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중순, 세월호 참사 당일 상황이 담긴 미공개 동영상이 새롭게 공개되었다. 유품이 되어버린 학생의 휴대폰을 복원해 공개한 것이다. 한 남학생이 살려달라고, 죽고 싶지 않다고 절규하고 있었다. 하고 싶은 일도 많은데 이렇게 죽고 싶지 않다고, 이성 친구 하나 사귀어 보지 못했는데 이렇게 죽고 싶지 않다고 울부짖고 있었다. 생사의 경계에서 울부짖던 그 학생은 결국 아무 잘못도 없이 차가운 물에서 서서히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소설은 소설이라고 작정하고 읽기라도 한다. 연극이나 영화를 볼 때도 미리 마음준비를 한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는 여느 소설이나 연극 그리고 영화를 뛰어 넘는 그 무엇이었다. 당연히 그때에 마음준비를 하고 참사를 기다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국민 모두가 한 순간에 슬픔과 공포의 도가니에 빠졌고, 비통해 했고, 일상을 제대로 살지 못했다.
그런데 참사발생 다섯 달이 다가오는 지금은 어떤 모습인가. 사분오열되었다. 어버이연합 노인들은 서울 도심 한복판에 진을 치고 가슴에는 '단식 ◯일째'라고 쓴 채 치킨과 짜장면을 시켜 먹기까지 했다. 처음 그 장면을 접했을 때, 상상을 불허하는 그 추악함이라니, 저것은 망가진 삶의 어느 끝자락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저들이 먹는 그것은 음식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저들은 스스로 파괴된 생명체이며 분열된 자아라고 증명해 보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끔찍하고 구역질나는 장면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200여 명의 일간베스트회원들은 광화문광장에서 치킨과 피자와 맥주 등을 먹고 마시며 마음껏 파티를 즐겼다. 그들은 단순히 내가 생각하는 '괴물'이나 '악마'가 아니라, 나와 함께 지금 이 공간에 실재하는 사회구성원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돌연 어느 순간 벌어진 것은 아니다. 일찌감치 어떤 이들은 유가족들에게 슬파하는 건 알겠지만 분노로 분출하는 행위는 이해하지 못하겠고 지루하기까지 하다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부지런을 떨었다.
사람들이 흔히들, '세월호 피로감'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일찌감치 자신을 드러낸 사람들에게서도 나타나듯이, 사실은 한마음이었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피로감'에 지쳐 갈라진 것이 아니다.
그리고 문유석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의 말처럼 "한낱 원인을 밝히는 '방법'에 대한 세세한 의견 차이 때문"도 아니다. 그들은 자신을 드러낼 기회를 노리다가 틈을 타 자신의 속성을 그대로 극명하게 말하고 있는 것일뿐이다. 이렇듯 그들이 스스로 실체를 밝히는 데 주저하지 않도록 힘을 준 것은 수구정권과 그 골수 추종자들임은 두말 할 나위도 없는 것이다.
'우리 고금리 맞아, 그게 뭐가 잘못인데?'... 폭력성 드러내얼마 전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한 고리대금업체 광고를 보았다. 대개의 기업들이 좋은 기업이미지를 남기기 위해 미화하거나 감동을 불어넣거나 공익광고처럼 보이도록 광고를 만드는 데 반해 이 사채업체는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고리대금사채업에 대한 세간의 이목이나 비난을 부인하기는커녕 광고초반부터 비싼 이자를 받고 있다고 당당하게 선전하면서 맞받아쳤다. '그래, 우리 고금리 맞아. 그런데 그게 뭐가 잘못인데?' 이렇게 사채 금융업은 공중파를 통해서 뻔뻔하게 자신을 폭력성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그런데 유감스럽지만 이 광고는 마치 지금 '이명박근혜' 정권을 대신 홍보해 주고 있는 것 같다. BBK사건이나 국정원의 대선개입 등 부정선거를 하고도 국민들을 상대로 뻔뻔하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이 광고와 똑 닮아있지 않은가.
'그래, 우리 거짓말하고 사기치고 도둑질해서 부정으로 권력 잡은 거 맞아. 그런데 그게 뭐가 잘못인데?'출생의 비밀을 애써 숨기지 않는 이 수구정권은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태도에도 그 뻔뻔스러움을 고스란히 녹아내고 있다. 그들은 처음부터 세월호 참사를 단순한 대형사고로 몰아가는 데 필사적이었다. 그들은 그날의 기만적인 구조행위를 비롯해 수많은 의혹들에 대해 해명보다는 사건을 조작하고 은폐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정권을 사수하기 위해 충견으로 잘 사육된 모든 공권력을 아낌없이 부렸다. 이에 조응해 정치인·지식인들은 알아서 '막말' 봉사를 아끼지 않았다.
여당 의원과 보수논객 그리고 대학 교수들의 '막말' 활약을 잠시 살펴보자. 새누리당 권은희 의원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나흘 뒤 자신의 SNS에 "세월호 실종자 가족 중 선동꾼이 있다"고 올렸다. 지만원 사회발전시스템연구소장은 지난 4월 22일에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시체장사에 한두 번 당해봤는가? 세월호 참사는 이를 위한 거대한 불쏘시개"라고 썼다.
그리고 정의실현국민연대 정미홍 대표는 지난 5월 4일 자신의 트위터에 "(세월호 집회에 참석한) 지인의 아이가 6만 원의 일당을 받아왔단다"라는 글을 올렸다. 홍익대 김호월 교수는 5월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유가족이 무슨 벼슬 딴 것처럼 쌩 난리친다. 이래서 미개인이란 욕을 먹는 거다"라는 글을 올린 바 있다. 모두 다 한결같이 정권을 수호하는 데 발 벗고 나섰던 것이다.
진상규명을 위해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된 세월호특별법을 제정해 달라는 유가족과 450만 명이 넘는 국민의 요구에 수구정권과 그 하수인들은 어떻게 대응하였는가?
유민 아빠 김영오씨의 단식을 두고는 전직 산부인과 의사였다던 새누리당 안홍준 의원은 그의 단식이 진짠지 가짠지 의심스럽다는 투의 말을 던지는가 하면, 이 나라의 최고통치권자는 김영오씨의 간절한 면담요청에도 바쁘신 일정 때문인지 지척인 광화문은 돌아보지 못하고 부산 자갈치 시장까지는 한걸음에 달려가는 축지법을 보여주었다.
지난 9월 1일 자 기사를 보면 정치권들은 애초에 특별법은 염두에 두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새누리당의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는 세월호 유가족들과의 면담과정에서 "여야 협상 과정에서도 수사권 기소권 주장 하지 않았고, 기소권은 서너 달 전에 포기한 것이었는데 진짜 몰랐냐"고 반문했다. 그들은 그저 잠시 시늉만 내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는 대놓고 유가족들에게 그만 양보하라며 으름장까지 놓고 있다.
이렇게 대통령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은 사실을 왜곡하는 방식으로 세월호특별법제정을 방해하고 저지했다. 이러한 저들의 전략은 과연 유효했다. 저들의 활약에 힘입어 어버이연합이나 엄마부대 그리고 자대련, 일베, 공화당 신동욱 등이 속속 그 대열에 합류하였으니 말이다. 이들은 없는 말을 지어내고, 유가족이 요청한 특별법내용을 왜곡하고, 급기야는 죽을 각오로 단식하고 있던 한 생명을 조롱하는 극우 성향의 행동까지 서슴지 않았다.
저들의 반인간적이고 반인륜적인 행위는 무엇에서 비롯하는 것일까? 무엇이 저들로 하여금 인간의 가장 밑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사악함을 여과 없이 드러내게 하였을까? 저들의 저 추악한 행태가 단지 인간 개인에게 잠재해 있는 어떤 악의 발현/표현이기만 할까? 무엇이 저들을 저토록 뻔뻔스러운 자신감으로 충만하게 만들었을까? 과연 저들의 행위가 권력의 비호나 경제적 지원 없이 가능한 것일까?
세월호 참사의 진상, 왜 밝히지 못하나
거짓말과 사기 그리고 도둑질로 부정하게 권력을 잡은 이명박근혜정권, 공기와도 같은 자본을 출생의 비밀로 갖고 있는 이 수구정권은 당연히 자본에 복무할 수밖에 없으며 또한 자본에 복무하기 위해 자신 외에 수많은 다른 첨병들 혹은 협조자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러한 정권 아래 저들 극우성향의 사람들이 음으로 배양되고 양산되었을 것이다.
지금 저들은 세월호특별법제정을 반대하기 위한 당면 목표 아래 정치인·보수언론인·지식인들부터 가난한 백수청년들과 힘없는 노인들까지 한마음이 되어 집결한 것이다. 그리고 정권을 대신해 앞장서 세월호를 더욱 흠집 내기 위해 열을 올리고 정권은 슬그머니 뒷전으로 물러 서 그들의 배후를 지켜주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이 정권과 사회가 얼마나 부패하고 미개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겠다.
저들은 이제 세월호 때문에 '민생'이 어렵다며 산적해 있는 민생법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설레발을 치고 있다. 저들이 민생법안을 표면상 이유로 들지만, 모두 합심하여 저토록 악착같이 특별법제정을 반대하는 이유는, 분명, 세월호참사의 진상이 밝혀져서는 안 되는 어떤 치명적인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무엇 때문에 저토록 필사적으로 막는단 말인가. 세월호와 관련한 국정원의 개입(설)에 대해서도, 유병언의 의심스런 사망(설)에 대해서도, 저들은 어떤 과학적인 해명이나 설득은커녕 오히려 서둘러 덮어버려 의혹만 증폭되지 않았던가.
저들이 온갖 술책과 기만으로 숨기고자 하는 세월호참사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진실을 덮기 위한 저 뻔뻔스런 수구정권과 여러 극우단체들의 퍼포먼스는 경악 그 자체다. 살고 싶다고 울부짖던 십대 남학생을 비롯하여 억울하게 죽어간 300여 명의 세월호 생명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저들이 제 집 앞마당에서 축제를 벌이듯 하는 저 폭력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다. 깨어 행동하는 시민만이 비로소 세월호참사의 진실에 가깝게 갈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본 원고는 노동사회과학연구소의 기관지인 <정세와노동>, 2014년 9월호에도 동시 투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