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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나믹 코리아'라고 불릴 정도로 매일 매일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굵직 굵직한 현안이 쏟아져 나오는 정치판에서 정치인들을 상대하는 여성 기자는 어떤 모습일까.

마침 지난해 총선부터 대선까지, 굵직한 특종을 터트리며 많은 기사를 쏟아낸 여기자를 만날 기회가 생겼다. 바로 '오연호의 기자만들기 44기(이하 오기만44기)'를 통해서였다. '오연호의 기자만들기'는 언론인을 지망하는 학생들이나, 시사적 글쓰기에 도전하고 싶은 이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지난 3월 29일부터 31일까지 강화 오마이스쿨에서 진행된 '오기만 44기'에선 최근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던 이마트 특종 보도를 했던 기자의 강의를 비롯해, <시사인> 고재열 기자와 미디어다음 김태형 팀장 등이 강의에 나섰다. 하지만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앞서 말한 장윤선 오마이뉴스 정치전문기자 겸 이털남CP의 강의였다.

오연호의 기자만들기 44기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강화도의 오마이스쿨을 찾은 오마이뉴스 정치부 장윤선 기자
 오연호의 기자만들기 44기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강화도의 오마이스쿨을 찾은 오마이뉴스 정치부 장윤선 기자
ⓒ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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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만44기 수업의 분위기가 한참 무르익는 둘째날(30일) 오후, '정치부 기자의 세계'란 타이틀로 강의를 하기 위해 장윤선 기자가 오마이스쿨을 찾았다. 장 기자는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밤과 낮, 주중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취재를 다닌다. 그렇게 기자로서의 삶만으로도 참 힘들 것 같은데, 그는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이슈를 털어주는 남자(이털남)'의 CP이자 '소소한 특종'이란 코너까지 맡고 있다.

첫 만남이었지만, 검정색 가죽 자켓을 입고 나타난 그녀의 몸에서 넘치는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녀는 흔히 뉴스에서 보듯, 질문 하나라도 더 던지고자, 사진 한 컷이라도 더 찍고자, 정치인을 둘러싸고 벌이는 몸싸움에 아주 단련된 듯했다.

그녀는 매일 바쁘다. 아침 6시 반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듣고, 오전에는 국회 2층에서 4층을 돌아다니며 타 언론사 기자, 국회의원과 대변인을 만나 정보를 교환하고, 브리핑이 있는 날에는 브리핑장에서의 공식 브리핑 후, 복도에서 백 브리핑(Back Briefing), 그것만으로도 모자라는 경우에는 의원실에서 딥 브리핑(Deep Briefing)까지 챙긴다.

어떤 때는 하루에 커피를 17잔씩 마시는 경우도 있다고. 일자별로 각계각층의 사람들로 균형 있게 잘 짜놓은 점심식사 약속을 마치고 나서 사무실을 찾는다. 이쯤에서 한숨 돌릴 법도 한데, 인터넷으로 뉴스를 검색을 하고 기사를 기획한다.

하지만 어디 대한민국의 일이 오후 6시 이전에 시작되던가? 중요한 정보는 저녁식사와 술자리에서 오가는 경우가 많다. 늘 사람들과 만나며 한 발 앞서 흐름과 리듬을 타야 하는 정치부 기자로서는, 고급정보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저녁약속을 피할 수 없다. 남편도 기자이니, 육아와 가사를 도와줄 순 있지만 맡길 수 없고, 경제 여건 상 가사도우미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

그녀는 항상 미안하다고 한다. 언젠가는 챙겨줘야 하는 사람을 세어보았더니, 남편과 아이, 팀원을 포함해 11명이었다고 한다. 어떨 때에는 고민이 되기도 한다. 아이에게 엄마의 손이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인데… 육아, 가사, 직장 일 모두 잘 할 거라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돌이켜보니 모두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 없어 보인 적이 있었단다.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사랑에 비하면 그녀는 아이에게 1천분의 1도 못해주고 있다는 생각에 "내가 지금 뭐 하는 짓인가? 이 직장 그만두면 될 것 아닌가?"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고. 특히 지난 한해는 교육감 선거, 총선, 대선으로 바쁘게도 뛰어 다녔다. 전국의 대선유세현장을 방송하는 <오마이TV>에서는 초대손님들이 "장윤선 기자, 11시에는 퇴근시키자"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이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결국 그녀의 자녀들과 함께 자라는 아이들, 지금의 중고등학생들, 취업을 걱정하는 청년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주고 싶기 때문이다. 비록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가 민주적 절차에 잘 훈련되어 있고, 나라의 미래와 국민의 행복을 걱정하는 인물이 아니라 스펙이나 인기도 등 이미지로 선정된 정치인이 의정활동을 하는 근시안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는 시민들의 갈증을 못 본 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정부가 들어선 2013년, 결국 그녀는 팀장직을 내놓았다. 그동안 6살, 9살 아이들에게 못해준 것들을 저녁시간 동안만이라도 만회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니, 행복이 보인다는 그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살다 보니,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인다고 한다.

질의응답시간이 되자 그녀에게 날카로운 질문이 들어왔다. "왜 죄책감을 느끼세요? 여성으로서 당당하게 일하면 아이들은 그걸 보고 크는 거 아닐까요?" 실제로 그녀도 미혼일 때에는 고민했던 부분이다. 기자로 활동하며 수많은 여성 페미니스트들을 만났다. '육아를 왜 여자가 책임져야 하느냐? 아이는 아이대로 스스로 커야 하는 것 아니냐?' 또는, '그래도 아이는 엄마의 관심이 필요한 때가 있는 법이다'. 그때는 그녀도 답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답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현재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그녀의 입장은 분명하다. 엄마로서 더 충실하고 싶다.

수강생들의 열기로 뜨거웠던 강의가 끝나고, 3월이라 아직은 황량한 강화도의 밭을 배경으로, 검정색 카메라 가방 대신 6살짜리 딸아이를 품에 안고 있는 그녀가 창 너머로 보인다. 여성으로서 육아와 경력관리는 복지국가들 사이에서도 딜레마가 되고 있다.

아이는 장차 한 국가의 국민이 될 '국가의 아이'기에, 국가가 양육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여 육아휴직과 아동수당 제도가 일찍부터 발달한 유럽의 복지국가 중에서도 프랑스는 최고의 출산율을, 독일은 최저의 출산율을 기록한다. 아이는 엄마가 키운다는 생각이 강한 독일은 프랑스에 비해 보육시설이 크게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대한민국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바라 본 생활과 보육, 그리고 교육에 친숙하게 될 그녀가 앞으로 더 나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그려나갈 글들은 세상에 어떻게 울려 퍼질지 기대해 본다.


태그:#장윤선, #정치부기자, #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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