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녹색당 당원이다. 후쿠시마 사고 직후 한국 사회에서 대두된 녹색당 운동에 동감하여 '내 생애 첫 정당'으로 녹색당을 택했고, 비록 아무런 역할도 못하고 있지만 나름 밀리지 않고 당비를 납입하며 녹색당의 뉴스레터를 꼬박꼬박 읽고 있다.
최근 선거에서 진보 정당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그 중 하나는 제1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부진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된 21세기 한국의 진보정당의 득표율을 살펴보면 재밌는 결과를 발견하게 되는데, 제1야당인 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 통합민주당, 민주통합당이 35% 이상 지지를 받아 선전한 총선에서는 진보정당은 10% 이상의 지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반면 25% 득표에 그친 2008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5.68%로, 2000년 창당 이후 최저치의 지지를 얻는데 그쳤다.
* 역대 총선 정당 지지율 비교
2000년 16대 총선 한나라당 39.0%, 새천년민주당 35.9%, 민주노동당 1.2%
2004년 17대 총선 한나라당 35.8%, 열린우리당 38.3%, 민주노동당 13.0%
2008년 18대 총선 한나라당 37.48%, 통합민주당 25.17%, 민주노동당 5.68%
2012년 19대 총선 새누리당 42.90%, 민주통합당 36.45%, 통합진보당 10.30%선거는 그 당시의 정치 환경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겠지만, 특히나 진보정당이 선전하기 위해서는 그나마 성격이 조금이라도 비슷한 민주당 계열의 정당이 굳건히 서 있어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굳이 경제학 이론을 불러들인다면, '정당'이라는 재화가 거래되는 보다 큰 시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거대 보수 정당 독점 체제보다는 그 밥에 그 나물이라도 양당 과점 체제가 더 낫다는 것이다. 그래야 소비자들은 상품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 시장을 찾게 되고, 그래서 거래가 활성화된 시장이 만들어진 후에야 여러 군소 상인들의 출현이 가능한 조건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민주당 계열이 지지부진할 경우, 야권 성향의 소비자들은 시장 자체에 실망하고 시장을 등지는 결과로 이어지고, 그 결과 보수 정당의 독점은 더더욱 굳어질 것이다.
세월호 특별법 합의에서 확인했듯, 새누리당의 2중대임을 스스로 고백한 새정치연합이지만, 한국 정치가 이렇게 곤두박질치다가는 제2, 제3의 세월호 사고가 어디에서고 일어날 수 있기에, 그리고 한국의 진보정당은 그 가치의 작은 하나도 펼쳐 보이지 못하고 사라져갈 것이 자명하기에, 역설적으로 새정치연합을 다시 살려내야 한다.
어쩌면 다행인 것은, 두 차례의 선거를 통해 새정치연합이 바닥을 치고 있기 때문에, 제대로 수혈만 된다면 새정치연합의 DNA까지는 아니더라도 낡고 낡은 체질을 바꿀 수는 있을 것이다.
정당 정치의 구현 – 당원 참여 플랫폼지금까지의 한국 정치는 풀뿌리 정당이 아닌 리더 몇 몇에 의해 좌지우지 되었다. 과거 김대중 김영삼의 70~90년대까지의 활동 뿐 만 아니라, 대선 기간에 반짝 튀어나온 박찬종, 정주영, 이인제, 이회창, 문국현 등은 한국의 정당이 대중의 뿌리 없이 얼마나 쉽게 만들어지고 또 그 '연예인'의 인기 추락과 함께 얼마나 빨리 사멸하는지 잘 보여준다. 그 정점에 안철수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이들의 출현이 기존 정당, 정치에 대한 반감에서 기인한 것임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의 그 어떠한 대중 정당도 당원들의 민심이 상향식으로 올라오는 풀뿌리 정당이었던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몇몇 진보정당들이 이러한 '실험'을 시도하고는 있지만, 소수의 진보정당 당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이러한 정당 문화에 익숙치 않다.)
민주 없는 민주당정통 야당이라 불리는 민주당 계열이 반민주 세력에게 민주를 외치며 선거에서 표를 모았는지는 몰라도 당내 민주화는 없었다 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새정치연합의 행태를 보고 있노라면, YS-DJ로 대표되는 초기 민주당의 대중 정치인들과 이들의 후계자들은 당내 민주화를 거들떠보지 않았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당원이 존재함에도 '전략공천'이라는 이름의 구태가 아직까지도 활개를 치는 것은 당원에 대한 비민주적인 행태 그 자체이다.
그러니 어떤 정치부 기자의 지적처럼, 지금의 새정치연합은 머리는 있으나 팔다리가 부실한 상태일 수밖에. 선거에 닥쳐 당선 가능성을 빙자해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를 지역 대표로 내놓으니, 어느 당원 어느 유권자가 좋아라 투표하겠는가?
튼튼한 팔다리, 건실한 뿌리를 가진 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그리고 무엇보다 선거에서 이기는 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유권자, 더 분명하게는 당원의 뜻에 따르는 당으로 변모해야 할 것이다. 자발적으로 당비 내며 참여하는 당원이 실망하는 정당이라면, 이들보다 적극적이지도 우호적이지도 않은 일반 유권자를 대상으로 하는 선거전에서 이기기는 요원해 보인다.
전국 정당이 되는 길 – 정책 정당화특히 정권을 창출하는 정당이 되고자 한다면, 수도권과 영남, 강원, 충청에서 유의미한 득표는 필수조건인데, 이를 위해서는 어느 지역에 사는 유권자든 이들이 가려워하는 곳을 긁어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당에게 그것은 바로 정책이다.
지난 몇 차례의 선거에서 경험했듯, 새누리당은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라면 별의 별 짓을 다 동원한다. 당명도 바꾸고, 빨간색을 받아들이기도 했다. 반값 등록금, 경제민주화 등 야권에서 제기했던 이슈를 그대로 가져감으로써 새정치연합과 그 차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그들 스스로를 변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새정치연합이 외치는 정권심판은 그저 정치적 보복 시도로 밖에 안 비쳐졌다.
아무리 종편과 보수언론이 현 정권을 감싸고 야권에 대해 친노-종북-좌파 프레임을 덧씌운다고 할지라도, 새정치연합이 보다 구체적으로 유권자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는다면 유권자의 표심은 바뀔 것이다. 초등학교 유치원으로까지 번진 대학 입시를 위한 살인적인 경쟁에 대해 단기적인 해법 뿐 만 아니라 교육 구조를 개혁하는 장기적인 비전까지 제시한다면, 영남이든 호남이든 지금의 학부모 뿐 만 아니라 미래의 학부형이 될 젊은 세대들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최근의 군대폭력 뿐 만 아니라 일상이 된 학교폭력, 성폭력, 언어폭력에 대한 강도 높은 대책을 제시한다면, 한 번이라도 폭력에 노출된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는 새정치연합이 기댈 수 있는 언덕으로 느껴질 것이다. 수 십 년째 계속되는 대기업, 사용자의 횡포에 대해 노동자의 고용과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강력한 대책을 제시한다면, 대기업의 정치자금은 줄어들 수 있을지 몰라도 길거리에서 고용 보장을 외치는 수 천 수 만의 노동자의 표심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 만연한 사회 문제에 대한 해법은 사실 시민단체나 노동조합 등으로부터 이미 제시되었을 것이다. 아니, 대입을 위해 월급의 절반 이상을 자녀 학원비로 지출하는 학부형들은 문제의 심각성과 해법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이것을 당의 정책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몇 몇 국회의원이나 전문가의 밀실 논의가 아닌, 당원들이 직접 참여해 당의 정책으로 발전시키는 절차를 밟는다면 당원들의 참여도, 그리고 더 나아가 당원들의 당에 대한 헌신도는 매우 높아질 것이다. 인터넷, 스마트폰 등의 양방향 소통이 가능한 기술은, 당이 의지만 있다면 당원들과 의견을 주고받는 것을 가능케 한다.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말이다.
새정치연합을 되살리는 방법 – 단 1년만 당원 되기선거철이 다가오면서 제1 야당을 어떻게 띄울 것인가 하는 것이 신문의 정치면을 채운다. '젊은 피 수혈론'부터 최근 유행했던 '빅 텐트론'에 이르기까지, 제1 야당을 개혁하자는 방안의 핵심은 실은 인기 있는 386 리더, 시민단체 지도자들을 당으로 영입해 대표 선수로 내놓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영입된 젊은 피, 이름 있는 시민단체 지도자들이 과연 무엇을 이루었는지 냉철히 살펴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나는 이들이 대중 정치인으로 자격이 없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참신하고 실력 있는 정치인이라 하더라도 이들이 호랑이 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들에게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힘이 되어줄 지지 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당원이다. 신진 정치인 몇이서 개혁할 수 있는 정당이었다면 이미 예전에 혁신 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만큼 벽도 높고 장애물도 많은 것이 50년 정통의 호남 기반 새정치연합 아니겠는가?
다음 총선까지 1년 반, 다음 대선까지는 3년여의 시간이 있는 지금은 어쩌면 더 추락할 곳이 없는 제1 야당 새정치연합을 쇄신시키기에 참으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감히 제안하는 것은, 지금부터 단 1년간만 새정치연합의 당원이 되어 이 무능한 제1 야당을 회생시키자는 것이다. 튼튼한 제1 야당이 있어야 진보정당도 뛰어놀 수 있는 정치 시장이 열릴 것이며, 무엇보다도 매 주말 촛불 들고 거리로 나가는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 한 달에 당비 1만원이면 1년 12만원인데, 촛불집회 한두 번, 많게는 세 네 번 나가는 비용에 불과하다.
촛불집회 나가는 시간에 당원이 되어 지구당에 모여 당의 비민주적인 구조를 혁신할 방안을 얘기하고, 한국 사회의 앞날을 고민하는 생산적인 토론을 하는데 1년을 투자해 보면 어떨까? 새정치연합에서 이러한 당원 직접 정치 참여가 일상이 되어간다면, 새누리당도 흉내 내기에 들어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한국의 정당 정치가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눈 딱 감고 새정치연합에 1년만 인공호흡을 시도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