해서다. 복장 같은 외모만으로 여자를 쉽게 '잡년'이라고 단정짓고, '그러니까 당해도 싸다'는 남성의 시선에서 만들어진 언어를 부수기 위해 적극 차용한 것이다.
대개 잡년행진에 대한 반응을 보면, "몸매도 안 되는 것들이 웬 ××이냐, 줘도 안 만진다"는 신경증적인 반응부터, "남자는 원래 성욕이 강해서 그런 옷차림엔 어쩔 수 없다", "니들이 알아서 조심해야 한다"는 주장 등이 다수였다. 28일 잡년행진이 끝난 뒤 가장 먼저 올라온 <연합뉴스>의 기사 댓글들을 보았다.
범죄자는 마땅히 처벌해야지, 근데 니들도 그렇게 입고 다니는게 범죄를 유발하는 건 모르지? 너희도 범죄유발자니까 여성부에 개인정보 공유하고 전자발찌 차라.(top_****)니들이 막 벗고 다닌 니들 탓해야지 누굴 탓해.(trog****)축구공에 '차지 마!'라고 해놓고 차면 나쁜 놈 되는 거야?(yss2****)
이날 쏟아지는 햇볕 사이로 종일 행진하며 '잡년'들이 가장 많이 외친 구호는 "성폭행은 가해자 탓, 피해자 탓 하지 마라", "입었어도 벗었어도, 함부로 손대지 마"였다. 여성(남성)의 몸을 보고 성욕을 갖는 것과 그것을 '성폭행'이라는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걸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성욕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생리적 현상이지만 추행, 희롱과 같은 성폭력은 애당초 강자가 약자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폭력과 권력에서 비롯한 결과다. 성폭력의 근원에는 성욕이 아닌 폭력성이 있고, 단지 그 폭력성이 성을 매개로 발현될 뿐이다.
결국 '여자들이 벗고 다니며 성욕을 부추겨서'라는 변명으로는 성폭력을 정당화할 수 없으며(아니, 그럼 누구는 성욕이 없는 줄 아나?) 그렇게 맥락이 전혀 다른 두 사실을 뭉뚱그려서 '원래 남자는 여자랑 달라서 그렇다'며 당연한 인과로 치부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왜 유독 성폭행의 문제만이 피해자의 책임으로 전가되는 것인가? 중요한 건, '강자의 폭력을 당연하게 여기는', '강자의 폭력을 약자가 알아서 피해야 하는' 그 구조를 깨는 것이 아닌가? '강간당하지 않으려면'이 아니라, 당연히 '강간범을 없애려면'으로 질문의 방향이 바뀌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금은방에 도둑이 들었을 때 도둑을 욕하지 '그러길래 비싼 보석가게를 왜 해?'라고 물어보는 정신나간 사람은 없다. 반면 성폭력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러길래 왜 야한 옷을 입고 돌아다녀?'라고 묻는 사람은 수두룩하다.(@NEWDON****)슬럿워크 시위 사진 보면 마음 아픈거 많음. 평범한 티셔츠에 청바지 입고 "이게 제가 강간당했을 때 입은 옷차림입니다. 이런데도 제가 잘못된 건가요"라고 써진 피켓 든 사진 보고 정말 엉엉 울었다.(@Ys_***)군복 차림의 남성 참가자 송현민씨는 "여성들이 야하게 입어서 성범죄가 일어난다는데, 그럼 남성뿐인 군대에서 성범죄가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인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누구든 외모와 성별에 상관없이 강간 등의 성범죄를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며 "성범죄의 원인을 여성 등의 약자에게 돌려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오마이뉴스>, <탑골공원에 등장한 '잡년'... "내 몸 만지지 마">)잡년행진의 첫째 목적은 바로 성폭행을 피해자의 옷차림 탓으로 전가하는 그 착각을 깨는 것, 자신이 입고 싶은 것을 입으면서도 안전할 권리를 주장하는 것에 있다. 내 몸을 볼 권리는 있어도, 내 몸을 만질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는 것이다. '꼴리는' 것은 본능 때문일 수 있으나, '덮치는' 것은 권력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모든 남성이 잠재적 성폭력범이라고?
잡년행진의 퍼포먼스를 보는 일부에서는 "모든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몰고 있다"며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성범죄를 '노출한 여자 탓'으로 돌리는 건 극히 일부인데 이것을 모든 남성 일반의 문제로 보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잡년행진의 목적이 과연 '모든 남성은 가해자'라며 적으로 돌리는 것이었는지 생각해야 한다.
잡년행진의 진행자 '혜원'씨는 시위에서 "우리는 모든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모는 사회적 분위기에 분명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성폭력은 앞서 썼듯이 본능이 아닌 권력 때문에 일어나는 것인데도, 그 강간을 '남성의 본능 탓'으로 여기는 생각 자체가 역으로 성욕을 가지는 모든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모는 발상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이다. 마치 게임이 무조건적인 폭력살인을 부추기고, '야동'을 많이 보는 사람들은 당연히 성폭행을 하게 된다고 여기는 논리처럼 말이다.
"남자인 나는 생각도 하지 말고 땅만 쳐다보고 다니란 거냐"는 반응 역시 상당히 많았다. 물론, '야한 옷차림'을 한 여성을 바라보는 남성의 시선까지 여성이 강제로 규정하고 단정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 '시선'에는 몸을 드러내는 자신의 욕망 역시 부분적으로 들어갈 수 있고, 이 부분은 여성들도 인정하고 요구하는 부분이 다를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누군가에게 '남성들의 본능적인 시선'이 충분히 불편함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냥 그들이 원래부터 잘못되어서일까? 이 지점에서 우리는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을까?"라고 질문해야 하며, 답으로 남는 것은 결국 '성억압적 구조'다.
마치 직접적인 성폭행을 하지 않더라도 벗은 여자의 몸을 보며 남성들이 하는 이야기 속에서 '권력'이 다시 생성되듯이, 미디어, 텍스트, 직장, 일상 대화 등 셀 수도 없이 많은 곳에서 성 억압이 일어나고 있다. 성폭력 피해사례를 어렸을 적부터 최소 한번쯤 보거나 겪었고 그 불안에서 자유롭지 못한 일반 여성들에게, 이런 현실은 거부할 수 없는 '보편적인 억압'일 수밖에 없다. 추행과 희롱은 일부 몰지각한 변태성욕자 때문에 발생하는 '예외'가 아니라 나도 모르는 사이 일상에서 존재할 수 있는 폭력인 것이다.
잡년행진의 목적은 남성 일반을 '영원한 적'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그런 억압적인 '구조'가 존재한다는 걸 다수 앞에서 알리고 극복하자는 것에 있다(앞서 쓴 <연합뉴스>기사에 달린 800개가 넘는 댓글의 전반적인 양상을 보라. 일상의 보편적인 지배구조는 다름 아닌 이런 것이다).
때문에 어느 코멘트의 조롱처럼 '교도소 앞에서 시위를 하지 않고', 사람들이 많은 탑골공원과 명동에서 행진을 진행했던 것이다. 교도소 앞에서 시위를 하라는 비난 역시, 일상에서 언제든지 존재할 수 있는 성억압의 주체를 교도소에 있는 범죄자로만 한정시킨 발상이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보는 이상 잡년행진은 그저 '여자들이 남자는 다 그런 족속이라고 외치는 시위'라고, 원시적인 시선에서 해석될 수밖에 없다.
그 누구도 내 몸을 대상화하고 재단할 수 없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진짜ㅋㅋㅋ 만지고 싶은 충동도 얼굴 봐야지 생기는거야. 어디서 개미핥기 같이 생긴 ×들이 처벗고 다녀. 지들 몸매자랑 하려고 다 벗고 다니는 ×들이 꼭 지하철 같은 데서 누가 쳐다봤다 어쨌다 씨부렁거리더라?(<연합뉴스> 기사 댓글, ngco****)바로 위와 같은 시선들은 '남성이 원하는 몸매와 얼굴'이 아닌 사람들의 노출을 죄악시해 왔다. 이런 시선을 내면화하여 입고 싶었던 옷을 마음껏 입지 못했던 사람들을 숱하게 보아왔으나, 이날 행진의 하루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어깨가 드러난 원피스든 비키니든 망사 스타킹이든 정장이든, 누구든지 성별과 나이, 외모에 구애받지 않고 최대한 자신이 이쁘거나 만족스럽다고 생각하는 옷을 입고 당당하게 '축제'처럼 행진했다. 내가 이날 브래지어를 벗어던진 나에게 만족했고 누군가는 화끈한 시스루 패션의 자신에게 만족했듯이 말이다. 남의 시선에서 벗어나서 "처음으로 반바지를 당당하게 입었다"고 말하던 한 참가자도 있었다.
잡년행진 현장에서 혜원씨는 "나 역시 큰 가슴 때문에 지하철에서 추행을 당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내 가슴을 꽁꽁 숨길수록 이상하게 나는 성희롱에 더더욱 노출되곤 했다"며 "나의 노출이 '나는 가슴 큰 년'임을 자랑한다며 당해도 싸다고 비난하는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무엇보다 내가 내 몸을 긍정하고 인정해야 한다"라고 발언했다.
민주통합당 청년비례대표 장하나 의원 역시 발언대에 올라 "내가 좋아하고 아끼고 싶은 사람들에게 예쁘게 보이고픈 감정과 마음을 무시하고, 권력의 문제를 피해자의 탓으로 몰아세우는 구도에 반대한다"며 "내가 이 자리에서 바지를 벗는다 한들 바뀌는 것이 없어야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현재의 언론 보도가 잡년행진 속에 들어 있는 다양한 섹슈얼리티(성 소수자, 청소년, 군대 성폭행 피해자, 성노동자 등)를 무시하고 결국 '벗은 여성의 몸'에만 집중했듯이, 앞으로도 잡년행동이 '진짜 잡년' 취급에서 벗어나려면 많은 시간과 고통이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잡년행동이 '내 몸에 대해서 만질 권리가 없다'는 일차원적인 슬로건을 넘어 장기적으로는 성소수자와 성노동자, 청소년을 포함해 좀 더 많은 사람들의 주체적 결정권을 외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잡년행진의 선언대로, 내가 좋다면 사실은 벗어도 상관없고, 벗지 않아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그 누구도 자신의 몸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을 권리, 각자가 가지는 욕망을 주체적으로 전시하면서도 폭력에 노출되지 않을 정당한 권리를 찾는 과정이며(여성뿐만 아니라 여기에는 소수자와 청소년 모두가 포함될 것이다), 판도라처럼 꼭꼭 닫아만 왔던 마음을 해방시키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