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의 한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K(42, 기술직)씨는 10월 중순, 회사로부터 청천벽력같은 통보를 받았다. "해고수당을 줄 테니 나가라"는 것이었다.
해당 회사에서 K씨는 월 280만 원의 급여를 받고 근무했었다. 이 280만 원이라는 돈은 근로계약서에 명시되어 있는 금액이었는데, 회사에서는 이 금액을 어떤 이유에서인지 기본급, 근속수당, 식비, 교통비 등으로 분류해서 총액을 지급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매출이 증가하면서 야근이 잦아지게 됐고, 회사에서는 직원들의 야근수당을 산정할 때 근로기준법대로 통상임금의 150%로 적용하지 않고, 기본급에서의 할증률만 적용하여 지급했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애초에 급여의 항목을 세분화 한 것도 이처럼 불법 고용행위를 위한 "편법"을 계획한 이유였던 것이었다.
K씨의 급여 중 기본급은 실제 수령액의 50% 수준인 170만 원 정도였기 때문에 이같은 계산법으로 인해 야근수당은 상당한 차액으로 낮게 지불되게 되었고, 이에 불만을 품은 K씨는 사장인 L씨에게 "야근수당은 통상임금으로 계산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건의했다가 이같은 봉변을 당한 것이다.
물론 근로기준법에는 식대, 교통비, 근속수당 등 근로자의 근무행태나 실적 등과 관계 없이 정기적으로 지급되어지는 모든 금액을 통상임금으로 규정하고 있고, 주 40시간을 초과하는 근로시간에 대해 이러한 통상임금의 150%를 지급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K씨의 죄는 "사장님, 법을 지켜주세요"라고 말한 죄였던 것이었다.
이 회사에 근무한 지 15년차라고 밝힌 K씨는 울분을 터트리며 말을 이었다.
"주 40시간이요? 그런 건 바라지도 않습니다. 하루 9시간 이상을 원래 정한 월급을 받으면서 다녔고 토요일도 늘 그렇게 근무했으니까 1주일로 치면 거기서만도 초과되는 시간이 20시간이 넘어요. 그런데 거기서 일을 더 시키겠다니까 그 시간만이라도 법대로 계산해 달라는게 그렇게 무리였나요?"중학생인 두 자녀를 둔 K씨는 막막하기만 하다. 청춘을 다 바친 직장에서 쫓겨난 것도 가슴아프지만, "준법정신이 투철하신 분"으로 낙인찍혀 거주하는 지역의 동종 업계에 취업을 한다는 것이 요원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법이라는 건, 돈있는 사람들이 당당하게 살라고 만들어준 것인데, 제가 겁도 없이 뭘 모르고 까불었나 봐요."근로기준법은 근로자가 적어도 억울한 일은 당하지 않도록 보장해주려고 만든 법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 법의 혜택은 오히려 많은 보수를 받고, 좋은 근로환경에서 일하는 대기업의 근로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인지 필자는 참으로 큰 회의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군가 말했다. "법은 최소한의 윤리"라고. 하지만 청년실업이 대선공약에까지 필수사항이 되어버린 오늘날, 수백만의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5% 남짓한 대기업의 근로자들이 "법대로 처우받는 것"을 부러워하며, 법이 지켜주지 못하는 어두운 그늘, 어떤 정치가도 돌아봐주지 않는 막다른 길에 몰려 있는 듯하다.
고개를 숙여 커피잔만 바라보는 K씨의 손등에는 15년의 고단한 삶이 선명하게 씌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