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가 다시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기존 지역투어를 발전시킨 '2013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전국투어'가 4월부터 시작됐습니다. 올해 전국투어에서는 '재야의 고수'와 함께 지역 기획기사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시민-상근기자의 공동 작품은 물론이고, 각 지역에서 오랫동안 삶의 문제를 고민한 시민단체 활동가와 전문가들의 기사도 선보입니다. 10월 <오마이뉴스> 전국투어가 찾아간 지역은 제주도입니다. [편집자말] |
제주시 도두1동 1204-1번지. 제주공항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이곳 주변은 오일마다 차가 막힌다. 유명 백화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맛깔스런 음식백화점이 있는 것도 아닌데 오일마다(2일과 7일) 주변이 북적거리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 이유는 바로 민속오일시장.
지난 22일 오전 9시, 민속오일시장 투어에 나섰다. 아침시간인데도 차가 막혔다. 2천여 평이 넘는 대지에 1천개가 넘는 점포, 22개 부서마다 특색이 묻어나는 곳이 민속오일시장이다. 1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전국에서도 제일가는 재래시장으로 자리매김한 제주민속오일장은 제주도민은 물론 관광객들에게도 이미 유명하다.
장터 꽃시장, 이곳에서 가을을 만끽할 줄이야!2천 평의 장터를 돌아볼 생각에 신발은 운동화로 정했다. 장바구니를 한 손에 낀 채 장터로 향했다. 8천여 대의 차량을 흡수할 수 있다는 주차장은 차들이 빼곡하다. 푸른 가을하늘 아래 처음 닿은 곳이 장터 꽃시장. 가을꽃 소국 다발이 발길을 잡아 끌었다. 가을빛을 장터에서 느끼다니.
장터 천정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간판이 참 서민적이다. 백화점이나 유흥업소의 간판처럼 현란하고 화려한 것이 아니다. 간판은 'OO상회'라는 간판이 아닌 곡물부 14-○○으로 시작한다. 예를 들어 청과물부는 2-○○로 시작한다. 이런 부가 22개에 이른다. 가게의 크기는 2-3평이나 될까? 정겨움이 묻어 난다. 상품을 예쁘게 진열해 놓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모여드는 이유다.
옹기종이 모여 있는 것은 간판만이 아니었다. 해뜨기 전부터 할머니들도 장터 앞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우영(아주 작은 텃밭, 제주도 말)에서 재배한 당근, 호박을 팔고 있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무척 정겹다. 늙어 버린 호박만큼 할머니의 얼굴 주름살이 인상 깊다. 오일시장의 연륜이 묻어난다.
가을 텃밭에서 키워낸 제법 굵은 무와 알밤, 단감이 탐스럽다. 지난여름 가뭄과 가을 태풍을 꿋꿋하게 이겨내고 열매와 알곡을 맺게 해준 자연의 섭리에 감사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장터 채소는 100% 제주산장터에서 눈팅만 했을 뿐인데 왜 이리도 풍요로운가? 이곳에서 파는 채소는 100% 제주산이다. 구좌 당근, 고산 감자, 김녕 마늘이 터줏대감 노릇을 한다.
자리를 옮겨본다. 알록달록한 꽃핀, 바람에 흔들리는 오색 스카프, 가던 길을 멈추고 액세서리 코너에서 스카프 한 개를 샀다. 1만 원 짜리다. 올 겨울 이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제주바람을 이겨내리라.
그 다음 약초 장터 투어. 한약 냄새가 꼬끝에 스민다. 숨을 쉬는 것 뿐인데 한방 차를 마시는 느낌이다. 만족감 100%다.
청과물 시장에 들어서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역시 노랗게 포장된 감귤이다. 입안에서 새콤한 맛이 감도는 것 같다. 카드결제가 가능하다고 하니 이젠 재래시장도 고객의 편의에 신경을 많이 쓰는 듯하다.
생선시장에는 싱싱한 제주산 갈치와 고등어, 그리고 산더미처럼 쌓인 꽃게 무더기가 보인다. 관광객들도 이곳에서 만큼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생선의 상태를 살핀다.
장터 식당, 각양각색의 메뉴에 감동장터 식당가로 가 봤다. 국수의 종류가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고기국수, 멸치국수, 비빔국수는 기본, 냉국수, 콩국수, 열무국수, 바지락칼국수, 보말칼국수, 팥칼국수 등 즐비하게 늘어선 국수메뉴를 보고 있자니, 마치 국수 백화점에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뉴를 읽어보는 데만 한참 시간이 걸렸다.
무엇보다도 제주 장터 하면 몸국이나 보말국수, 고기국수, 돼지족발에 막걸리 한사발은 기본이란다. 오전 이른 시간임에도 장터 식당에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없는 것 없는 만물상, 그리고 만물백화점이 바로 제주민속오일장시장이다.
장터에서 마지막 발길이 머문 곳은 80세를 넘긴 어르신이 빙떡을 팔고 있는 가게. 메밀가루로 반죽을 해서 얇게 밀전병을 부쳐 무나물을 넣고 돌돌 말아 주면 그야말로 제주의 명물 빙떡이 된다.
재래시장이라고 우습게 보지 마세요민속재래시장이라고 해서 편의시설이 없는 건 아니다. 민속오일시장고객지원센터를 비롯해 제주서부경찰서 오아시스 민원안내센터 등이 있어 고객의 불편을 해결해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어린이 놀이터, 미니공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쉼터도 마련돼 있다. 2천여 평 부지에 1천여 개의 가게를 다 돌아보려면 하루 종일 시간을 내도 모자랄 것 같다.
각박한 도심 속에 살다가 삶이 무기력해 질 때 잠시 장터 투어에 나서 보라. 발길 닿는 곳마다 제주인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제주민속오일시장에서 오감이 꿈틀거림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제주민속오일시장은 제주시 도두1동 1204-1번지에서 열리며, 제주공항에서 10분, 제주여객선터미널에서 20분 정도 소요됩니다. 장이 서는 날은 2일과 7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