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민영화를 막으려는 철도노조의 파업이 27일로 19일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노조와 코레일은 협상을 시작했지만, 타결까지는 요원해 보입니다. 정부와 여당은 부도덕한 집단이라며 노동자를 공격합니다. 정부·여당이 공격하는 노동자 중에, 저희 아버지가 계십니다. 박태만 철도노조 수석부위원장이 바로 제 아버지입니다. 저는 지난 25일 새벽 1시께부터 오후 2시까지 조계사에서 아버지와 함께 있었습니다. 이 글은 철도민영화를 막으려 기꺼이 수배자가 된 아버지에게 보내는 저의 공개편지입니다.... 기자 주
아버지께.
아버지, 큰 아들이에요. 지난 12월 9일 시작된 철도 파업이 19일째에 접어들었네요. 삭발한 머리를 매만지며 잘 어울리냐며 멋쩍게 웃으시던 모습이 마지막이었네요. 파업 중에도 최근 혼자 나와 사는 아들이 걱정돼서 방은 따뜻한지, 밥은 챙겨 먹는지, 문자 보내셨죠. 그마저도 16일 체포영장이 발부되면서, 철도 민영화에 대해 쉽게 설명한 경기대 한병철 교수 글을 퍼뜨려 달라는 문자를 끝으로 끊겼네요.
뉴스 속 사진으로 아버지를 보면서 얼굴 살은 빠진 것 같지만 건강하신 것 같아 위안을 얻고는 했어요. 엄마는 세월이 지나면서 마음이 약해지셨는지 2002년 철도 총파업 때와는 달리 걱정이 많으세요. 특히나 체포영장이 발부된 이후 동생과 엄마에게 형사들이 아버지 행방을 묻는 전화를 했나 봐요. 동생 말로는 밤에 잠을 잘 못 주무신다고 하네요. 얼마 전에 저에게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어요. 형사인가 싶어서 긴장했는데 철도노조 분이더라구요.
"아버지, 힘내세요!""철도 노조 사람인데 아버지 잘 계시니까 걱정 말라고 전화했어요. 연락 안 돼서 걱정했죠?""아니에요. 걱정 안 하고 있었어요. 연락이 되면 문제죠. 힘내세요!"그 분이 웃으시더라구요. 그런데 실은 군대 갔을 때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괜찮다, 여기 좋다"라고 말하는 심정이었어요. 철도 노조원의 어느 가족이 걱정이 안 될까요. 그래도 아버지를 믿기에 "돌아와요"가 아니라, 이 악물고 "힘내세요"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24일 밤늦게 아버지 번호로 전화가 왔어요. 가슴이 내려앉는 줄 알았어요. 긴장하며 받았는데 수화기 건너편에는 아버지가 계셨죠. "동생과 함께 조계사로 와달라"는 말에 택시를 타고 달려갔어요. 조계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경찰들이 주변을 지키고 서 있었어요. 드문드문 기자들도 보였죠. 조계사 정문을 들어서고 대웅전을 지나 뒤편에 있는 극락전 앞에서 전화를 하니, 어느 분이 안으로 안내해 주셨어요. 그 안에는 정말 아버지가 앉아 계셨죠.
삭발한 머리는 어느새 제법 자라 있었고, 얼굴은 살이 빠져 보름 사이에 거의 10년은 늙으신 것 같았어요. 너무 반가웠지만 아들 녀석들이 그렇듯이 별로 표현하지 못했어요. 묻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밖에 기자들 때문에 목소리를 낮춰야 해서 말도 제대로 못했네요.
그날 밤, 잠을 자는데 내내 불안해서 제대로 잘 수가 없었어요. 언제 경찰이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걱정과 틈만 나면 사진을 찍으려는 기자들 때문이었죠.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였나 봐요. 문 열리는 소리만 들리면 자리에서 일어나시더라구요. 그때 느꼈어요. 이 분들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힘든 싸움을 하고 계시구나.
하지만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경찰도 기자도 아닌 예불 드리러 오신 조계사 일부 신도들이었죠. 자신들의 절에 '불청객'이 들어 앉았으니 화내실 만한 일이죠. 하지만 철도 노조원들을, 내가 가장 존경하는 아버지를 자기 이익만 생각해서 나라를 전복 시키려는 파렴치한 사람들로 매도하고 다그치시는데, 너무 억울하고 분했어요.
입 다물고 시키는 대로 일하면 훨씬 더 편한 보직에서 더 높은 보수를 받으면서 일할 수 있는데... 옳지 않으니까 싸우는 건데... 편파적인 보도 내용만 보고 나무라시는데 하고 싶은 말은 산더미였어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한마디도 하지 못했죠.
아버지와 철도노조를 지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아버지가 그러셨죠.
"들어야 한다. 저 분들도 다 사연이 있고 속상한 일이 있다. 누군한테는 쏟아내야 가슴 속 화가 풀리고, 그러고 나면 우리를 이해해 줄 거다"
극락전 2층까지 올라와서 소리 치시던 분 중 한 분이 아버지랑 대화하다가 손을 잡고 우셨죠. 그러더니 다른 분들을 토닥이며 내려가는 것을 보고 아버지 말이 맞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 생각도 들더군요. '조계사에서 항의하는 어르신들이 아닌, 단면만 보여주는 편파 언론이 문제구나.'
위안이 되는 일도 많았어요. 편히 쉬다 가라는 신도도 있었고, 따뜻한 두유를 우리뿐만 아니라 밖의 기자들에게 나눠 주신 할머니도 있었죠. 신부님들도 오시고, 정치인들도 오시고, 시민들도 오셔서 응원해 주셨죠. 누군가 나를 이해해 주고 공감해 준다는 일이 이렇게 큰 힘이 되는지 새삼 깨달었어요.
그래서 아버지께, 그리고 파업에 참여한 철도 노조원분들에게 알려드리고 싶어요. 철도 파업에 대해 반대하는 국민들도 많지만, 지지하고 응원하는 국민들도 그에 못지 않게 많다는 것을요. 무엇보다 당신들의 가장 가깝고 사랑하는 가족들은 여러분을 믿고, 자랑스러워 한다는 것을요.
부디 가족들에게 돌아오는 날까지 몸도, 그리고 마음도 다치지 말고 돌아오시길 바랍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힘내세요!
큰 아들 광민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