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1회 방송하는 <팟캐스트 윤여준> 중 '윤여준 칼럼' 전문을 <오마이뉴스>에 지상 중계합니다. [편집자말] |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일원인 전주교구 박창신 신부의 발언과 관련해서 "국민분열 행동을 묵과하지 않겠다"고 한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에 충격을 받은 국민이 꽤 많은 것 같다. 묵과하지 않겠다는 것은 그냥 지나치지 않겠다, 즉 반드시 처벌하겠다는 뜻이다.
민주주의 국가 즉 법치국가에서 국민의 행동에 대한 처벌은 사법부의 권능에 속하기 때문에 박 대통령의 이 말은 사법부의 판단까지도 자신이 내리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취임 후 보여준, 입법부와 여야 정당을 존중하지 않는 박 대통령의 태도 때문에 안 그래도 사회 일각에서 "우리는 여왕을 뽑았다"는 말이 나오는 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법부까지도 가볍게 여기는 듯한 모습, 다시 말해 마치 3권 위에 군림하면서 통치하려는 것 같은 태도를 보인 데 대해서 국민이 크게 놀랐던 것이다. 그러면 박 대통령은 선출된 군주인가? 물론 아니다. 헌법상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따라서 주권은 당연히 국민에게 있고 입법, 사법, 행정의 3권은 엄연히 분립되어 있다. 어째서 박 대통령을 여왕에 비유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마치 3권 위에 군림하면서 통치하려는 박 대통령, 선출된 군주인가?1948년 건국 당시 제헌 국회의 헌법 기초위원회는 권력구조를 내각 책임제로 결정했다. 이에 대해서 국회의장이던 이승만 박사가 "미국 같은 대통령제 아니고서는 민주주의가 안 된다"고 강력하게 반대했다. 기록을 보면 이승만 박사는 "그런 헌법을 만들면 나는 그런 정부에 들어가서 일하지 않을 것이오, 우리가 국권을 찾기 위해 40년 동안이나 싸워온 것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백성에게 권리를 주자는 것입니다. 정당에 권리를 주어서는 정당끼리 싸우느라 나라 경영을 하기 어렵다는 것은 만인이 다 아는 것이오"라고 주장했다.
이 박사는 심지어 국회에서 내각제를 지지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든지 국권을 회복하는 것을 방해하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하면서 대통령제를 밀어붙였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대통령제와 내각제가 절충된 지금과 같은 어정쩡한 권력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 정치사를 보면 이 박사의 주장 가운데 정당끼리 싸우느라 나라 경영이 어렵게 된다는 예측은 들어 맞았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대통령제가 백성에게 권리를 주는 제도라는 것은 틀렸다고 하겠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정치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는 일찍이 "현대의 군주는 정당"이라고 했지만, 우리나라처럼 정당이 제구실을 못 하는 나라에서는 대통령이 군주의 역할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민주화 이전 한국 정당의 경우, 여당은 대통령의, 야당은 유력한 민주화 지도자의 하수인에 불과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문제는 민주화 이후에도 정당은 아직 제자리를 잡지 못한 채, 여전히 대통령이 군주적 위상을 갖고 과도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박 대통령을 두고 우리는 '여왕을 뽑았다'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이때 여왕은 군림할 뿐 아니라 통치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승만 박사가 모델로 생각한 미국의 대통령제의 경우, 건국 초기 인민의 강력한 대표는 대통령이 아닌 연방 의회였다고 한다. 그 후 점차 대통령의 권한이 강화되어 오다가 특히 20세기에 들어와 세계공황에 대응하고 연이어 2차 세계대전을 치른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때부터 경제위기 및 전시 필요성에 따라 강력한 대통령의 위상이 확보되었다는 것이다.
흔히 통치자가 법 위에 서서 국민들에게 제대로 책임을 지지 않는 정치체제를 권위주의라고 하지만, 특히 대통령의 정치권력이 다른 국가 기관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는 정부형태를 독일의 헌법학자인 뢰벤슈타인(Karl Löwenstein)은 신대통령제라고 이름 붙였다. 형식상으로는 자유민주적 입헌주의지만, 실제로는 마땅한 견제세력이 없어서 대통령이 입법부나 사법부의 권한까지 장악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민은 법적으로나 실질적으로 국가의사 형성에 참여할 기회에서 극히 제한을 받기 마련이다.
역사상으로는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의 대통령제는 대부분 대통령에 대한 견제의 부족, 또는 부재로 결국 뢰벤슈타인이 말한 신대통령제로 흐르는 경향을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유신체제, 전형적인 신대통령제
우리의 경우 유신체제가 바로 전형적인 신대통령제였다고 할 수 있다. 유신헌법은 엄격한 3권 분립을 지양하여 대통령에게 권력을 집중시킴으로써 대통령의 위상을 제도적으로 보장했었다. 민주화 이후 국가체제는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변화되었으나 통치 현실에 있어서는 여전히 신대통령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꼭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존재였던 김영삼,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도 재임 중에는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양 김 이후 대통령의 위상과 힘은 전보다 약화하였으나 대통령직은 여전히 군주적 위상을 가진 것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권력기반이 취약한 관계로 제왕적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위임 민주주의 철학을 바탕으로 '선출된 계몽 군주'적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에는 국가와 기업을 동일시하고 따라서 대통령과 CEO의 역할을 구분하지 못한 나머지, 국가를 마치 기업 운영하듯 하는 독선적인 모습을 보였다. 박 대통령은 아직 취임한 지 10개월이 채 안 됐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국정운영 방식은 '우리는 여왕을 뽑았다'는 어느 교수의 말처럼 매우 군주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박 대통령은 선출된 군주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이다.
신대통령제라고 하든, 선출된 군주제라고 하든 권위주의 통치 방식을 청산하는 것이 한국 정치의 가장 절박하고 핵심적인 과제라는데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유민주적 혹은 공화주의적 정신과 가치를 내면화한 지도자를 대통령으로 뽑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우리 정당들이 좀처럼 그런 후보를 내세우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람시의 말대로 정당이 현대의 군주가 되는 것이 정상적이라고 하더라도 현재 우리 정당의 수준과 역량에 비추어 볼 때 당장 한국 정치가 정당 중심으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문제가 적지 않다. 정당정치, 대의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이제 분노의 수준에 이르렀고 그에 비례해서 직접 민주주의적 욕구가 거세게 분출되고 있는데도 정치권은 그런 국민의 욕구를 제도적으로 수용하려는 진지한 고민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국민은 이런 기성 정치권을 선거를 통해 냉혹하게 심판하고 싶어도 마땅한 대안이 없어 주저하게 된다. 그야말로 악순환이다.
많은 국민이 한때 안철수 현상에 열광했던 것은 바로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싶어 하는 열망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안 의원이 줄곧 표방하고 있지만, 아직도 제대로 된 알맹이를 내놓지 않고 있는, 그러나 조만간 내놓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이는 '새정치'가 과연 우리의 이러한 열망과 기대를 충족시켜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윤여준 기자는 전 환경부 장관이며, <팟캐스트 윤여준> 진행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