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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은 현재 침몰 중이다

한국은 현재 침몰 중이다. 지난 4월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가 이 사실을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이제 우리는 셋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가만히 있으라는 선장의 말에 복종하여 그냥 죽든지, 더 침몰하기 전에 선장을 갈아치우고 배의 균형을 회복하든지, 군소리 말고 배에서 탈출하든지….

인재(人災)로 인한 대형 참사는 어느 정권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 하에서 발생한 세월호 참사만큼 한국인들을 각성시킨 참사는 앞으로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세월호 침몰에 대해 인천대교수들은 "국가 시스템의 붕괴"로, <미디어오늘>의 홍헌호는 "천민자본주의의 참사"로, <조선일보>의 김대중은 "개발독재의 업보"로, <뉴욕타임즈>는 "국가적 자기성찰의 계기"로 보고 있다. '낭만인생의 독서노트'라는 블로거는 이를 "한국의 침몰"이라 명명하고 있다. 앞으로 한국 역사에서 4·16 세월호 참사는 4·19 학생의거나 5·18 광주민중항쟁과 유사한 수준의 영향을 미칠 것이라 예상된다.

한국의 침몰은 세월호 참사 이전 이미 도처에서 그 증후가 나타나고 있었다. 얼마 전 부터 한국은 전후 제3세계에서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성공시킨 나라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러나 해결되지 않은 역사적·구조적 모순이 체제적 침몰 위험을 빠르게 증가시키고 있었다. 한국의 침몰 위험은 각종 지표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OECD 국가 내에서 한국은 자살률 1위, 노인빈곤율 1위, 산업재해율 1위이다. 가장 위험한 지표는 청년실업이다. 통계청의 통계를 보면 950만 명에 이르는 청년인구의 41%만이 직장을 가지고 있다. 취업의사까지 포기해버린 절망적 니트족 수가 무려 130만 명에 달하고 있다. 현재 한국은 젊은이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나라이다. 젊은이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체제는 생존할 수 없다.

한국의 침몰은 이명박에서 박근혜로 이어지는 특정한 지배연합의 지배 결과이다. 서울대 교수들은 그들의 성명서에서 이 세력의 지배 행태를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다. 생명과 안전을 도외시하는 기업, 감독기관의 부패와 행정 공백, '기업프렌들리'를 외치는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 '관피아'로 지칭되는 연줄관계망의 구조적 폭력, 이윤만을 강조해 온 신자유주의적 자본축적 논리, 언론통제와 사건의 축소·은폐·조작, 종교마피아들과의 이데올로기적 연대, 시민단체를 빙자한 파시스트적 폭력단체들의 동원 등이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자 이 세력들은 온갖 논리를 동원하여 이 참사를 "우리 모두의 죄악"으로 은폐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희생자들과 유족들에 대한 망언이 여기저기에서 잇달아 나타났다. "숨 쉬기도 미안한 4월"이었다.

이 세력의 핵심인사로서 언론 분야를 이끌어온 <조선일보>의 김대중이야말로 이 세력의 정체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당사자이다. 김대중에 따르면 세월호를 비롯한 여러 인위적 재난은 "개발독재"세력이 조성한 "업보"이다.

그는 이 세력의 통치가 끝나는 시점에서 건물·도로·다리·항만·항공·철도·군사시설에서 세월호에 준하는 재난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날 것이라 예언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재난 전문가들은 관피아적 거래 하에 수많은 가짜 부품들이 공급된 바 있는 원자력발전소와 KTX 부문에서 다음 재난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2. 박근혜 정권의 정체

박근혜 정권은 바로 이 개발독재세력의 총화이며 역사적 모순의 결집체이다.

한국은 건국 이래 이 두 가지 모순으로 시달려왔다. 첫째는 정통성의 모순이다. 독립운동세력의 적통을 이어받는다고 선언했으나 실제로는 친일세력이 정권을 장악했었다. 둘째 정당성의 모순이다.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수립을 선언했으나 실제로는 30년의 군사독재를 유지했었다. 일본군 장교로 일제에 충성했으며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는 이 두 가지 모순의 화신이다.

이 유산은 그의 큰 딸인 박근혜가 계승하고 있다. 이 역사적 유산을 바탕으로 이익을 나누는 개발독재세력들이 현재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은 자유민주주의라는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군사독재를 계승하는 정당이 민주체제의 보통선거에서 승리했다는 사실이 외국인들에게는 큰 수수께끼이다.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미국의 <뉴욕타임즈>지는 이렇게 헤드라인을 뽑았다.

"독재자의 딸이 한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국제적으로 부끄러운 일이었다. 민주화 시대에 있어서 개발독재세력의 대중적 지지 획득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동유럽의 공산독재국가들이 붕괴한 이후 얼마 안 되어 그 공산당들이 다시 집권하는 현상과 유사하다. 도대체 누가 왜 군사독재세력을 지지할까?

한국의 여론조사들은 가난할수록, 늙을수록, 직업이 없을수록, 경상도 출신일수록 개발독재세력을 더 지지한다는 사실을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한 달 후에 실시된 한국갤럽의 박근혜 정권 직무수행 지지율 조사가 그러한 사례 중 하나이다.

30대가 24%, 40대가 42%, 50대는 59%인데 비해 60대 이상은 세월호 참사에도 불구하고 72%의 절대적 지지를 보이고 있다. 화이트칼라 계층은 33%인데 반해 무직/은퇴/기타 계층은 58%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고, 전국평균이 46%인데 반해 경상도는 58%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민주화시대에 있어서 나타나는 개발독재세력 지지는 "스톡홀름 증후군"으로 설명되고 있다. 개발독재의 압제와 세뇌의 절망적 상황 하에서 피해자들 자신이 개발독재와 일체감을 갖게 되는 안타까운 현상이다. 개발독재세력은 경제성장을 위해 군사독재가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30여년 이상 국민에게 강요하고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을 가혹하게 탄압했다.

진실을 보자면 세계 어느 선진국도 군사독재로 성공한 사례가 없다. 도리어 그 반대의 경우가 많다. 중남미 국가들은 60년대에 중진국으로의 도약할 기회를 맞이했었으나 빈번히 발생한 군사쿠데타로 좌절하고 말았다. 한국의 경제성장은 군사독재 때문이 아니라 군사독재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진 것이다.

가난하여 교육 수준이 낮을수록 나이가 많아 개발독재세력의 선전에 오래 노출되어 있었을수록 이 왜곡된 논리를 지지할 가능성이 많다. 개발독재세력의 선전에 오래 노출된 노인계층의 상당수는 자신의 과거와 군사독재의 역사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젊은이들의 군사독재 비판을 자신들의 과거에 대한 부정과 동일시하고 있다.

국가적 정체성과의 충돌 때문에 개발독재세력은 불가피하게 거의 모든 정치행위에서 공작과 속임수를 동원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정권의 수립과정을 보면 국가정보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의 대선 개입, 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경찰의 수사 은폐, 채동욱 검찰총장 교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작과 위법의 혐의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공작과 속임수의 습관은 세월호 참사의 과정, 원인설명, 사후대책 등 거의 모든 측면에서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다. 적은 사람을 오래 속일 수 있고 많은 사람을 짧게 속일 수 있지만 많은 사람을 오래 속일 수는 없다.

3.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가만히 있으라"는 선장의 말과 "구조하고 있다"는 정부의 말을 믿다가 자녀를 잃은 어머니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다 정리하고 떠날 거예요. 나 대한민국 국민 아닙니다. 이 나라가 내 자식을 버렸기 때문에 나도 내 나라를 버립니다."

이처럼 체제가 신뢰를 상실한 상황이라면, 우리는 두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첫째는 탈출이고, 둘째는 개혁이다.

탈출은 탈출할 역량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에게나 가능한 대안이다.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탈출한 사람들은 두 종류인데, 첫째는 침몰하는 체제를 담당했던 선장 이하 지배층들이었고, 둘째는 가만히 있으라는 선장의 명령을 무시하고 스스로 살 길을 찾은 사람들이다. 전자는 그 부도덕성과 패악함으로 말미암아 논의의 대상이 아니지만, 후자도 대다수 국민의 차원에서는 선택하기 어려운 대안이다.

한국사회에서의 탈출은 박정희의 유신독재가 한창이던 1970년대 중반에 그 정점을 이루었다. 그 이후로도 탈출이 가능한 사람들은 계속 해외로 이주하여 현재 해외교포가 7백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이명박 정부 이후 해외 이주를 신고한 국민들만도 20만 명을 상회하고 있다. 문제는 해외이주가 가능한 사람들은 돈이 많거나 젊거나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로 제한되어있다는 점이다.

공동체를 위해 가장 바람직한 대안은 개혁이다. 헌팅톤의 분석에 따르면 과도한 피 흘림 없이 체제의 전환을 이룩한 국가들만이 선진국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개혁의 단계 없이 혁명만으로는 선진국으로 진입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세계역사가 증명한다. 배가 침몰의 징후를 보이는 순간 무능하고 거짓된 선장을 신속히 평화적으로 갈아치우고 배의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

개발독재세력들이 스스로를 개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침몰하는 체제의 조성에 적극 기여한 사람들에게 침몰을 피할 길을 묻는 것은 친일파에게 자주독립의 길을, 군사독재자들에게 민주화의 길을 묻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개발독재세력이 추진하는 국가개조란 민주화와 선진화의 파멸을 의미한다.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위한 개혁의 길에는 세 가지 방안이 있다. 첫째는 당장 침몰하는 나라를 되살리는 긴급구난이다. 둘째는 개발독재로 인해 뒤틀린 관행과 제도를 바로잡는 제도개선이다. 셋째는 스톡홀름 증후군을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의 틀을 잡는 의식개혁이다. 대한민국의 경우는 그 침몰의 증후가 매우 빠르고 심각하기 때문에 이 세 가지 대책을 동시에 추진해야한다.

무엇보다 먼저 진실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정치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일종의 선박사고인 세월호의 침몰 원인이 이처럼 오랜 시일이 지나서도 오리무중인 나라는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당연히 객관성을 담보하는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

또, 견제와 균형의 민주적 제도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공동체적 분업의 원리를 제도화하여 권력과 부와 명예를 동시에 추구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내수시장 진흥과 중소기업 육성정책을 실시하여 부문 간·기업 간 균형을 회복하고 고용을 증진시켜야한다. 양극화를 완화하는 조세제도를 정착시키고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하여 패자부활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반사회적 경제범죄에 대한 징벌적 보상제를 정착시켜 반사회적 행위로는 금전적 이익을 누릴 수 없게 해야 한다.

우리 민족의 사고방식에서 색깔론과 지역감정을 제거하는 문화개혁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이는 군사독재자들이 거짓된 통치를 위해 개발했던 이데올로기적 수단일 뿐이며 우리의 미래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하는 허위의식이다. 우리 사회에서 유달리 강한 성공제일주의나 준법의식의 부재도 군사독재의 잔재이다. 우리의 진정한 비전은 모든 국민이 다 함께 잘 살 수 있는 강하고 자유로운 공동체의 확립이다. 우리 모두는 자유민주주의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며 공평하고 정직한 정치는 이러한 체제를 만드는 가장 효율적 수단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일제36년과 군사독재30년은 우리 역사의 상처이고 박근혜 정권은 그 상처의 딱지이다. 이제는 상처딱지를 떼고 과거의 멍에로 부터 자유로운 나라를 만들어 볼 때가 되었다. 역사적 모순으로부터 자유로운 세력들끼리 민족을 위한 정책을 두고 선거에서 경쟁하는 나라를 만들어 볼 때가 되었다. 일제 잔재에서 벗어나려면 100년이 걸릴 것이라던 아베 노부유키 일본총독의 예언과 달리 우리는 70년 만에 이 굴레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고 있다. 4·16 세월호 참사가 우리 민족에게 이러한 역사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광복 69주년을 맞이하여 한국의 진로를 생각하는 글.



#정치#세월호#국가발전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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