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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 책표지.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 책표지. ⓒ 오마이북
책에도 인연이 있다면 나는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란 책의 탄생에 기여한 인물 중 한 사람이란 인연이 있다. 과연, 이 책의 탄생에 이바지한 사람이 나뿐이었을까?

이 일기는 <황해문화> 2011년 봄호에 처음 소개되었다. 연평도 포격사건이 발생한 이듬해 봄이었다. 사태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이 보다 직접적으로 기록된 따끈따끈한 일기였다.

'기고'를 염두에 두지 않다가 뜻밖에 지면으로 옮기고 보니 일기를 좀 더 이어가야 할 것만 같은 미련이 생겼다. 작은 책으로 엮고 싶은 욕심마저 꿈틀댔다. - 본문 244쪽

주간지가 한 주 먼저 발간되고, 월간지가 한 달 먼저 발간되듯 계간지는 대략 한 계절 먼저 발간된다. 그러니까 계간지의 봄호는 철 모르고 날아든 제비처럼 겨울에 나온다. 사진가 노순택에게 <황해문화> 2011년 봄호에 게재될 '포토에세이' 작업을 처음 의뢰할 무렵엔 연평도 포격사건이 일어날 거란 것도, 그 결과물이 나중에 이렇게 책으로 묶이게 될 것도 상상할 수 없었다.

물론 '분단인의 거울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의 출발은 2010년 11월 23일에 발생한 연평도 포격사건 이튿날인 24일 현장을 방문한 당시 한나라당의 안상수 대표와 육군 중장 출신의 황진하 의원, 공군 중위 출신 안형환 대변인 등이 보온병을 들고, 북한군이 발사한 76mm 포탄이라느니, 122mm 방사포 포탄이니 하며 알은체했던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안상수가 포화로 망실된 집터를 둘러본다.)
안상수 : 완전히 그냥, 형체가 없는데, 형체가…….

(잠시 후 진귀한 물건이라도 되는 듯 양손에 그을린 쇠통을 들고 외친다. 왼손에 길이 약 20센티미터, 오른손에는 30센티미터가량의 쇠통을 들고.)
안상수 : 이게 포탄입니, 포탄!(이리저리 살펴보며) 여기에 바로 떨어졌다는 얘긴데…….

(옆에 있던 한나라당 대변인 안형환이 함께 온 육군 포병장군 출신 국회의원 황진하에게 묻는다.)
안형환 : 이게 몇 미리 포입니까, 이게?
황진하 : 이게 76.1미리고…….
안형환 : 아, 이게 그러니까 곡사포구나, 그러니까…….
황진하 : 요거는 이제, 아마 122미리 방사포?

(안상수 일행이 화면에서 사라지자 YTN 카메라 기자가 문제의 쇠통을 자세히 촬영하기 위해 옮겨 찍는데 그걸 지켜보던 연평도 주민이 한마디를 던진다.)
연평도 주민 : 이게 상표 붙은 거 보니까, 포탄 아닌데, 이게…….
카메라 기자 : 아까 대표님이 포탄이라 그러던데…….
연평도 주민 : 네, 뭐라구요? 이거 포탄 아니에요, 이거, 마호병(보온병)!
<본문 73~74쪽>

연평도 포격사건이란 분단의 비극이 벌어진 직후 SNS상에서 나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이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지를 두고 갑론을박했을 것이다. 당시 나는 이것이 "불행한 사건이긴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더욱 큰 비극으로 확대되지 않은 것은 그나마 천만다행"이라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가 뜻하지 않은 논쟁에 휘말렸다.

북한의 포격에 대해 우리가 좀 더 강력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불만을 품은 이들 가운데 어떤 이는 심지어 내게 입만 살아서 전쟁 나면 도망갈 사람이라는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분은 하필이면 때를 잘못 골랐다.

2010년 12월 21일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중단되었던 한국군의 연례사격훈련이 재개되어 북한이 2차 포격을 가한다고 대한민국 언론들이 한창 떠들던 날, 나 역시 연평도 이재민구호를 위한 사전준비 작업으로 연평도에 들어갔다. 그때 나는 "당신은 나보고 전쟁 나면 도망갈 사람이라고 했는데, 지금 나는 이재민 구호사업을 위해 내일이면 연평도에 들어간다. 그런데 당신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나?"라며 되물었던 기억이 있다.

분단은 비무장지대(DMZ)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북방한계선(NLL)에만 있지도 않았다. 분단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도 있었고,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곳곳에 암초처럼 도사리고 있다. 우리가 한반도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니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기 훨씬 이전에 벌어졌던 전쟁과 그로 인해 만들어진 분단은 '다모클레스의 검'처럼 우리의 정수리를 위태롭게 겨냥하고 있다.

오작동으로 작동하는 분단체제와 곳곳의 보온병들

 '보온병'과 '안상수'로 상징되는 분단 오작동의 흔적을 노순택 특유의 예민하고 집요한 감각과 유머러스한 시선으로 담아낸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
'보온병'과 '안상수'로 상징되는 분단 오작동의 흔적을 노순택 특유의 예민하고 집요한 감각과 유머러스한 시선으로 담아낸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 ⓒ 노순택

2010년 연말 '행불상수'니 '보온상수'니 하는 별명까지 붙으며 대중에게 우스꽝스럽게 각인되었던 정치인 안상수의 보온병 해프닝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늘 경험하고 있지만, 연평도 포격사건처럼 평상시엔 망각하고 있는 분단의 일상처럼 그렇게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질 수도 있었다.

안상수의 보온병은 노순택에게 분단의 오작동을 상징하는 우스꽝스러운 표지였다. 그리고 일견 견고해 보이는 분단 체제와 이 체제를 작동 시키고 그 체제를 통해 이득을 얻는 서툰 애국자들의 논리를 밝혀내고 싶도록 만든 뇌관이 되었다.

"여기가 원래는 다방이었다고. 목조건물이었어요. 그러니까 홀라당 다 타버린 거지. 건물은 다 타버렸어도, 여기저기 보면 주방용품들이 많잖아. 이게 다 다방에서 쓰던 것들이라고."
"아, 다방이요? 그래서 여기에 보온병이 여러 개 있던 거군요? 차 배달할 때 쓰는."
"그렇지. 그걸 가지고 생지랄을 한 거야. 그게 무슨 군대도 안 간 놈이, 씨~벌, 그놈이 군대도 안 갔잖아. 그러니까 그걸 포탄이라고 하지. 말도 안 되는 놈이지, 그건 욕을 먹어도 싸. 한나라당 대표라는 사람이 그래? 보온병도 모르고, 포탄도 몰라? 별 세 개나 달았다는 놈도 옆에서 거들었잖아. 그놈은 몇 미리, 몇 미리, 숫자까지 대고 그랬어. 나도 텔레비전에서 다 봤다고. 그런 새끼가 별을 달고, 참 한심하다 한심해. 나중에 보면 '이거 포탄 아니에요. 보온병이에요'하는 목소리가 나오잖아, 그게 우리 옆집 젊은 애라고. 바로 저 집 애야." <본문 102~103쪽>

폐허가 된 민가에서 그을린 보온병을 기자들에게 내밀어 보이며 "이게 포탄입니다, 포탄!"이라고 외쳤던 사건을 기화로 안상수로 상징되는 분단의 다양한 면모들을 추적하는 이 책은 단순히 물리적이고 나약한 존재로서의 '인간 안상수'에 대한 조롱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대한민국 통치의 한 축을 담당해왔던 대한민국의 안보세력이자 집권세력임을 자임하는 한나라당의 대표, 검사 시절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덮으려 했던 군사독재세력의 요구를 과감히 물리치고 진상을 밝히는 데 공헌했다고 자부해온 정치인 안상수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사진가 노순택이 찾아 헤맨 보온병 역시 그 날 안상수의 손에 들려있던 바로 그 보온병은 아니었다.

그는 정치인 안상수의 탄생과 행보, 출간한 책과 내뱉은 말들을 꼼꼼히 추적했으며, 다시 평택 대추리와 용산 참사, 천안함 침몰 사건, 김진숙의 한진중공업 고공농성, 제주 강정마을을 연결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곳곳에서 보온병을 발견했다. 아니 미처 터지지 못한 채 분단의 상처마다 점점이 박혀있는 포탄들, 오발탄을 발견했다.

그것은 "우리의 분단이 어떻게 작동해 왔는지, 그것이 오늘의 우리에게 어떤 파국을 불러오고 있는지를 들춰보는 역사적·사회적 여정"이기도 했다. '오작동하고 있는 분단체제'가 아니라 분단체제 자체가 우리 역사에서, 우리 일상에서 오작동하고 있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는 '보온병'과 '분단인' 그리고 '거울'이다.

포탄이라 불렸던 보온병을 바로 보기 위한 능력

 '보온병'과 '안상수'로 상징되는 분단 오작동의 흔적을 노순택 특유의 예민하고 집요한 감각과 유머러스한 시선으로 담아낸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
'보온병'과 '안상수'로 상징되는 분단 오작동의 흔적을 노순택 특유의 예민하고 집요한 감각과 유머러스한 시선으로 담아낸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 ⓒ 노순택

오스카 와일드는 "합리성이 결여된 애국은 사악한 자들의 미덕"이라고 했다. 노순택은 "사회에 나오기 전까지는 우리 사회의 분단체제가 매우 견고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나와서 직접 경험하고, 이번의 작업들, 분단이 남긴 잔해들을 수집하다 보니 분단이 상당히 우스꽝스럽게 작동하더라"고 고백하고 있다.

분단이 남긴 잔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안상수는 노순택에게 "작동하는 동시에 오작동하는 분단정치의 상징적 모델"이었고, 그의 곁에서 보온병 포탄의 규격을 설명해준 예비역 포병 장군 황진하 역시 "일그러진 분단군사주의의 영웅"이었다.

그러나 노순택에겐 이들만이 '잃어버린 보온병'은 아니었다. 그는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 헤맨 3년의 여정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그 또한 '분단인'이었음을 고백한다. 보온병 사건은 단순한 일회성 해프닝이 아니라 분단이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사회의 내면에서 굳어진 역사와 안보를 팔아 이득을 얻어왔던 남북의 정치가 결합한 결과, 빚어진 한 편의 잔혹한 부조리극이었다.

괴물과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도 괴물이 될 수밖에 없노라고 얼마나 스스로를 변명하고 다그쳤던가. 사회주의를 유보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민주주의를 유보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저 망할 놈의 괴물 때문에, 우리는 지금은 괴물이 되는 수밖에 없어. 그러나 우리 자신을 대놓고 괴물이라 부르지는 말자." <본문 236쪽>

보온병이 분단정치의 상징적 모델이자 분단의 슬픔을 희화화하는 오브제라면, 분단인은 그런 분단체제 속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며 거울처럼 남과 북이 서로 마주 보고 있으며 놀랄 만큼 닮아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남과 북은 분단이라는 오작동하는 체제 속에서 '그들만의 반공 리그 뒤에 숨어야 하는 남녘 사회'와 '군을 모든 가치 앞에 두겠다는 선군정치의 북녘 사회'의 형태로 놀라울 만큼 서로 닮았다. 노순택에게 "남과 북은 서로 거울로 삼은 채 거대한 부조리 집체극을 벌이는 생활공연집단이며, 이 집체극의 특징은 비극을 희극으로 연출"하는 존재들이다.

이런 우스운 촌극을 멈추게 하고, 이성이 작동할 수 있도록 기능해야 하는 언론조차 분단체제와 한통속을 이룬다. 언론마저도 사실은 '보온병'을 '포탄'이라 부른 동조자들이었다.

그 와중에 <조선일보>는 포연이 피어오르는 연평도 사진을 포토숍으로 지나치게 과장해 비난을 샀다. SBS가 '연평도 실시간 위성사진'이라고 공개한 것은 2003년 이라크 침략전쟁 당시의 바그다드 위성사진으로 밝혀졌다. 이 사진을 CNN이 다시 받아쓰는 촌극마저 벌어졌다. 정보가 과도하게 통제될 때, '사실'은 이렇듯 샛길에서 허우적거리는 법이다. <본문24쪽>

'보온병'은 단순히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의 실수로 '포탄'으로 돌변했던 것일까? 아마 어떤 이들은 기억하고, 어떤 이들은 벌써 망각했는지 모르겠으나 지난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우리는 사진 조작과 관련한 중요한 사건 하나를 경험했다.

2012년 12월 17일 <미디어오늘>이 잇따라 보도한 '새누리당, 17일자 선거광고 군중사진 조작 논란', '박근혜 광고 사진 조작, '위법' 논란' 기사를 보면, 새누리당이 지난 2012년 12월 17일 주요 일간지를 통해 내보낸 당시 박근혜 후보 광고에 사용되었던 사진 속 대구 시내 중심가로 보이는 장소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군중이 모여 있었다.

그런데 이 사진 속에 등장하는 군중은 사진편집 프로그램인 포토숍의 '도장 툴(같은 이미지를 도장 찍는 여러 번 복제하는)' 기능을 이용해 이른바 '뽀샵(사진변조)' 처리한 사진이었다. 그 때문에 동일 인물이 한 장의 사진 속에서 마치 손오공처럼 분신술을 부려 여러 곳에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하고 있음이 확인된 바 있다.

광고 사진의 조작 문제를 제기하자 박근혜 후보 측 안형환 대변인은 "사진 설명에 시간과 장소를 명시한 것도 아니므로 허위사실로 볼 수는 없다"며 "광고는 광고로 봐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말한 안형환 대변인은 2010년 11월 24일 연평도에서 안상수 당 대표 옆에 서 있었던 바로 그 안형환이었다. 얼마 전 우리는 북한의 권력 2인자라고 했던 장성택이 체포된 직후 북한의 김정은과 함께 촬영된 사진에서 장성택이 지워졌다는 뉴스를 접했다. 분단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우리 곁에서 계속 오작동하고 있다.

 '보온병'과 '안상수'로 상징되는 분단 오작동의 흔적을 노순택 특유의 예민하고 집요한 감각과 유머러스한 시선으로 담아낸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
'보온병'과 '안상수'로 상징되는 분단 오작동의 흔적을 노순택 특유의 예민하고 집요한 감각과 유머러스한 시선으로 담아낸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 ⓒ 노순택

노순택의 '잃어버린 보온병'은 여전히 우리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노순택의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분단인의 거울일기>는 우리에게 바로 보고, 제대로 보지 않는다면 잃어버린 보온병은 언제라도 분단의 포탄이 되어 우리 곁으로 되돌아올 거란 뼈아픈 깨우침을 선사한다.

덧붙이는 글 | 전성원님은 <황해문화> 편집장입니다.

지은이 노순택 | 256쪽 | 23,000원 | 출간일 2013년 12월 3일 | 오마이북 펴냄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 - 분단인의 거울일기

노순택 글.사진, 오마이북(2013)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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