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현재 한국 사회에서 안철수는 일개 자연인이 아니다. 그는 '현상'이라고까지 불리우던 몇 안 되는 특이한 정치인이다. 이 현상은 한국 정치가 대중에게 불러일으킨 정치혐오 '현상'에 대한 변증법적 대꾸이다. 안철수가 충분히 진보적이지는 않더라도, 국정철학과 역사관이 완벽함과는 거리가 있더라도 '상식'의 정치, 그 단순한 가치 하나만으로도 그는 상당한 국민의 주목을 받고 있다.
'상식'의 단순성이 갖고있는 무서운 파괴력 때문에 야당에 대한 여당의 모든 화력은 안철수를 향한다. 현대정치의 관점으로 냉정하게 말한다면 이는 선악의 가치판단문제가 아니라 여당 새누리당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정치행위이다.
새누리당뿐아니라 친 정권 성향의 종편들과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 또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일 안철수의 '새정치'를 도마에 올리고 난도질하여 '헌정치'로 만들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한마디로 '안철수'는 그들에게 공공의 적이며 위험천만한 인물이다.
그런데 야당에서 안철수를 보는 곱지 않은 시선 또한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 곱지 않은 시선이 만약 정치초년병안철수의 '현실 정치감각 결여' 또는 '이상정치'를 향하고 있다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상황은 정반대이다. 이미 안철수는 '현실 정치'의 '현실'을 직시하며 몇 번이나 양보했기 때문이다.
안철수의 양보, 자기희생적이고 전격적이었다안철수의 양보는 돌이켜보면 참으로 어처구니없었다. 그의 정치적 양보들은 늘 누구도 예상할수 없을 만큼 자기희생적이고 전격적이었다. 정치입문의 화려한 길이라고 예상했던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하더니, 정치인으로서 궁극적 목표인 대선후보도 전격 양보했다. 심지어 최근에는 자신의 '새정치'를 위해서 절대 하지 않을 것으로 자타공인하던 기존 야당과의 합당도 강행했다.
'합당'의 전제조건이었던 '기초의원 무공천'조차도 '국민과 당원'의 뜻을 물어 양보하고 말았다. ¨저의 소신이 국민, 당원에 우선할 수 없다"는 너무도 상식적인 명분이었다. 그러나 이제껏 정치판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성격의 명분이기도 했다. 그리고 변명하는 대신 다시한번 사과했다. 대한민국의 정치인 중 그보다 덜 잘못한 정치인을 찾기도 힘들고 그보다 더 많이 사과한 정치인을 찾기도 힘들다.
한국 정치사에서 안철수의 이러한 양보들은 야당에게는 '2보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이지만 그 자신의 정치생명으로는 '1보 전진을 위한 2보 후퇴'로 평가받을 것이다. 그러니 '간철수'라고 또는 "철수만 한다"라고 비웃는 그 양보를 과연 현존하는 어떤 정치인이 할 수 있을까. 안철수가 세간의 평처럼 "간만 본다"던지 "결단력이 떨어진다" 면 과연 그 고독한 길을 걸을 수 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써 일부 야당 지지자들로부터 "이 모든 상황이 안철수 때문"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패배한다면 그 모든 책임을 안철수에게 물을 기세다. 이정도면 후안무치함이 새누리당과 다를 바가 없다.
벼랑에서 등을 떠민 장본인이 물에서 올라오는 사람을 비난하는 행색이나 물에 가라앉는 자신의 짐을 벗겨주고 가라앉는 사람을 되려 비난하는 행색이나 양자 모두 눈뜨고는 보기 힘든 적반하장격이다.
새는 두 날개로 난다는데 한국정치는 날아오르기도 힘들어 보인다. 오른쪽 날개는 고장난 지오래고 다른 한쪽 날개에도 스스로를 파괴하는 자학적 독소가 자라고 있다. 당장 고치기는 힘들어도 최소한 항체를 생성할 수 있는 백신주입이 필요하다.
필자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영희와 함께 우리 옆에서 놀던 '철수'가 대학원생이 되자 그 무시무시한 'C 브레인 바이러스'로부터 무방비였던 우리 컴퓨터에 아무 조건없이 백신을 보급해주던 것을 기억한다.
또 청춘들에게 자살 바이러스가 돌자 고민을 함께 나누며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주던 것도 기억한다. 이제 그는 정치 생태계를 파괴하는 구태의 악성코드를 '상식'이라는 백신으로 퇴치하겠다고 나섰다. 이것이 안철수 '현상'이 지속되는 이유이면서 여당과 보수언론이 조건반사적으로 그를 두려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안철수'는 야당이 갖고 있는 소중한 자산'안철수'라는 이름은 야당이 갖고 있는 소중한 자산이다. 투자하지는 않았지만, 민심이라는 중력 덕에 두손에 떨어진 과일이다. 소위'정통야당'이라면 실재의 정치현장에서 긴 시간동안 배운 마케팅노하우로 반짝반짝 빛을 내어 소비자들에게 더 비싸고 귀한 과일로 다시 선보여야 한다.
옆 대형마켓의 주인들이 몰려와서 침을 뱉고 그 과일을 치우라고 위협하고 자신들의 찌라시를 빌어 흑색선전과 여론조작을 늘어놓는다면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제 1야당이 해야할 일은 힘을 합쳐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아끼고 보호하는 일이다. 혹 제 바구니의 다른 과일이 더 마음에 든다면 같이 소비자에게 내놓으면 될 일이다. 그래야 야당도 살고 정치도 살고 국민도 산다.
최소한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나는 이 존재를 우리가 먼저 배신할 이유가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를 변명해줘야 하는 이 상황은 대체 어디서 시작하는가. 알량한 당파성 때문에 새누리당과 손잡고 민주주의의 미래를 죽여야겠다면 당신은 대체 누구 편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