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의 박근혜,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그리고 안철수의 출마선언으로 2012 대선판이 급격하게 요동치고 있다. '박-문-안'의 3각 경쟁구도는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가. 누가 2012 대선판의 시대정신을 리드하며 최종 트로피를 거머질 것인가. '박-문-안'의 경쟁구도는 크게 두 개의 정치전선을 대표하고 있다.
첫 번째 전선은 '정권재창출 대 정권교체' 간의 대결이다. 두 번째 전선은 '낡은 정치의 과거 대 새로운 정치의 미래' 간의 대결이다. 박근혜와 문재인은 첫 번째 전선에서 대립각을 세우며 안철수에 대한 견제와 견인을 내세운다. 안철수는 박근혜와 문재인을 낡은 정치의 과거로 포지셔닝하고 새로운 정치의 미래로 나아갈 것이며, 여든 야든 좋은 사람, 좋은 정책은 다 쓸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 19일 안철수의 출마선언은 '박근혜 대 '문재인-안철수'구도를 염두에 두고 쏟아진 기자들의 모든 질문을 뒷전으로 밀어내고, ''박근혜-문재인 대 안철수'구도의 포석을 던졌다.
또 그는 출마선언에서 정권교체라는 말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또한 '박-문-안'의 경쟁구도는 크게 두 개의 경제전선을 대변하고 있다. 첫 번째 전선은 '성장이냐 복지냐'의 공허한 프레임을 그대로 둔 채 경제민주화와 복지담론으로 이동한 박근혜가 문재인과 샅바싸움을 벌이는 대결이다. 두 번째 전선은 박근혜와 문재인이 경제민주화 담론에서 싸울 때 안철수가 '성장이냐 복지냐'의 프레임을 넘어 그와 함께 '혁신적 성장동력'이라는 키워드로 경제성장담론를 선점해 중원에서의 결투를 신청한 것이다.
안철수, 정치와 경제 양 전선에서 미래를 대표무릇 선거는 구도, 인물, 조직, 정책에 의해 승패가 좌우된다. 큰 선거일수록 구도가 제일 중요하고, 작은 선거일수록 조직이 중요하다. 인물과 정책은 국면을 좌우하기보다는 득점 및 실점의 포인트로서 등락을 거듭하지만, 구도를 바꾸지는 못한다. 지금까지 '박-문-안'의 3각 경쟁구도에서 이니셔티브(기세)를 잡은 쪽은 안철수로 보인다. 구도와 인물로 볼 때 정치와 경제 양 전선에서 안철수는 미래를 대표하고 있다. 그러나 안철수의 최대 약점은 조직이다.
이 약점을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깊어지면 안철수는 위기에 처하고 '박근혜 대 문재인-안철수'프레임으로 돌아가 단일화 압력에 직면할 것이다. 민주통합당의 희망이다. 그런데 이렇게 야권후보단일화를 이룬다고 박근혜를 이길 수 있을까. 어렵다. 그 이유는 안철수가 내건 경제전선의 의제는 '문-안'단일화로 수렴할 수 있지만, 정치전선의 의제는 수렴되기가 쉽지 않다.
정당혁신과 국민동의를 전제로 후보단일화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현재로선 안철수가 낡은 정치 대 새로운 정치의 프레임을 버리고 '정권재창출 대 정권교체'의 프레임에 올라탈 명분도 근거도 약해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건 이른바 '안철수 현상'과 친하지 않다. 문재인의 민주통합당이 그야말로 환골탈태 수준의 성찰과 반성을 하고, 또 그것에 국민이 마음을 열어야 하는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안철수현상'은 현재진행형이고, 또 미래를 향한 가장 강력한 흐름이다. 그 상태에서는 이른바 '시민연합정부론','민주진보집권공동플랫폼'론으로는 새로운 정치의 미래를 꿈꾸는 '안철수 현상'을 담아낼 수 없다. 그것은 2012년 대선에서 제기된 2개의 전선구도를 일면적으로만 이해하는 낡은 진영논리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은 정권교체와 정치교체, 시대교체를 2012 대선의 목표로 제시했다. 안철수는 출마선언에서 새로운 정치, 새로운 시대를 얘기하고 있다. 결국 정치교체, 시대교체가 자신의 대선 출마이유란 얘기다. 그런데 문제는 불행히도 이미 여야의 공수교대를 경험한 국민들이 정권교체, 정치교체, 시대교체를 등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2012년 대선에서 야권이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정권교체와 함께 새로운 정치의 미래를 열망하는 민심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방법밖에 없다. 어느 한 쪽만으로 이길 수 있다거나, 어느 한 쪽의 손실이 있어도 이길 수 있다는 상황인식은 새누리당 정권의 연장을 부를 뿐이다. 결국, 정치교체와 시대교체가 목표라면 정권교체는 그 수단이고 경로일 뿐이다. 첫 번째는 누가 정치교체, 시대교체에 적합한 지의 경쟁이 이뤄져야 하고, 그 다음 둘째는 정치교체, 시대교체를 위한 가장 바람직한 정권교체의 경로를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한 가지 해법은 있다. 난 개인적으로 새누리당의 박근혜를 이해하고 존중한다. 또 민주통합당의 문재인을 이해하고 존중한다. 또 이른바 '안철수현상'을 이해하고 공감한다. 이른바 군소정당의 군소 후보들도 마찬가지다. 어쨌든 '박-문-안'으로 대표되는 세 가지 큰 흐름이 대한민국 대다수 국민을 대표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왜 인위적인 단일화를 해야 하는가 국민이 납득하기 어렵다.
대선 결선투표 도입해야 하는 이유이건 정당 내부의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적어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모든 사람은 대선에 출마해 국민의 선택을 구할 권리가 있다. 다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이라면 최소한 국민 과반수 이상의 득표를 받아야 민주적 정당성도 생기고, 국정운영의 동력도 생긴다. 대선 결선투표를 도입해야 하는 이유다. 이미 대선 결선투표를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다. 국회는 이번 정기국회 폐회 이전에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정치공학적 이해관계를 빼놓으면 사실 대선 결선투표를 거부할 명분은 찾기 어렵다. 박근혜 측은 대선 결선투표는 '개헌사항'이라거나, 예산낭비라거나, 또는 시일이 촉박해 불가능한 것이라고 버틸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측은 '어게인 2002'를 꿈꾸며 '문-안' 후보단일화에서 승리한다는 기대 때문에 결선투표 도입에 미온적일 수도 있지만, 거꾸로 안철수 측과의 후보단일화에서 패배할 경우 공당이 대선후보도 못내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궁극적으로 결선투표를 받아들이는 게 더 실익이 크다.
안철수 측 역시 대선 결선투표를 마다할 명분은 없다. 대선 결선투표를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국민의 자유로운 선택권이 보장되어, 후보단일화라는 정치공학에 매달릴 이유가 없다. 민주통합당도 대선후보를 못 내는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다. 안철수 측도 3자구도에서 박근혜의 집권을 허용하는 경우 정권교체 실패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 부담감을 털고 국민이 원하는 새로운 정치실험을 계속할 수 있다.
문제는 박근혜 측이다. 박근혜 측이 대선 결선투표를 계속 거부하는 경우 '문재인-안철수'는 새누리당 정권 연장을 반대하고, 새로운 정치의 미래를 열기 위해 이른바 '후보단일화' 논의의 명분과 근거를 얻을 수 있다. 후보단일화가 필요한 것은 오로지 박근혜가 대선 결선투표를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때가 되면 '문-안' 단일화의 조건이 성숙돼있어 단일화의 방법과 결과가 별로 중요치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2012년 대선의 승패는 대선 결선투표 도입 여부에 달려있다. 후보단일화는 그 다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