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더니 의료민영화에 대한 정부 의지가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의 세월호'에서 특히 생명을 다루는 의료분야는 가장 안전해야 할 영역인데요. 그 안전이 흔들리면 시민들의 불안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번 연재를 통해 의료민영화의 우려점을 자세히 짚어봅니다. [편집자말] |
박근혜 정부 들어 의료민영화 파고가 매우 거세다. 의료법인의 부대사업 확대와 영리 자회사 허용 시도가 현재 의료민영화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정부의 의료민영화 수순 밟기로 우리의 사회보장제도인 국민건강보험(아래 건강보험)에 큰 위기가 닥쳐올 것이라는 위기감도 고조되고 있다.
의료법인의 목적, 국민 건강? 수익극대화?
물론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정책이 곧바로 건강보험 제도의 붕괴를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의료민영화가 단지 영리 자회사에 한정되어 추진되는 것도 아니니 안심하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의료민영화가 건강보험을 어떻게 붕괴시킬 수 있는지를 이해하려면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을 좀 더 폭넓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의료민영화 논란의 초점은 의료법인(의료기관)의 '성격'에 맞춰져 있다. 의료법인에 주식회사 형태인 영리자회사 설립을 허용함으로써 외부 자본투자와 투자 수익 유출이 가능해졌다. 따라서 의료법인은 영리를 위한 경영을 한층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와 같은 정책은 건강보험 제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의료민영화(즉, 건강보험의 민영화)가 아니라는 논리를 내세운다. 하지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기관의 영리화가 건강보험 제도와 전혀 무관하지 않기에 건강보험 제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는 단정할 수 없다.
대한민국 헌법은 '국가는 사회보장 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34조2항')와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36조)'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은 국민들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법인의 성격을 바꾸려 하기 때문에 문제다.
국민건강이 아니라, 영리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의료법인은 사회보장제도인 건강보험을 거추장스럽게 여길 것이고, 이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게 뻔하다. 이런 측면에서 영리자회사 허용과 같은 의료민영화 정책은 건강보험 제도의 존립 정당성을 훼손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의료민영화는 건강보험을 어떻게 위협하나더욱이, 의료민영화가 의료서비스의 공급 측면에서만 진행되는 것도 아니다. 국민의 의료비 지출을 위한 재원조달이야말로 건강보험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의료민영화 정책의 핵심이다. 대표적인 예가 실손의료보험이다.
실손의료보험은 건강보험이 급여해주지 않는 본인부담(비급여 포함)을 보상해 주는 보험으로, 지난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판매되기 시작해 매년 300만~500만명이 가입할 정도로 급격히 팽창하였다. 2012년 기준 대략 6천만명이 가입하고 있다.
실손의료보험의 확대는 보험 자본의 건강보험 재편 전략을 담고 있기도 하다. 노무현 정부 시절 건강보험 확대가 당장 여의치 않은 조건 하에서, 과중한 본인부담으로 인한 의료비 걱정을 해소하는데 민간의료보험에 그 역할을 맡기자는 요구가 등장한다. 여기에는 삼성의 역할이 컸다.
지난 2005년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삼성생명의 실손의료보험 발전 전망을 담은 내부 전략보고서를 폭로한 바 있다. 실손의료보험 출시가 건강보험을 보충하는 단계를 넘어 점차 건강보험과 경쟁하고, 궁극적으로 대체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정부는 건강보험의 취약함을 보충한다는 공익적 역할을 맡긴다는 취지였지만, 자본은 이를 활용하여 건강보험을 대체할 전략까지 내세웠던 셈이다.
지금도 실손의료보험은 끝임없이 진화하며 변신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말에는 실손의료보험 종합개선대책이라고 하여 실손의료보험이 의료기관과 직접 계약할 수 있는 방안과 함께 실손의료보험이 지급하는 본인부담금을 심사하고 보험가입자의 건강 정보를 한 곳에 수집할 수 있는 보험정보원(가칭)도 추진한 바 있다.
실손의료보험을 매개로 민간보험사가 의료기관과 직접 계약을 하게 되면, 민간보험사는 건강보험과 경쟁이 가능한 대등한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 건강보험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의료기관이 청구하는 진료비를 심사하듯 민간보험사도 심사하겠다는 것이다.
이리되면 단일보험자로서 건강보험이 갖는 지위는 무너지게 된다. 다행히도 당시 이는 '의료민영화 추진 반대'라는 여론에 밀려 무산된 바 있다. 그렇더라도 그 시도가 완전히 무산된 것은 아니다. 조만간 다시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환자가 보험사 지정 병원만 이용하게 될 수도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실손의료보험을 확대하려는 정책은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노후의료비보장보험이라는, '개인연금+노후의료비를 보상해주는 민간의료보험' 상품도 허용된 상태다.
한편으로 민간보험사가 주도하는 민간의료보험체계의 맹아도 조금씩 가시화되고 있다.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외국인 환자 유치가 의료관광활성화라는 명분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
만약 (지금은 허용되지 않고 있지만) 보험사의 외국인 환자유치가 허용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현행 건강보험 제도는 건강보험증 하나로 환자가 의료기관을 선택할 수 있지만, 민간보험사는 보험가입자를 대상으로 하여 자신과 계약을 맺은 특정 의료기관만을 이용하도록 유도할 것이다.
이리되면 건강보험을 정점으로 하는 의료전달체계가 무력화되며, 민간보험회사를 정점으로 새로운 민간의료전달체계가 확립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가 폐지되지 않더라도 내용적으로 건강보험 제도가 붕괴되는 효과를 가져오게 될 거라는 말이다. 정부와 보험회사가 이런 방식으로 조금씩 의료민영화를 추진하고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 2편이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건강보험하나로 팀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