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이나 과외 없이 아이들 키우기 힘든 세상. 그 비용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 하는 엄마들도 많습니다. 학원 교육을 염두에 두고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도 있고 학원을 장려하는 교사도 있는 현실이지요. 공교육이 그만큼 무너졌다는 말이겠지요. 그런 세상에, 그런 공교육에 아이를 보내면서 아이의 자유의지만을 믿고 아이를 키우는 '간 큰 엄마'가 되려고 합니다. 그렇게 키워도 망하지 않을 듯한데, 저와 제 아이를 격려해 주실는지요? - 기자 말얼마 전 동네에 춘천닭갈비 집이 생겼습니다. 밖에서 보니 춘천기차역을 그린 수묵화가 한 쪽 벽을 차지하고 있더군요. 그 그림이 마음에 들어 닭갈비를 포장해 집에 가서 볶아 식탁을 차렸습니다. 중간고사 시험 공부하느라 지쳐있던 아이가 탄성을 지릅니다.
"와아! 닭갈비!"요즘은 하나하나가 소중해집니다. 아이가 건강하게 내 옆에 있으니 밥도 먹일 수 있고 같이 웃을 수도 있고 잔소리도 할 수 있고. 벌써 열흘 넘게 바닷속 세월호에 갇힌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 부모들은 아이가 수학여행 갔다 오면 또 밥을 먹일 수 있을 줄 알았겠지요. 교복 단정히 입으라고 잔소리도 할 수 있을 줄 알았겠지요. 아이의 까만 머리를 또 볼 수 있을 줄 알았겠지요. 너무나 당연히.
"사는 거 별거 아닌 거 같다. 하루하루를 즐겁게 지내라. 시험 너무 신경쓰지 말고.""겨우 4일 남았어.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닭갈비를 오물거리던 아이 안색이 금세 어두워집니다. 아무런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 공부하려니 시험 볼 때마다 자신을 믿지 못합니다. 어떻게 공부해야 할 지 아직 갈피를 잡지 못했고 성적도 본인 목표보단 한참 아래라서 더 그럴 겁니다.
'과외든 학원이든 도움을 받는 게 어떨까요' 조언에...2학년 들어 담임과 상담하면서 성적을 한참 끌어올려야 한다는 진단을 받더니 아이 마음이 더 바빠진 모양입니다. 선생님은 어떤 식으로라도 도움을 받는 것이 어떠냐고 제게 제안했습니다. 과외를 받거나 학원을 가든지 하는 게 어떠냐는 것이었지요. 공부를 하려고 하는 아이니까 그렇게 하면 성취가 훨씬 도드라질 것이라는 게 선생님의 진단이었습니다.
엄마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입니다. 실제 혼자 공부하는 아이들 중 상위권 아이는 드무니까요. 대부분 영어나 수학 정도는 과외를 받거나 학원에 다닙니다.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고 예고 진학이라는 나름대로 갈 길도 정했으니 혹시 지금부터는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으로 마음이 산란했습니다.
"선생님들이 나 공부 잘 하는 줄 알아.""니가 못하는 건 아니잖아.""아니. 그것보다 더 잘하는 줄 안다니까."마음이 더 산란해집니다. 초등학교까지는 혼자 해도 상위권이었고 반에서 눈에 띄는 아이라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중학교 와서는 성실하고 좋은 품성을 가졌으나 '그저 그런 성적'이라서 뭔가 꿍짝이 맞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삐딱한 아이들이 성적도 그저 그렇다는 선입견을 뒤집어 말한 것뿐이겠지요. 그것을 알면서도 마음이 흩어집니다.
세월호 아이들의 엄마들 회한을 같이 느낍니다
엄마는 세월호 아이들을 위한 촛불 기도회를 하러 매일 밤 8시에 동네 입구로 갑니다. 누군가는 시를 지어 와서 낭송하고 누군가는 추모곡을 부릅니다. 촛불을 넣은 컵을 잡은 손 등에 눈물을 쉴새없이 떨어뜨리고 돌아옵니다. 미안하고 미안해서, 너무나 화가 나고 분노가 밀려와서, 이 죄를 누가 다 씻을 수 있을까 싶어 거기 길거리에 서 있는 엄마들은 흐느끼고 흐느낍니다.
자식을 둔 엄마들은 단원고 엄마들의 회한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성적 때문에, 진로 때문에 아이를 다그쳤던 날들이 가슴을 찌르고 지나갈 것입니다. 고등학생들이니 더 다그쳤을 수도 있었겠네요.
그래가지고 대학 가겠느냐, 벌써 고 2인데 어쩔거냐... 그런 비슷한 말들을 아이에게 던지면서 야단치고 설득하고 그랬겠지요. 벌써 고 2라고 말입니다. 18살 주민등록증도 제대로 사용해 보지도 못하고 바다에 갇힐 줄도 모르고 '벌써 고 2'라고 다그쳤을 것입니다.
아이에게 진로를 캐물으며 실갱이를 벌였을 부모들도 그 아이에게 생과 사를 가르는 시간이 임박해 있다는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요. 그 엄마와 아빠들이 자책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누구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지는 않습니다. 벼랑에서 툭 떨어지는 것처럼 삶이 갑작스레 끝날 것을 미리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저 내일도 오늘 같을 거라고 여기며 삽니다. 당신들도 그랬을 것입니다. 당신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아이에게 가졌던 단 하나 소망은 '건강하고 행복하길'
닭갈비를 다 먹고 아이는 두유를 빨대로 먹으면서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그게 쉬는 거랍니다. 소파에 앉아 핸드폰 검색하는 것이 휴식이라고요. 세월호에서 시신으로 건져낸 단원고의 한 아이는 한 손에 흰색 핸드폰을 꼭 쥐고 있었다지요. 꼭 연락하고 싶었을 겁니다. 엄마에게, 아빠에게. 그 누군가에게 '살려달라'고요 아니면 '저 살아있어요'라고 하고 싶었을까요. 어쩌면 아이들에게 핸드폰은 쉬게 해주는 것이고, 세상과 연결해주는 것이고, 살려주는 것이기도 한가 봅니다.
지금은 엄마 얼굴보다 핸드폰을 훨씬 자주 들여다보고 엄마보다 큰 신발을 신는 아이지만 본래 태어나자마자 낯선 간호사 아줌마한테 엉덩이를 얻어맞고 울다가 엄마 가슴 위에 올려주니 울음을 그치고 잠을 자던 아이였습니다. 우유 굳은 것 같은 하얀 얼룩들을 온 몸에 뒤집어쓰고 쭈글거리는 얼굴로 팔 다리를 버둥거리며 우는 모습이 내 아이의 첫 사진이었습니다. 태어나마자 찍은 것입니다. 저는 기분이 어쨌는지 모르지만 엄마와 아빠는 우는 게 귀여워 죽을 뻔했습니다.
단원고 엄마들은 아이의 학생사진을 영정사진으로 쓰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겠지요. 어떤 엄마는 살았을 때 너무나 쾌활했던 아이를 생각해 아이 사진 중 제일 웃음나는 사진으로 영정을 준비했다지요. 그 아이도 태어났을 때 쭈글거리는 얼굴로 울음을 터뜨렸을 것입니다. 그 울음소리가 귀여워 웃던 사람들이 지금은 통곡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제야 생각납니다. 엄마와 아빠가 내 아이에게 가졌던 가장 큰 소망을. 그것은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라' 였습니다. 그것 하나 뿐이었습니다. 아이가 아프면 속이 상했고 힘든 일이 생기면 맘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억을 싹 잊고 이제는 영 다른 것들을 아이에게 주문하고 있었군요.
공부 해야지, 대학 가야지. 아이가 건강하고 행복하려면 공부 잘 해서 대학가야, 사회에서 잘 견딜 수 있어야 하는 것처럼 질기게 아이를 다그쳐 왔습니다. 학원 도움없이 혼자 공부하면서 불안해하는 아이에게 더 이상 불안한 시선을 던지지 말아야겠습니다. 대신 고맙다고, 고맙다고만 해야겠습니다. 열심히 살아줘서, 엄마 옆에 건강하게 살아줘서 고맙다고 말입니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깨달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