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고발자를 다룬 영화 <인사이더(The Insider)>에서는 담배 회사의 비도덕적인 면을 폭로하는 제프리 위갠드(러셀 크로우 분)가 등장한다. <블루게이트>도 다르지 않다.
장진수는 인사이동을 하자마자 힘의 논리를 터득했다. 동료들의 축하 인사를 받으면서도 그곳에서 불법적인 일을 하게 되는 동시에 자신 또한 증거인멸에 가담하게 될 줄은 알지 못했으며, '암행감찰반'으로 불리는 공직윤리지원관실에 발령이 난 뒤 윗선에 상납하는 등 황당한 지휘체계를 지닌 자신의 조직이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훗날 그는, 자기 스스로마저 고발하는 고통을 안게 되었다. 그의 기록을 읽어 내려가면 흡사 과거 중앙정보부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역시 용기 있는 기록이었던 <남산의 부장들>(김충식, 폴리티쿠스, 2012)에서 찾아볼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은― 최근 몇 년에 이르기까지 사라지지 않았고, 지금도 있을지 모르며, 앞으로도 영원히 불사의 존재로 남을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은행에서 돈을 받았더라고."
"예? ○○은행이 돈을 왜요? 얼마를요?"
"200만 원. ○○은행 좀 잘 봐달라고 준 거지 (...) 함께 밥 먹다가 부행장이 돈 봉투를 주니까 냅다 받아 온 거예요. 감사하러 나간 사람이……."장진수의 기록에는 이런 식의 대화가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어진 김종익 사건. 개인 블로그에 정부 비판 동영상을 올렸다는 이유로 민간기업인인 김종익씨를 사찰하는 일이 벌어지고 이 사건이 텔레비전 탐사보도 프로그램에서 방영되었다.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을 삭제하고, 관련 문건을 파쇄하고, 검사들은 그런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다. 더군다나 법정에 선 장진수의 상관은 자료 삭제를 지시한 적이 없다는 변명한다.
음해에 관해서는 어떤가? 그의 상관은 '지원관실에 쏟아지는 비난의 여론을 김종익에게 돌려서 사건을 무마해야 한다'며 문건을 작성해 여당 의원에게 전달했고 ― 장진수는 왜 갑작스레 여당 의원이 등장하는지에 의구심을 품는데, 그 의원이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실의 행정관과 친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의문이 해소되었다'고 씁쓸히 덧붙이고 있다 ― 자료를 건네받은 해당 의원은 국회에서 김종익씨를 음해하는 공세를 펴며 그를 검찰에 고발하기에 이른다.
국회의원이란 무엇인가? 국회의원이란 수많은 사람이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우므로 국민들을 대리하는 책임이 지워진 사람인데, 이것은 개인적으로 일전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을 새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대의 민주주의하에서 국민의 정치적 의사와 권리를 대리하게 되는 국회의원은, 바로 우리를 대신해 정치판에서 싸우는 용병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 그런 임무를 지닌 자가, 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이 아닌 민간인을 감시하고 고발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 상황이다. 이래저래 한국 정치와 한국 사회가 배를 타고 산을 향한다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질 않나.
"불법사찰 사건에는 이 시대의 암울한 분위기가 반영되어 있다. 방식만 바뀌었을 뿐 군사정권 시절의 자기검열 시대로 회귀했다. 실제로 지금 정부를 비판하면 선동한다고 하지 않나. 그 발단이 바로 불법사찰 사건이다.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사건 등도 연장선에 있다고 본다."
― 한국일보 장진수 인터뷰(2014. 5. 25)허울뿐인 압수수색과 증거인멸이라는 범죄, 여론몰이, 꼬리 자르기, 그리고 '말 한마디 잘못한' 장진수의 양심선언. 물론 그 역시 범죄에 가담한 셈이었지만 내부 고발이 가져온 후폭풍은 그에게 '독박'을 안겨주었다. 그 심난하고 지난했던 과정이 이 <블루게이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허두에 언급한 <인사이더>로 돌아가 보자.
알 파치노가 연기한 로웰 버그만은 제프리와 더불어 '진실이기 때문에, 너무 진실해서 오히려 손해를 본다'는 조직에 철퇴를 가하고 언론인의 사명을 지키려 했다. 장진수는 용기 있는 고백을 시작한 후 공직에서 물러났지만 적어도 부끄러운 인간이 되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그가 말한 건강한 에너지일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나타나듯 알량한 회유라는 파란색 알약을 버리고서 빨간색의 것을 취한 것은 단순히 선택의 고민과 방황에만은 그치지 않는다. 갈림길에 서서 한 번 선택하게 되면, 그것이 최선의 길일는지 아니면 최후의 운명을 맞게 될는지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고 그 어떤 것도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값진 양심 앞에서의 힘든 머뭇거림은 그만큼 우리에게 장진수를 기억해야만 하는 분명한 이유를 던져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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