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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동안 학습지 회사에서 근무하던 송병재(45)씨가 타조 농장의 주인이 되어 돌아왔다.이른 아침, 수레 가득 먹이를 싣고 타조에게 아침밥을 주러가는 그.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던 지난달 9일, 자나 깨나 타조 생각뿐인 송씨를 만났다.

송병재씨가 타조를 돌보는 모습
 송병재씨가 타조를 돌보는 모습
ⓒ 박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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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이 잔뜩 묻어있는 운동화, 허름한 옷차림, 아무렇게나 눌러쓴 모자, 덥수룩한 턱수염. 하지만 차림새와 다르게 얼굴에는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가 가득하다. 그의 하루는 중앙시장으로 가서 배추 떡잎을 사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트럭 가득 배추 떡잎 20박스를 싣고 들어오는 송씨.

"많아 보이죠? 근데 이 정도 양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타조들 식성이 어마어마하거든요."

현재 농장에 있는 타조는 12마리. 한 마리당 하루에 배추 한 박스와 사료 3kg는 거뜬히 해치운다. 집에 오자마자 동물들에게 먹이를 나눠 주었다. 오후가 되어 날이 풀리니 송씨는 지난밤 내린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혼자 끙끙 거리며 치우자니 끝이 보이질 않는다. 힘쓰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몸은 벌써 아리기 시작한다. 요즘은 겨울이라 찾는 손님이 적다. 하지만 날이 추워 동물들에게 신경 쓸 일이 많고 혼자 운영하는 농장이니 송씨는 일 년 내내 쉴 틈 없이 바쁘다.

성인 남자를 훌쩍 넘는 키, 기다란 속눈썹이 매력적인 맑고 커다란 눈, 근육이 탄탄히 붙어있는 기다란 다리, 생소한 외모에 어른들도 겁을 먹을 법 하다. 하지만 배춧잎을 던져주는 순간 덥석덥석 잘 받아먹는 타조를 보면 '귀엽다', '예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타조는 호기심이 많고 먹이 욕심이 많은 동물이라 낯을 가리지 않는다. 때문에 농장을 방문하는 주손님 층인 유치원 어린이들이 먹이주기 체험을 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없다. 또한 영하 40도에서 영상 40도까지 견딜 수 있고 면역력이 강해 질병에도 잘 걸리지 않아 초보자가 기르기 적합한 동물이다.

"배설물도 타조가 먹으니 오염도가 적어요. 게다가 타조 고기나 알에 성장에 좋은 영양소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실제로 타조농장에도 타조고기나 알에 대한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타조는 커다란 눈과 뾰족한 부리를 가졌다.
▲ 타조의 생김새 타조는 커다란 눈과 뾰족한 부리를 가졌다.
ⓒ 박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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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지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감성이 메말라가는 아이들을 보며 안타깝다는 생각을 해 온 송씨. 어렸을 적 TV에서 보고 장난삼아 '타조 키워봐야지' 했던 꿈과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운 생각이 맞물려 타조농장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가족을 설득시키는 것이 첫 번째 숙제였다. 아내에게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농장을 운영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회사를 다니며 가져다주던 일정한 수입이 사라지고 농장운영으로 벌어들일 수입으로 살림을 꾸려나가는 것에 대한 막막함 때문에 아내의 반대가 심했다.

"사실 아직도 떨어져 지내요. 아내와 아이는 일산에서 직장과 학교를 다니고 저는 이곳에서 농장을 운영하죠."

송씨가 농장 운영을 준비하던 당시 딸의 나이는 10살. 처음에는 아빠가 타조농장을 준비한다는 사실에 즐거워하던 딸이지만 지금은 다르다. 12살 사춘기 딸에게 가족이 떨어져 산다는 것은 탐탁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딸에게 그는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내와 이야기 끝에 지난 2010년 회사를 그만둔 그는 농장 일을 배우기로 했다. 파주에 위치한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타조농장에 무작정 찾아가 일을 달라고 했다. '일이 없어서 안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송씨는 포기하지 않고 잡일이라도 하겠다며 억지로 농장에 남았다. 타조 돌보는 일을 6개월, 농장 짓는 법을 6개월 동안 배운 그는 자신의 고향 춘천으로 내려왔다.

부모님이 농사짓던 땅에 부지를 마련해 땅을 다지고, 울타리를 세워 농장을 짓기 시작했다. 농장 어디 하나 송씨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돈이 부족하니 모든 건물을 하나하나 손수 짓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철관을 사다 기둥을 세우고 하나하나 손수 조립해 나갔다. 일을 혼자 한 것은 아니었다. 춘천에서 농사를 짓는 친구가 그를 도왔다. 손재주가 좋은 친구는 농장을 짓는 것에 큰 도움이 됐다.

"모두가 반대할 때 찬성해주고 일을 도와준 유일한 친구에요."

2011년 농장 개장을 4개월 앞둔 겨울, 다른 농장에서 새끼타조 세 마리를 데리고 왔다. 송씨는 닭보다 좀 더 큰 크기의 새끼들을 먼저 완성한 작은 우리에 풀어놨다. 호기심 가득한 타조 세 마리 덕분에 농장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잘 자라고 있던 새끼 타조 세 마리 중 한 마리가 이유 없이 아프기 시작했다. 다른 새끼들과 놀지도 않고 먹이도 먹지 않았다. 구석에서 시름시름 앓으며 잠만 잤다.

타조가 국내에 들어온 지 얼마 안됐기 때문에 수의사도 없는 상황, 초보아빠 송씨는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무작정 새끼타조를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농장 개장이 몇 달 남지 않았는데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방의 온도를 최대한 올려 따뜻하게 만들고 자신의 이불을 새끼에게 덮어주었다. 있는 약이라곤 항생제 하나뿐이니 녹여 먹이고 경과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몇 날 며칠을 자식 돌보듯이 새끼를 끌어안고 잠이 들었다. 먹이도 손수 입에 넣어 삼키게 했다. 송씨의 정성이 닿았을까?

다른 타조들 먹이를 챙겨주고 방으로 돌아온 송씨, 이불을 덮고 눈만 깜박이던 타조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방안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았다. 무기력하던 새끼타조가 활기를 되찾기 시작한 것이다. 그 날 이후, 타조는 다시 친구들 곁으로 돌아갔다. 그랬던 새끼타조가 이제는 송씨의 키를 훌쩍 넘길 정도로 건강하게 자랐다.

"저 중에서 그 녀석을 단번에 찾아낼 순 없지만 이렇게 다들 건강하게 뛰어놀고 있으니 그때의 수고가 헛되지 않았다는 걸 느껴요."

타조는 수컷은 검은 털, 암컷은 회색 털을 가졌다. 대장 타조는 목이 제일 부어있다. 서열1위만 울음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송씨는 대장 타조 옆을 따라다니는 타조를 가리키며 "저 녀석이 대장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따라다니던 타조가 대장타조 옆구리에 발차기를 날린다. 대장타조는 귀찮다는 듯 자리를 피했다. 기자들은 겁을 잔뜩 먹었지만 송씨는 흔한 일이라며 허허 웃고만 있었다.

카메라를 향해 미소짓는 송병재씨와 타조들
 카메라를 향해 미소짓는 송병재씨와 타조들
ⓒ 박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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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4월 개장 이후 1년 8개월, 그동안 타조농장을 운영하면서 재미있는 손님도 있었다. 지난여름 방문한 한 가족은 무려 8주 동안 농장을 찾아왔다. 첫 주, 그들은 타조농장을 처음 찾는 다른 가족들처럼 타조를 보고 마냥 신기해하는 모습이었다. 신나게 먹이주기 체험을 하고 돌아간 그 가족은 일주일 후 다시 찾아왔다.

"우리 아이가 정말 좋아해서 또 왔어요~"

그리고 또 일주일……. 그렇게 8주가 흘렀다. 올 때마다 멋쩍게 웃는 부모에게 송씨는 환하게 웃어줬다. 아이는 자주 오는 타조농장이 익숙해 진 듯 송씨가 하는 일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깨 너머로 송씨가 하는 일을 본 아이는 자신이 농장주인 이라도 된 것 마냥 먹이 체험에 쓸 배추를 다듬고 다른 손님들에게 배추 바구니를 나눠주었다.

또 또래 친구들에게 겁내지 않고 타조에게 먹이를 주는 자신의 모습을 뽐내기도 했다. 농장을 운영한지 얼마 안 된 송씨에게 8주 연속으로 찾아온 손님은 처음이라 의미가 더 컸다. 먹이체험, 배추 썰기, 손님맞이 등 8주 동안 주말을 함께 보냈던 그 가족은 아직도 송씨의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다.

그가 농장을 키우기 위해 세운 계획은 타조 알을 부화 시키는 것. 시중에서 판매하는 부화기를 사용하면 부화에 성공할 확률이 높다. 그러나 그의 농장에 있는 부화기는 5~600만 원짜리 부화기가 아닌, 그의 친구와 업소용 냉장고를 이용해 만든 부화기다. 습도를 낮추는 것이 쉽지 않아 지금까지 번번이 부화에 실패해 왔다. 그는 내년 산란기를 기다리고 있다. 원인을 알았으니 이번에는 꼭 성공해 낼 것이라는 그의 의지가 보였다.

혼자서 농장을 운영하는 것이 벅차지만 어린 아이들이 놀러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송씨도 행복해진다. 가끔 집에 가기 싫다고 떼쓰는 아이들을 보면서 남몰래 웃음 짓기도 한다. 농장에 방문하는 손님들 중에는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송씨를 부러워하는 이들도 많다.

"IQ, EQ는 학교에서, 감성충전은 이곳에서 하고 가세요."

아이들을 위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송씨의 바람으로 시작된 타조농장. 프로그램을 더 다양하게 만들고 부모들도 쉴 수 있는 휴식공간을 만드는 것이 앞으로의 목표다.

"다른 가족뿐 아니라 내 가족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성장 했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의 웃음이 끊이지 않는 타조 농장, 하루 빨리 그의 바람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타조농장 <아이들세상>
주소 : 강원 춘천시 서면 방동리 1560
입장료+먹이체험 : 3000원
알공예 체험 : 5000원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한림대학교 언론전공 우푸름·박채란·정현희 기자의 기사입니다.



태그:#송병재, #타조농장, #아이들세상, #타조, #동물체험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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