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사람에게는 더 살기 어렵다는 겨울 추위가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해마다 겨울이면 학교에서는 20년 전이든, 30년 전이든 변함없이 불우한 이웃을 돕기 위한 성금을 모았습니다. 초임 발령을 받을 때만 해도 반별로 얼마가 걷혔는지 교장 선생님이 일일이 확인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은 많이 사라졌을 겁니다. 그럼에도 연례행사처럼 하는 불우이웃돕기 성금 모금을 좀더 의미있는 교육활동으로 함께 즐겁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우리 학교는 학년별로 학년 교육과정 운영 내용이나 목표에 따라 다양하게 불우이웃돕기 성금 모금을 하였습니다. 일방적으로 가정에서 형편되는 대로 얼마씩 가져와서 모금함에 넣고 회의를 거쳐서 어느 한 곳에 보내는 형식적인 연례행사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혜를 모았습니다.
1학년은 통합교과 교육과정에 나오는 '이웃'과 '겨울' 단원에 나오는 이웃돕기, 가게놀이, 겨울준비 같은 주제를 묶어서 '아나바다 장터를 통한 불우이웃돕기' 교육활동을 진행했습니다. 각자 집에서 안 쓰는 장난감, 작아진 옷이나 신발, 다 읽은 책이나 소품류 등을 가지고 와서 스스로 아나바다 가게를 열고 필요한 물건을 사는 것입니다. 3천 원 이하의 돈을 가져오면 그 돈을 아나바다 가게에 입장하기 위한 공깃돌(1천 원에 10개)로 바꾸고 그걸로 거래를 하는 겁니다. 공깃돌로 바꿔준 현금은 바로 불우이웃돕기 성금함으로 들어갑니다.
호박엿을 파는 선생님, 누나가 모아둔 머리핀을 잔뜩 가져와서 경매까지 하면서 파는 친구, 집에 남아도는 스티커와 딱지를 가져와서 파는 아이들, 저마다의 이름을 걸고 가게 이름도 짓고, 가게 간판도 만들고, 가격표도 만들어 보면서 즐거운 공부를 함께 했습니다.
4학년과 5학년은 학부모 다모임을 통해 바자회를 운영하고 수익금으로 아이들과 김장을 해서 마을 이웃들에게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텃밭에서 가꾼 백여 포기의 배추가 있었지만 생각보다 속이 알차지 않아서 받은 분들이 불쾌해 하실까 염려되기도 하여 절임배추를 샀습니다. 텃밭에서 가꾼 배추는 겉절이를 해서 학교 급식으로 전교생이 조금씩 맛보고, 시래기로 말리고, 열심히 텃밭을 가꾼 5학년이 한두 쪽씩 집으로 가져가기도 했습니다. 실과와 도덕과 교육과정을 연계해서 운영한 것입니다.
6학년은 어린이들 스스로 바자회를 기획했습니다. 도덕, 실과, 미술 교과 교육과정에 맞게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먹을거리 마당, 체험마당, 장터마당으로 나누어 각자 두세 명씩 모둠을 지어 자율적으로 다양한 기획을 했습니다. 누룽지 과자, 떡볶이, 달고나, 샌드위치, 쥬스, 커피, 또띠아 피자 등 먹을 거리를 준비하는 아이들, 알까기, 다트, 풍선 터트리기, 인간 두더지 등과 같은 몸으로 체험을 준비한 아이들, 책, 장난감, 인형, 머리핀, 옷 등을 가져와 파는 아이들로 시끌벅적한 마당이 열렸습니다.
아이들이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보던 선생님들은 체험마당이 썰렁할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잘 된다고 즐거워하셨습니다. 누가 '돈'을 주고 알까기를 하고, 다트를 하고, 팽이치기를 하겠냐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것은 '돈'에 물든 어른들의 생각이었던 거 같습니다. 체험마당은 대성황이었습니다.
2, 3학년을 비롯한 동생들은 6학년 형님들이 마련한 바자회가 무척 재미있던 모양입니다. '우리도 6학년 되면 저걸 할 수 있냐'고 물어보네요. 이렇게 우리 학교는 혁신학교로 관행적으로 해왔던 것을 낯설게 보며,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그런 시도는 또 다른 전통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