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겠다는 의지는 분명할 수 있으나 망각은 우리 모르게 찾아와 기억을 잠식한다.
지난 4월 16일, 캄캄한 망망대해 속으로 스러져간 세월호와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 가만히 잊지 않겠다'라는 다짐을 하며 6월을 맞았다.
부당하고 억울한 그 죽음들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하는 것은 분명하다. 잊지 않겠다는 그 외침도 항상 기억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곁에는 이번 세월호 사건 외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많다.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우리는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우리의 가슴 속에서 잊힌 것들은 무엇일까?
마음의 타임머신을 타고 12년 전인 2002년, 월드컵 열기로 뜨거웠던 대한민국을 떠올려보자. 4강 신화를 이뤄냈던 그 뜨거운 열기 속에서 더욱 뜨겁게 타오르는 촛불들이 있었다.
2002년 6월 13일, 경기도 양주군에서 친구 생일잔치를 가던 두 여중생 신효순, 심미선 양이 미군의 장갑차에 깔려 갓길에서 그대로 즉사했던 처참한 사건이 있었다. 이 장갑차를 몰았던 미 2사단 44공병대 소속 미군들은 두 여중생을 보고도 그냥 지나갔다는 정황이 밝혀졌다.
당시 시민들은 이 말도 안 되는 어린 학생들의 죽음에 분노하고 촛불을 들고 일어섰다. 사건 발생 1주기인 2003년에도 시민들은 촛불로 시청광장을 가득 메웠다. 이 죽음이 많은 시민들의 분노를 불러온 이유 중 하나는 불평등한 한미소파(SOFA) 때문에 미군들을 한국 법정에서 처벌하지 못하고 미군에 넘겨야 했다는 사실이다.
부당하고 억울한 그 죽음들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미군법정은 그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 후 그들은 자신들의 나라, 미국으로 돌아갔다. 어여쁜 두 여중생이 친구 생일파티에 가다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었는데, 죽인 사람이 없는 이 말도 되지 않는 상황 그리고 자국민이 미군에 의해 부당하게 죽었는데도 아무런 손도 쓸 수 없는 이 불평등한 한미관계에 분노하며 시민들은 거리로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기 시작한 이래로 발생한 미군범죄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을뿐더러 끔찍하기 이를 데 없다. 1992년, 윤금이 사건에서부터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한 이태원 살인사건까지 미군 범죄자들은 하나같이 정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 자국으로 돌아가기 급했다. 그렇게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한미 소파(SOFA)가 있기 때문이다. 한미 소파(SOFA)는 미군 범죄가 빠져나갈 쥐구멍인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부당함은 제때에 구조하지 못한 무능한 정부와 해경, 이익 챙기기가 우선이었던 자본, 이 같은 자본과 결탁한 감독기관, 승객을 내팽개치고 자신들만 대피하기에 급급했던 선장 등 총체적으로 드러난 대한민국의 무능과 부정 때문이다.
효순이와 미선이 사건은 어떠한가? 무능함을 떠나서 자국민이 피해를 받아도 정부가 아예 손도 댈 수 없고 우리 법으로 처벌할 수도 없는 주한미군범죄. 이런 부당한 일들이 계속되는 이유는 12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이 존재하는 불평등한 한미소파(SOFA)와 불평등한 한미관계 때문이다.
한반도의 자주와 평화통일을 위해 활동하는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아래 평통사)'은 효순·미선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한미SOFA 개정을 위해 지금까지 힘쓰고 있다.
올해로 12번째 추모행사를 열었다. 지난 12일 저녁 7시에는 추모음악회가 열렸고, 13일 오전 11시에는 사고현장에서 현장추모제를 열고, 오후 3시부터는 서울 대한문 앞에서 추모분향소를 운영했다.
"눈물이 우리에게 하던 말을 잊지 맙시다."
12일 추모음악회는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선교교육원 정원에서 열렸다. 2012년, 효순미선 10주기에 맞춰 시민들의 손으로 효순·미선 추모비를 만들었다. 하지만, 추모비 놓을 부지를 찾지 못해 임시로 추모비를 이곳에 두고 매년 추모음악회를 열어왔다.
이번 추모음악회는 세월호 참사로 또다시 꽃다운 어린 학생들을 잃은 상황에서 12년 전 효순·미선의 죽음에 대해 다시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 마음을 울리는 하모니카와 대금 연주와 눈시울을 붉히는 도종환 시인의 추모시 낭송이 있었고, 가수 윤영배씨의 추모노래공연이 있었다.
13일에는 양주시 효촌면 56번 지방도로 사고현장에서 고 신효순·심미선 12주기 추모제가 진행되었다. 특히 올해 추모제는 사고현장에 효순이와 미선이가 억울하게 죽어간 곳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표지판을 부착하고, 사고가 발생한 도로 이름을 '효순미선로'라고 부르는 선포식이 있었다.
참혹한 사고를 잊지 않아야 불평등한 한미관계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고 평등한 한미관계로 거듭나기 위한 실천을 할 수 있기에, 이 도로를 '효순미선로'로 부르기로 한 것이다. 사고당시에는 이 도로에 축대와 보도블록은 전혀 없었다. 갓길과 도랑, 그리고 언덕뿐이었다.
"한반도가 평화로웠다면 두 여중생의 죽음은 있지 않았을 것이다 두 여중생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이 땅의 평화와 통일의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지난 4일 경기도 교육감으로 당선된 이재정 전 통일부장관의 추모사를 시작으로 사고현장 표지판 부착식과 참가자 개개인 촛불이 되어 하나의 큰 촛불이 되는 상징의식을 진행했다. 자주와 평화의 희망이 되어 피어나라는 소망과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를 안고 현장추모제에 참가한 이들은 소녀들의 영정사진 앞에 헌화하고 돌탑을 쌓았다.
억울한 '죽음' 위해, 우리가 촛불 들고 광장으로 나가는 것오후 3시부터 대한문 앞에서는 두 여중생을 추모하는 시민분향소가 운영되었다. 효순이 미선이를 기억하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두 여중생을 모른 채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러 온 여고생들도 억울한 효순이 미선이의 사연을 듣고 추모의 글을 남기고 헌화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생각해보면 부당하고 억울한 그 '죽음'도 있겠지만 사실 그 '죽음을 있게 만든 것들'일 것이다. 그 원인을 개선하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거리로 나가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그 목표하는 바가 이뤄지기 전까지 우리는 그 일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불평등한 한미관계는 여전히 우리 곁에서 대한민국의 자주를 침해하고 있다. 제 2의 효순이와 미선이가 나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바로잡지 않으면 또다시 참혹한 참사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번 2014년 6월 13일은 12년 전 그때처럼 월드컵이 열리는 날이자 고 신효순, 심미선양이 하늘로 떠난 지 12주기가 되는 날이다. 가만히 있지 말고 가만히 잊지 말자. 그리고 '가만히 잊혀지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