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는 왜 우리를 선택했을까?
런던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날 아침, 올림픽 개막식을 보고 있었다. 70살이 넘은 폴 매카트니가 나와서 피아노를 치며 '헤이쥬드'를 부르고 있다. 그는 노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열창을 하며 1만 6천여명의 개막식 참가자들을 음악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갑자기 그가 우리에게 했던 말이 생각이 났다. 교사로 부임한 첫 해부터 한 해도 빠짐없이 오케스트라를 구성하여 운영했다는 그가, 우리를 처음 만나던 날 우리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오케스트라 단원을 뽑을 때 기준으로 삼는 것은 악기를 연주하는 실력이 아니라, 오케스트라를 하고 싶어하는 열망이라고. 혁신학교 교사를 뽑는 기준은 화려한 이력이나 경력이 아니라, 혁신학교에 대한 열망이라고.
발령을 통보받고 공사가 완공되지 않아 허름하게 차려진 회의실에 모여 서로 인사를 나누고 첫 날을 시작했을 때, 이리 저리 바쁘게 움직이며 교사들을 지휘하던 그가 기억이 난다. 그는 뒷짐 지고 가만히 있으면서 명령만 하는 교장도 아니고, 이것저것 간섭만 하는 교장도 아니었다. 필요한 것은 지시하고, 교사들이 모여 열심히 일하는 것을 지켜보다 부족한 것이 보이면 만들어 주고, 급한 일이 벌어지면 교육청으로 낮이고 밤이고 달려가는 교장이었다.
그때에 난 그가 진정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진정한 지휘자라면 무엇이 진짜 음악이고 무엇이 가짜 음악인지 단번에 구별해 낼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이름이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는 진짜 교장을 얻게 된 것이고, 그는 진짜 교사를 얻게 된 것이다.
2. I LOVE YOU ~
출근길에 빵집에 들렀다. 무엇을 살까? 하트모양으로 'I LOVE YOU'라고 쓰여진 젤리가 있다. 젤리를 손에 들고 회의실에 들어간다. 언제나처럼 일찍 출근하는 그녀가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 나는 그녀에게 젤리를 선물하며 "I LOVE YOU!"라고 인사한다.
어제 우리들은 점심을 먹고 나서 나의 제안으로 '중간점검'이란 것을 했다. 개교 날짜는 다가오고 일은 진척되지 않고 몸은 피곤하고 서로 간에 부딪침도 보인다. 나 역시 이유 없이 열을 받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한다.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들, 제안들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청춘'과 '동지'라는 단어를 좋아한다는 숙*샘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미안했다는 사과의 말도 있었고, 한 달에 한 번씩 이런 시간을 갖자는 제안도 있었다. 그녀가 했던 말들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갑자기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녀에 대한 인상은 강하고 좀 무섭겠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진짜 그녀는 별처럼 반짝거리는 참 예쁜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를 보고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잠깐 동안 '혁신 학교 괜히 온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든 적이 있었다. '앞으로도 매일 매일 이러면 어떡하지?' 하는 순간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를 보는 순간 모든 걱정과 근심이 눈 녹듯이 사라져버리고 나는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때에 나는 처음으로 내가 혁신학교에 오려고 한 진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무수한 말들을 넘어 서는 것, 그것이 내게 의미가 있는 것이든 혹은 의미가 없는 것이든, 내가 하루 하루 힘들게 먼 길을 지나 혁신학교로 출근을 하는 까닭은 멋진 건물을 만들기 위한 것도 멋진 수업을 하기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기 위한 것이다. 동지들과, 아이들과, 학부모와 혹은 처음에는 낯설었던 어떤 누군가와 말이다. 그런 반짝이는 순간들을 만나기위해서 나는 오늘도 혁신학교에 간다!
3. 이름을 말하다.
학교 문을 여는 소박한 행사를 했다. 아이들과 교사, 학부모와 직원들이 모두 강당에 모였다. 행사 중의 하나로 자기 이름 말하기 시간이 있었다. 148명의 아이들 모두가 자기 이름을 소개했다. 우리 반 아이들도 내가 들고 있는 마이크에 입을 대고 한 명 한 명 자기 이름을 말했다. 정*이는 이름을 틀리게 말해서 다시 말했다. 부끄러워 차마 이름을 말하지 못한 친구의 이름은 담임 선생님이 대신 말해주었다.
한 명 한 명 이름을 말할 때에 모두가 환영의 박수를 쳐주고 환하게 웃어주었다. 모두의 앞에서 '저는 **입니다.'라고 당당히 말하는 것으로 첫 행사를 한 것은 참 잘한 일이었다. 이름을 틀리게 말한 우리 반의 정*이도, 부끄러워 자기 이름을 말하지 못해서 담임 선생님이 대신 말해주었던 친구들도 자기의 이름을 말할 때에 '나도 이 학교의 주인이구나!' 라고 생각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이름을 말하는 행사가 끝난 후에 모두가 소원지를 써서 학교나무에 붙이는 행사를 했다. 나의 소원은? 언제나 맑은하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