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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어사 산문
범어사 산문 ⓒ 김찬순

5월은 신록이 푸르고 괜히 마음이 벅찬 계절. 5월은 사랑이 넘치는 가정의 달. 다가오는 5월 17일은 석가모니 탄생일이다. 사월 초파일 즈음이면 사찰을 찾아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 화려한 연등 구경은 꽃구경과 달리 마음의 평화로움을 안겨준다 하겠다.

오랜만에 찾은 부산 청룡동 범어사 산문에 접어드니, 알록달록 예쁜 연등들이 바람에 나부끼며 나그네를 반겨주는 깃발처럼 반겼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나도 모르는 사이 불자가 된 것 같다. 해마다 사월 초파일이 되면 연등순례를 한다. 범어사 연등 축제는 내 짧은 언어로는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화엄 그 자체이다.

 범어사 연등 아래
범어사 연등 아래 ⓒ 김찬순

천년 불탑을 중심으로 허공에 가득 피운 연등들은 많은 사람들의 잘 닦인 마음처럼 환하고 향기가 펴져 나오는 듯 여겨졌다. 어떤 노보살은 불탑 앞에서 허리를 구십도 각도로 굽혀 수백 번이나 절을 했다. 문득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웠다. 앉으나서나 자식 걱정이시던 나의 어머니.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빌며, 연등 아래 나는 절을 하고 또 절을 했다.

 연등순례
연등순례 ⓒ 김찬순

많은 사람들의 희망과 소원을 고스란히 담은 연등 행렬. 그 꽃그늘 같은 연등 아래 서니 어둠으로 가득했던 가슴이 서서히 환해왔다. 이제사 많은 사람들이 다투어 연등을 밝히는 연유를 알 듯도 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네 삶처럼 연등도 저 홀로서는 결코 아름답지 못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손에 손을 잡고 화합을 꿈꾸는 것처럼, 예쁜 마음과 착한 마음과 또 겸허한 마음과 자비로 가득한 마음과 사랑의 등불이 장엄한 만다라처럼 모여 화엄 세계를 수놓고 있었다. 생각하니 극락은 바로 여기인 것도 같았다.

 연등 아래
연등 아래 ⓒ 김찬순

 등꽃 아래
등꽃 아래 ⓒ 김찬순

사월 초파일 연등이 사람이 밝힌 마음의 꽃등이라면, 보라빛 소묘 같은 등꽃은 자연이 밝힌 우주의 꽃등 아닐까 싶다. 범어사에는 숨은 비경처럼 등나무 군락지가 있다. 이 등나무 군락지는 천연기념물 제176호.

범어사 가람 한 편에 위치하고 있다. 약 6500여 그루의 등나무들이 군락을 이루면서 자생하고 있는데, 이렇게 넓은 지역에 걸쳐 엄청난 수의 등나무들이 자생하는 곳은 전국적으로
드물다고 하겠다.

녹음이 짙어가는 5월경에 찾아오면 등나무마다 꽃들이 만개해서 화려한 선경을 연출하는 것이다. 이곳에는 등나무 외에도 280여 종의 나무들과 희귀식물들이 자라고 있어, 도시 속의 원시림으로 불리우고, 초등학생들의 자연학습 외 일반인들이 즐겨 찾는 자연의 보물 같은 곳이라 하겠다.

 범어나 등나무군락지
범어나 등나무군락지 ⓒ 김찬순

 금정산 북문
금정산 북문 ⓒ 김찬순

 미륵사
미륵사 ⓒ 김찬순

길은 길을 부르듯이, 나는 연등을 따라 금정산 북문까지 올라와서, 다시 미륵사에 닿았다. 금정산 미륵사는 범어사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이곳 역시 천년고찰이다. 이 절은 금정산 미륵봉을 병풍처럼 두른 아래 자리 잡고 있다. 미륵사란 이름은 염화전 법당 뒤 암봉이 마치 화관을 쓴 미륵불처럼 생겨서 사람들에게 신령한 기운을 준다고 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한다.

 마음이 깨끗해야 보이다네
마음이 깨끗해야 보이다네 ⓒ 김찬순

예전에도 안내문이 있었던가. 전에는 눈에 잘 띄지 않았던 '미륵사 안내문'이 크게 눈에 들어왔다. 안내문에는 "이 암봉을 자세히 보면 코끼리 형상을 하고 있는 바위가 7개가 있는데 코끼리는 상서로운 동물이어서 마음이 맑아야 다 보인다"고 적혀 있었다.

나는 사뭇 무구해져서, 전설 속의 일곱 마리 코끼리를 열심히 찾았다. 그러나 내 마음의 눈이 어두워서인지 아무리 눈을 닦고 보아도 다섯 마리 코끼리밖에 찾을 수가 없었다. 공연히 우울했다. 심기일전해서 다시 합장하고 찾아보았다. 역시 다섯 마리 코끼리밖에 찾지 못했다.

"이보게, 마음이 깨끗해야 저 일곱 마리 코끼리가 다 보인다네…."

나는 이명처럼 들려오는 내 안의 소리를 깨닫지 못하고 한참 두리번거렸다. 공연히 심란했다. 내 탁한 마음을 눈으로 확인한 듯해서 말이다. 더벅더벅 뉘엿뉘엿 저무는 숲길 내려오는데 앙증맞은 금낭화가 웃고 있었다.

자연의 꽃등이, 밝고 작은 불빛이 삼천대계에 닿는 듯했다.

 금낭화
금낭화 ⓒ 김찬순

덧붙이는 글 | 지난 11일 다녀왔습니다



#범어사#미륵사#등나무 군락지#금낭화#사월초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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