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 롱우드가든의 난 개화 시기를 조사하고 있는 자원봉사자 드웨인 .
ⓒ 김장훈

관련사진보기


수목원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자원봉사 시스템이 잘 운영되는 북미 정원들의 모습은 참 부러운 것 중 하나다. 북미의 대표적인 정원 중 하나인 펜실베니아 롱우드가든(Longwood garden)도 자원봉사 시스템이 잘 갖춰진 정원 중 하나다. 지난 한 해만 해도 약 1000여 명의 자원봉자들이 정원을 아름답게 함께 가꿨다고 한다. 한 겨울 난 전시가 한창인 롱우드가든에서 난의 개화 시기를 조사하는 자원봉사자들을 취재하면서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이곳 정원의 자원봉사시스템의 모습을 살펴봤다.

북미 수목원 및 식물원들이 정원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자원 봉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꽤 크다고 할 수 있다. 펜실베니아에 가장 유명한 수목원 중 하나인 모리스 수목원의 경우 지난해 400여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1만6500시간이 넘는 자원봉사를 했다고 한다.

롱우드가든의 경우, 10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원봉사를 했는데 정원의 전직원이 300여 명인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큰 규모다. 단순히 규모만 큰 게 아니다. 자원봉사의 형태도 단순 식물관리에서부터 연구보조와 식물 기록 관리, 식물 전시와 안내 등 다채롭고 의미있는 활동을 하고 있다. 식물의 개화 시기를 조사하는 것 역시 식물원이기에 할 수 있는, 전문성을 살린 자원봉사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단순 조사에서 멈추는 게 아니다. 조사한 내용을 토대로 누리집에 시기별 꽃이 피는 식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또 이렇게 조사된 자료를 기반으로 책을 내기도 해 그 가치를 더 한다.

식물개화시기 조사 자원봉사팀

.
▲ 롱우드가든 식물개화시기 조사 자원봉사팀의 회의모습 .
ⓒ 김장훈

관련사진보기


.
▲ 롱우드가든 난전시실에서 난의 개화시기를 조사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 .
ⓒ 김장훈

관련사진보기


수천여 종의 식물을 기르는 수목원·식물원에서 어떤 식물이 어느 시기에 꽃 피는지를 아는 것은 참 중요한 정보다. 쉽게는 정원을 구경할 계획이 있는 이들에게 방문할 때 어떤 꽃이 피어있을지 미리 알 수 있게 해준다. 나아가 생물계절학(Phenology·생물의 계절에 따른 변화를 기후나 기상과 연관해 연구하는 학문)의 중요한 토대가 된다. 하지만 그 중요성에 비해 그런 조사를 꾸준히 하는 것은 어려울 때가 많다. 정원의 특성상 꽃이 피는 계절에는 정원을 가꾸는 것 만해도 인력·자원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북미 정원에서는 정원에 꼭 필요한 기초 조사를 자원봉사자들의 손을 빌어 하는 경우가 있다. 식물 개화 시기 조사팀(Phenology Team)은 그중 하나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식물 개화 시기 조사팀의 모임에서는 새로 팀에 합류한 자원봉사자들에게 이 활동의 의미와 중요성을 설명하고, 정원을 구역별로 나눠 각자가 조사할 구역을 정하게 된다.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개 정년 퇴임을 한 지역의 주민들이었는데, 연륜이 있는 분들이라 모임의 분위기는 편안하고 여유로운 느낌이다.

식물 개화 시기 조사팀의 한 모둠인 난 개화 시기 조사모임은 매주 목요일마다 롱우드가든 난전시실에서 조사를 진행한다. 오전 7시 30분 편안한 차림으로 산책 나오 듯 전시실에 모인 세 명의 팀원들은 각자의 역할들을 찾아 자유롭게 조사를 시작했다. 모임의 리더인 드웨인은 오랫동안 이 모임을 진행한 경험과 난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조사를 능숙하게 이끌었다. 원래부터 난을 좋아했던 데다가 오랫동안 이 조사에 참여하며 계속 난을 관찰한 덕분에 드웨인의 난에 대한 지식은 준전문가 수준이었다.

최근에 새로 모임에 참여한 폴은 드웨인를 따라다니며 난에 대한 설명도 듣고 하나하나 배워가고 있었다. 기록을 담당하는 제인은 수천 종이 넘는 난 수집 목록을 찾아가며 꼼꼼히 기록하고 있었다. 이른 아침 일을 시작한 온실 관리 직원들은 난 전시실을 지날 때마다 자원봉사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조사를 하다가 자주 보지 못하던 난 꽃이 핀 것을 보자 모두 잠시 조사를 멈추고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찍은 사진은 정원의 식물관리 기록으로 중요하게 쓰이고 새로 보게 된 난에 대해서는 나중에 식물원의 큐레이터인 토마스(Tomasz Anisko)에게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이른 아침 정원을 찾아 봉사를 하는 것으로 아침을 여는 부지런함과 좋아하는 식물을 새롭게 배워가는 기쁨이 함께하는 모임이라 그런지 분위기가 경쾌했다.

롱우드가든의 자원봉사지원 시스템

.
▲ 인근 모리스수목원의 자원봉사자들에대한 감사 인사 .
ⓒ 김장훈

관련사진보기


이렇게 정원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에게 어떤 혜택이 주어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롱우드가든의 자원봉사자 코디네이터인 살리(Sally Kutyla)에게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은 우선 연중 무료로 정원에 입장을 할 수 있다. 정원 내 레스토랑과 기념품점을 이용할 때 직원 수준의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며 불꽃놀이 축제와 같은 특별행사에도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또 롱우드가든에서 열리는 다양한 교육프로그램들과 강연들을 무료 혹은 저렴한 가격에 참여할 수 있고, 직원들만 이용이 가능한 정원 내 원예전문도서관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또 연중 일정 시간 이상 자원봉사를 한 봉사자들에게는 연말에 감사 이벤트를 열어 초대를 한다. 

다양한 혜택들이 마련돼 있지만 이런 혜택들은 자원봉사자들이 하는 활동에 비해 실질적으로 매우 작은 수준이라고 살리는 말한다. 그런 혜택들 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정원의 한 구성원이 됐다는 소속감, 좋은 일을 했을 때 느끼는 성취감과 보람, 아름다운 정원에서 일을 하는 기쁨, 직원들과 다른 봉사자들과의 유대감 등이 자원봉사를 꾸준히 하게 되는 더 큰 동기가 된다고 말한다.

한 자원봉사자의 15년간의 기록이 만든 책

.
▲ 한 자원봉사자의 15년간의 기록이 만든 책, 'When Perennial Bloom' .
ⓒ 김장훈

관련사진보기

롱우드가든의 자원봉사 시스템에서 또 하나 높게 평가할만한 점이 있다면 자원봉사자들의 활동들이 일회성 단순 활동에서 그치지 않도록 보다 의미있는 것으로 가치있게 활용된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이는 식물과 생태관련 전문기관으로서의 정원의 전문성을 잘 살리는 것과도 연관이 있다. 한 자원봉사자의 15년간의 식물 개화 조사 자료를 토대로 출간된 책 <When Perennials Bloom>(2008)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이 책은 한 자원봉사자가 15년간 롱우드가든에 다년초 초화류들이 언제 꽃이 피는지 조사한 자료를 토대로 만들어진 책이다. 이 책에는 450여 가지 초화류들이 이 지역에서 실제 언제 꽃이 피고, 어떻게 관리되고, 정원에는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안내하는 책이다. 이 자료를 조사한 자원봉사자 빌(Bill Smith)은 원래 인근 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을 가르치던 대학교수였는데 은퇴한 뒤 취미삼아 매주 롱우드가든을 다니며 다년초들의 개화를 관찰·기록했다고 한다. 식물에 대한 지식은 부족했지만 자료를 정리하는 기술이 있었던 그는 자체적으로 식물 개화 조사 자료를 기록할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어 매우 체계적으로 이를 기록했다. 그가 처음 관찰하기 시작한 식물은 몇십 가지 밖에 되지 않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식물에 대한 지식도 늘어나 나중에는 700여 가지 이상의 식물들을 관찰·기록할 수 있게 됐다.

식물이 꽃이 피었는지를 조사하는 일은 비교적 단순한 조사활동이지만 그것을 한 장소에서 오랜기간 지속하게 되면 매우 가치있는 자료가 된다. 책의 저자이자 롱우드가든의 큐레이터인 토마스는 이런 형태의 식물 개화 조사 자료는 생물의 계절에 따른 변화를 기후나 기상과 연관 시켜 연구를 하는 학문인 생물계절학(Phenology)의 아주 중요한 토대가 되며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기후변화가 지역의 식물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을 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고 이야기한다. 또 이런 조사를 꼭 식물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조류·파충류·곤충 등과 같은 생명체로 확대해도 좋은 자료가 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런 조사를 하는 식물원 수목원 등이 인근에도 많다고 한다. 이런 연구들의 기초조사 자료를 만드는 데 자원봉사자들의 꾸준한 활동들은 매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함께 만들어 가는 기쁨

.
▲ 롱우드가든 난전시실과 자원봉사자 폴 .
ⓒ 김장훈

관련사진보기


자원봉사라는 말은 이제 우리나라의 정원들도 생소하지 않은 단어다. 많은 사람들이 자원봉사에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서울 시민의 숲 등과 같은 시민들의 참여로 좋은 활동을 만들어가는 모범적인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 참 좋은 일이고 더 많은 아이디어와 참여로 적극 권장할만한 일이다.

아름다운 정원은 그 자체로 자원봉사를 하기에 참 좋은 장소다. 또 식물을 수집 보전 연구하고 생태를 보호하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는 쉼의 여유를 주는 정원의 공익적 가치를 생각하면 수목원 식물원 등을 비롯한 정원들은, 나눔으로써 기쁨을 두 배로 만드는 자원봉사의 가치를 구현하기 가장 좋은 곳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자원봉사가 하나의 정원 문화로 정착된 북미의 정원들의 모습을 보며 정원과 자원봉사의 가치에 대해 또 한 번 생각하게 되었고 정원의 특성과 전문성을 활용하면 정원은 더 재미있는 자원봉사의 장소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덧붙이는 글 | 개인블로그 http://gongfuin98.blog.me/에도 중복 게재합니다.



태그:#정원, #정원 문화, #자원봉사, #나눔, #롱우드가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전문 정원사. 정원 작가. 저서로 겨울정원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책 '겨울정원'이 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