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고약타, 새해 벽두부터. 어머니의 제삿날인 1월 2일, 제사 준비를 위해 온 가족이 모여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핸드폰에서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무심코 받으니 검찰청 출입기자란다. '뭔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검찰에서 발표한 내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이 이어진다. 영문도 모르는 내게 그 기자는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검찰에서 저와 아버지(안재구)를 기소하면서 수사내용을 발표했는데 간첩 혐의란다. 계사년 새해 벽두부터 웬 날벼락.
화기애애한 집안 분위기는 싹 가라앉았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어마어마한 내용들이 줄줄이 뜬다. 그새 한 포털사이트에서는 실시간 검색어 1위로 '안재구 불구속기소'가 올라와 있었다. 곧이어 나와 아버지의 핸드폰으로 지인들의 전화가 줄줄이 걸려 왔다. 새해 덕담을 주고받기가 민망하리 만치 걱정 섞인 목소리들이다.
지난 2011년 7월 초 나와 아버지가 국정원, 경찰청으로부터 압수수색을 받고, 또 지루한 출두조사를 거쳐 1년 반인 지난 2013년 새해 벽두에 검찰에서 기소한 것이다. 이제는 기억 속에서도 가물가물한 사건이다.
독자들도 기억하시리라. 2011년 7월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에서 검찰과 국정원으로부터 내용을 건네받아 '북한 정찰총국 지령 받아 간첩 활동'이라는 어마어마한 제목으로 보도를 했던 <민족21> 사건. 그 해 여름 소위 왕재산 사건과 더불어 공안정국을 야기했던 '부자(父子) 간첩' 사건이다(관련기사 :
<"간첩혐의? 국정원이 우리 집 덮쳤어요 34시간 압수수색에 아버지 집은 쑥대밭">).
하지만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공안당국은 애초 자신들이 주장하고 언론을 통해 여론재판을 했던 왕재산의 하부조직이었다는 혐의사실도, 북한 정찰총국의 지령을 받았다는 혐의사실도 밝혀내지 못했다. 나는 이듬해 2월까지 국정원에서 지루하게 출두조사를 받았지만 그들은 끝내 나를 구속시키지 못했다. 어마어마한 혐의 사실 역시 증명하지 못했다(관련기사 :
<"내가 천안함 폭침 '정찰총국' 지령 받았다? 국정원-조선일보의 '간첩놀이' 먹잇감이었다">).
아버지의 경우는 더욱 황당했다. 애초 나를 통해 북의 공작원과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혐의사실은 어디에서도 확인되지 못했다. 처음부터 수사를 거부했던 아버지는 몇 차례 경찰청 대공분실로 나와 달라는 출두요구서를 받았지만 묵살했다. 수사를 받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결국 수사기관은 단 한 차례도 수사를 진행하지 못했다.
혐의 증명 못한 국정원 수사... 10개월 지나 새해 벽두에 검찰 기소
까마득히 잊고 있던 이 사건을 두고 검찰에서 다시 연락이 온 것은 지난해 11월이었다. 당시 검찰에서는 내게 "올해 내로 사건을 마무리 짓고 싶다"며 한번 나와달라고 요청했다. 나 역시 이 사건을 더 이상 질질 끌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에 검찰에 출두했고, 1시간여 만에 조사를 마무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버지의 경우 검찰로부터 연락이 왔으나 역시 수사에 응하지 않았다.
그랬던 결과가 이제 검찰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발표된 것이다. 내용은 어마어마하지만 실은 공안당국의 간첩 조작 실패담일 뿐이다. 검찰이 기소를 하면서 언론에 공개한 내용은 검찰의 자의적인 주장에 불과하다.
우선 아버지의 경우 압수수색 당시 보유하고 있던 엄청난 분량의 자료(외장하드 10여 개 분량으로, 복제하는 데에만 36시간이 걸렸다고 한다)를 샅샅이 뒤져 확인했다는 몇 가지 문서가 혐의사실의 전부다.
검찰에서는 그 무슨 충성맹세니 보고문이니 주장하지만 이 문서가 과연 아버지 컴퓨터에서 나온 것인지조차 확인할 길이 없다. 디지털 자료의 경우 본인 입회하에 검증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조사를 거부했기에 그런 절차를 밟은 사실조차 없다. 아니 할 말로 수사기관이 끼워 넣은 것인지, 덧칠하고 가필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더구나 그 보고서란 문건은 실재 여부를 떠나 누구에게 전달한 것인지, 어떤 경로로 전달한 것인지 검찰 스스로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하는 것들이다. 지령을 받고 보고를 했다는 가장 초보적인 사실관계조차 불투명한 것들이다. 그런데도 대대적으로 떠드는 것은 무슨 의도인가.
올해 만 80세인 아버지는 2~3년 전부터 회고록 집필에 매달리고 있다. 이제는 귀도 어둡고, 기억도 깜빡깜빡한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자신의 삶을 글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에 오래 전부터 관련 자료를 모아 컴퓨터에 저장해두고 있었다. 그 자료에는 아버지가 두 차례나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남민전 사건과 구국전위 사건 관련 자료들도 있다. 이밖에 자신이 쓴 글들과 예전에 기록해두었던 정세 관련 내용이나 통일 운동 관련 단상들도 상당 양이 자료로 저장돼 있었다.
이런 자료를 샅샅이 뒤져 이적 표현물로 몰아가는 공안당국의 처사를 과연 인정할 수 있겠는가. 그 무슨 체제 전복을 위한 실제적인 행동을 한 것도 아닌, 팔순 고령의 노인이 자신의 생애를 마감하는 시점에 정리해온 자료들을 그 무슨 간첩 활동의 증거라도 되는 것처럼 우기는 것이 착잡할 뿐이다.
정부 허가 받고 남한 방문한 사람 만난 게 '회합통신'?
나의 경우는 더욱 답답할 노릇이다. 애초 북한 공작원과의 연계 여부와 왕재산 조직과의 관련 여부를 조사했던 수사기관은 이에 대한 별다른 증거를 찾지 못하자 내가 <민족21>의 취재와 사업 협의를 위해 일본을 방문해 총련 간부와 만난 사실을 '회합통신'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 간부의 경우 총련에서 남쪽과의 사업을 담당하는 사람이다. 공안당국은 이 간부가 북의 정치공작원이라고 주장하지만 이 간부는 이제까지 4차례나 남쪽을 합법적으로 방문했던 사람이다.
아무리 보수적인 정권으로 바뀌고 공안당국의 잣대가 달라졌다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일관성은 있어야 한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는 합법적으로 방문해 국정원과 통일부 관계자와도 만났던 그 간부를 내가 <민족21> 사업 협의를 위해 일본에 가서 만난 것을 회합통신으로 몰아가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처사다. 그런 식이라면 화해협력을 위한 교류사업을 하지 말라는 말과 다름없다. 공안당국 외에는 그 누구도 북이나 북과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공안당국은 늘 그렇듯이 이번에도 고무찬양, 이적표현물 제작, 소지 등 국가보안법의 대표적인 독소조항인 7조 위반을 나의 혐의에 끼워 넣었다. 2001년부터 2012년까지 모두 100여 차례 시민사회단체에서 통일 강연을 한 것이 내게 덧씌운 고무찬양의 혐의다. 민주노총, 농민회, 청년회, 교사, 학생 등 공개된 장소에서 공개된 방식으로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의 청중들을 대상으로 한 나의 강연이 고무찬양이라는 주장이다.
그리고 이러한 강의 내용을 토대로 2011년 3월 출간한 <행복한 통일이야기>라는 책이 이적표현물이라는 주장이다. 이 책의 경우 지금까지 모두 5쇄, 1만 부 가량 팔린 책이다. 통일 관련 책으로는 호평을 받고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책이다. 이런 합법적이고 대중적인 출판물조차 이적표현물로 몰아가는 공안당국의 뻔뻔함이 우스울 따름이다.
공안당국이 나의 10년 치 이메일을 샅샅이 뒤져 찾아냈다는 문서들도 조사과정에서 내가 인정하지 않았던 부분들이다. 취재메모, <민족21> 회의자료, 방북취재 당시 준비했던 사전 자료 등을 마치 북과 내통한 혐의가 있는 것처럼 흘리는 것은 이제까지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서 보여주었던 공안당국의 전형적인 짜맞추기식 수사일 뿐이다.
정권교체 실패의 업보인가... '공안정국' 걱정에 심란
저와 아버지 안재구, 두 부자의 사건. 나아가 공안당국이 친북좌파 잡지로 매도하는 <민족21> 사건의 진실은 결국 법정에서 드러날 것이다. 확인되지 않은 내용들을 보수언론에 흘리면서 사건을 예단하고, 낙인찍는 공안당국의 행태는 수십 년이 지나도 달라진 게 없다. 아니 박근혜 정권 출범을 앞두고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우리 두 부자의 사건이 그 신호탄이 아닌가 싶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내게 강연을 의뢰했던 단체의 간부나 내 책을 출간했던 출판사 관계자들에까지 국가보안법의 마수가 뻗치지 말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북측과 교류협력 사업을 진행했던 시민사회단체 간부들에게 나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지 말라는 것을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이래저래 착잡한 계사년의 아침이다. 정권교체를 이루지 못한 진보진영의 업보라고 낙담하며 받아들여야 하는가. 국민대통합은 물 건너 가고 공안정국이 도래할 것만 같은 2013년 새해 벽두. 우리 국민들의 마음이 얼어붙는 것은 한파 때문만은 아닌 듯해 심란할 뿐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민족21> 편집주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