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다니는 구리시 수택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주최한 체험 학습의 일환으로 파주의 율곡 이이 선생 유적지 여행을 다녀왔다. 파주에 산재되어 있는 율곡 이이 유적지 중 가장 인상에 남았던 곳은 '화석정(花石亭)'.
화석정은 율곡 이이 선생의 친가가 있었던 율곡리 마을에서 불과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려말 대유학자였던 야은 길재의 유지가 있었던 곳이다. 율곡 이이 선생은 국사 중에도 여가가 날 때마다 이곳을 찾았고 관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이곳에서 여생을 보내며 제자들과 시와 학문을 논했다.
화석정 내부에는 율곡 이이 선생이 8세에 나라를 걱정하면서 쓰셨다는 '8세부' 시가 걸려있다. 8살 어린 나이에 나라에 얼마나 많은 우환이 있었길래 걱정 근심으로 시를 읊조렸는지….
정자 왼편에는 8세부를 옮겨서 해석해놓은 시비가 있다. 그날 우리를 안내한 이윤희 파주지역 문화연구소장이 당시 율곡 이이 선생과 비슷한 나이대의 아이들에게 한 구절 한 구절 설명을 해주었다.
숲속 정자에 이미 가을이 깊으니 시인의 생각이 끝이 없어라.먼 물은 하늘을 닿아 푸르고 서리 맞은 단풍은 햇빛 받아 붉구나.산은 외로운 달을 토해내고 강은 만리 바람을 머금는다.변방의 기러기는 어디로 가는가 저녁 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소리.그때나 지금이나 시절은 수상하고 상식이 벗어난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 8살 어린 아이도 나라를 근심하였다니….
그러다가 화석정 현판에 쓰여있는 낯익은 이름, '박정희'. 화석정 현판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썼다. 조선 시대 뒤숭숭한 시절을 걱정하던 어린 율곡이 있는 이 자리.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어렵게 만든 박 대통령의 잔재 속에서 8세 대한민국 아이들이 율곡의 시를 읊조렸다.
파주 여행 중에서 잠시 역사의 딜레마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