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는 2005년부터 고용창출과 도심 상권을 활성화하겠다며 콜센터를 적극 유치했다. 지자체 중 최초로 생산자 서비스업 보조금 지원제도를 마련해 이전 업체당 5억 원까지 재정지원을 하는 등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하고 있다. 부산시의 정책 덕분에 콜센터가 부산으로 많이 이전했다. 이제 부산의 콜센터 종사자들도 1만여 명에 달한다.
하지만 콜센터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콜센터 일을 시작하지만 2년 이상 근무하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더 괜찮은 곳이 있다면 찾고 싶지 않은 일자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면접날이면 수백 명의 청년들이 콜 센터로 모여든다. 마치 '이런 일자리라도 있는 게 어디냐'며 세상이 우리를 조롱하는 듯하다.
최근 감정노동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감정노동 수당, 진상고객퇴치법, 휴게시간 보장 등 감정노동자들의 처우개선에 대한 사회적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부산시도 콜센터 유치 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인권과 처우개선에도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부산청년유니온은 '고객님 10분만 쉬어도 될까요?'라는 주제로 9월부터 매주 콜센터 노동자의 근무환경을 개선과 감정노동에 대한 인식전환을 위한 한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콜센터 노동 사례를 모아서 사례집을 발간할 예정이다. 릴레이 인터뷰는 콜센터 노동자의 사례집 발간을 위해 시작됐다. 콜센터 노동자 릴레이 인터뷰 연재를 통해 많은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를 바란다. - 기자 주
웃으면서 출근해서 울면서 퇴근하는 일이죠. 그녀의 이야기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생산성'이었다.
한나정(가명 34세)씨. 현재 한나정씨는 일을 하지 않은 지 3년하고도 10개월이 다되어간다. 결혼과 출산이라는 사회적 과정에서 그녀는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살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지난 4년 가까이는 그저 누군가의 부인으로, 누군가의 엄마로 살고 있다. 가능하다면 그녀는 콜센터 일을 하고 싶지도 않고, 일 그 자체를 하는 것도 그다지 원하지 않는다. 이러한 그녀의 생각은 콜센터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인다. 그런 그녀가 콜센터의 일을 생각하면 어떤 기분일까.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기분이 들까.
한나정씨가 인터뷰 내내 가장 많이 쓴 단어는 '생산성'이다. 요즘 어느 직장에서 생산성이라는 말이 거론될 수 있을까. 인터뷰어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꽤나 오래 전의 방직공장이나 신발공장 등을 떠올릴 수 있었다. 육체노동의 현장에서 벽돌 한 장을 더 나르기 위해 애쓰는 노가다꾼의 무거운 발걸음이 느껴지는 단어를 지금 콜센터 노동자로부터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어떤 작업을 통해 생산성을 높여야 하는 것일까.
나정씨는 통신사 인바운드(텔레마케팅의 한 형태로 고객으로부터 온 전화를 콜 센터에서 받아 처리하는 것)로 이 일을 시작했다. 이 일을 2년 정도 지속하다가 점점 높아져가는 직무에 대한 요구로 인해서 이 일을 그만뒀다. 하지만 이후에 또 다른 직장을 구할 때에도 콜센터 일을 그만할 수는 없었다. 나정씨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콜센터에 한번 일하게 되면 콜센터만 돌게 되어 있어요. 여기서 일하면 저기서 일하던 애가 여기에 와있고 그런거죠. (중략) 그러니까 하고 싶다기보다는, 내가 익숙하고, 기본적인 교육을 다 받았고, 알고 있고, 다른 거 하면서 처음 시작하기보다는 이거 계속 하자고 하는 거죠. (중략) 그리고 부산에 워낙 회사가 없으니까. 특히 여자들이 일할 곳은 콜센터가 제일 만만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나정씨의 두 번째 직장 역시 콜센터였다. 하지만 첫 번째 직장이었던 통신사에 비해서 카드사 인바운드 콜센터의 강도는 좀 더 높았다. 통신사에 비해서 금액의 단위가 크고, 고객들이 더 민감하기 때문에 좀 더 치밀하고 조심성이 요구되었고, 친절보다는 정확성이 더 우위에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운이 안 좋았던 건, 두 번째 직장에서 직속 상사의 태도였다. 그 당시의 상사였던 팀장은 상담원이 잘 모르는 정보를 알려주는 역할과 응대가 어려운 고객을 처리하는 역할을 해야 했는데, 이러한 역할을 원활하게 해결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건 인연이라기보단 우연이 좋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그리고 세 번째 직장 역시 나정씨는 콜센터를 벗어나지 못했다. 세 번째 직장은 카드사 아웃바운드(텔레마케팅의 한 형태로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서 상품을 소개하고, 가입을 권유하는 등의 판매기법) 일이었다. 앞선 두 곳의 직장보다 훨씬 더 성과에 연연해야했던 곳이었다고 기억했다.
앞서 나정씨 역시 언급했다시피, 대부분의 콜센터 노동자는 여성이다. 여성들이 일할 곳이 콜센터가 가장 만만하다는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의 노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리고 여성들이 스스로의 노동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한번 고려해봄직 하다.(본 인터뷰의 초점에서 벗어나는 논의이므로 넘어가기로 하자.)
하루 180-200통의 전화, 평균 1분30초의 대화 속에서 그녀가 생각하는 것은, 친절해야한다는 것과 빨리 끊어야 한다는 것, 이 두 가지 뿐이다.
"인입량이 워낙 많다보니까. 평균 콜시간, 콜수 같은 게 있어요. 그래서 그 평균치 이하가 되면, 팀장이 가만히 놔두질 않죠. 많이 받으면 200콜 이상이 되고, 보통 180-200콜을 받았죠. 평균 상담시간은 1분 30초 정도 되구요. 전화가 안 들어오면 못 받는 거죠. 근데 그렇게 되지가 않아요. 무료전화다보니까. 사람들이 다른 데 전화해서 물어볼 것도 114 전화해서 그 쪽으로 연결해 달라는 사람이 많아요. 공짜로 연결하려고. 평균 콜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오전에 느리게 받았다면 오후에는 막 날리는 거에요. 하루에 받는 콜 수를 맞추려고. 한달 동안 그 일을 계속 해야 내가 돈을 좀 가져갈 수 있는 구조에요." 나정씨가 전화를 열심히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은 물론 상사에게서 내려오는 지시도 한 몫을 하지만, 그의 통화가 바로 월급과 연결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150만 원의 기본급에 인센티브를 더해서 월급이 정해진다.
"모든 콜센터가 거의 다 그래요. 거의 인센티브가 좌지우지하고. 자기 실력이 안되면 똑같이 고생을 해도 한달에 백만원 받아가는 사람도 있고. 여기는 인바운드 고객센터니까 기본급이 좀 높은 편이구요. 아웃바운드는 더 적거든요. 기본 100만원 정도."그럼 인센티브는 어떻게 정해지는 것일까.
"인센티브는 직무평가랑 출퇴근, 근태랑 해피콜을 합산하는 거죠. 해피콜은 상담하고 나서 고객한테 만족도 문자를 보내잖아요. 그 고객들 상대로 일부에게 전화를 돌려요. 상담원의 상담내용에 대한 평가를 고객에게 매겨요. 매우 만족-만족-보통-불만족-매우 불만족 이렇게요. 매우 만족이 나오면 점수가 높은 거죠. 이 해피콜이 인센티브에서 비중이 높았거든요. 아무래도 서비스가 강한 직종이다보니. 이렇게 전부 취합을 해가지고는 S,A,B,C,D 이렇게 등급을 나누는 거죠. S급 받으면 200만 원 넘게 받아가는 거죠. 저는 A까지는 받아봤는데, S급을 받아본 적은 없어요." 나정씨의 말에 따르면, 이렇게 등급을 매기는 것은 통신사의 고유한 특징이라고 했다. 친절을 가장 중요시하기 때문에 해피콜과 같은 방식의 평가가 비중이 높다는 것이다. 카드사이고, 아웃바운드였던 C카드의 경우에는 인센티브에 대한 기준이 확연히 달랐다.
"기본 100만원 정도에 인센티브가 등급별로 나눠져 있어요. 모든 직원을 같이 평가를 해요. 친절도보다는, 건수가 더 중요하죠. 얼마나 카드 발급을 많이 했고, 이 카드를 고객이 많이 썼느냐가 중요한 거죠. 판촉행사 중에는, 사용금액을 올리는 행사가 있고 발급건수를 많이 하는 행사가 있어요. 휴면고객 대상으로 전화해서 이번 달에 얼마 이상 쓰면 캐시백 혜택을 줄게 이런 식으로요. 그럼 그 사람들이 많이 쓰잖아요. 사용한 금액만큼 내 실적도 올라가는 거죠. 카드발급도 성공해서 등록하면, 발급성공 이렇게 해서 내 건수에 올라가는 거구요. 그리고 이런 경우도 있었어요. 어떤 고객이 나 이번에 차 살 건데, 이렇게 해서 차를 사면 대박이 나는 거에요. 쓴 금액이 크니까요. 그래서 아웃바운드 카드사 같은 경우는 인센티브의 차이가 엄청 크죠. 잘 받는 사람들은 300만 원 정도, 못 받는 애들은 100-110만원 정도, 저는 중간 정도였어요." 통신사와 카드사에서 인센티브를 매기는 기준은 달랐지만, 기본급에 비해 인센티브의 비중이 크다는 것은 동일하다. 즉 콜센터 상담원들이 전화를 끊임없이 받아야하고, 이에 대한 응대를 기본적으로 쉴새 없이 해야 하는 것이 그들의 업무라는 점이다. 그것이 바로 월급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이 업무의 잔인성을 볼 수 있다.
인센티브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직무평가는 콜센터에서는 공개된 전교 등수 같은 것이다. 청소년시절에 공개되는 성적에 알 수 없는 수치심을 느끼는 이들도 있었을테고, 전혀 개의치 않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공개된 등수는 분명 많은 이들에게 경쟁심을 부추기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러한 방식이 콜센터에서도 매달 이루어진다.
"월급은 공개는 안 되는데, 인센티브 받은 명단은 공개가 되요. 보고 자극을 시키는 방법이겠죠. 다 보라고 사무실 벽에 붙여놔요. S 누구 A 누구 이렇게요. 팀 실적도 같이 붙여놓죠. 경쟁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구조니까." 이렇게 이들은 매달 자신에게 매겨지는 직무평가의 등급을 높이기 위해서 교육을 받아야하고, 시험을 쳐야한다. 그리고 실수가 있었다면 그 실수도 같은 방식으로 공개된다. 실수에도 경중이 있겠지만, "불려가서 완전 혼나고, 교육대상이 되고, 이런 경우가 있었다 만천하에 공개가 되고, 심한 경우에는 퇴사까지" 이루어진다고 한다.
게다가 전국의 교육 과정에서 사례로 발표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물론 이는 익명으로 교육자료에 실리지만, 함께 일하는 대부분 동료들이 이를 알고 이러한 소문은 전국으로 퍼져나간다고 했다. 말하는 직업을 가진 이들의 말이 서로에게 칼이 되는 순간이다.
나정씨는 고용형태에 대한 질문에서 하청회사의 정규직이라는 이야기를 정확하게 했다. 그래서 하청회사의 직원들과의 교류에 대해서 물었다.
"모르죠. 저희는 하청업체의 사장을 만나는 게 아니라. 이력서를 내면, 하청하는 회사 담당직원이 면접 보는 날 와요. 면접장에 와서 예상질문 이런 거 나눠주면서, 연습해라 하는 거죠. 그리고 취업되고 나면 센터의 실장님, 부장님 이런 사람들이니까. 하청회사의 사람들은 전혀 만나지 못하는 거죠."
직접고용을 하지 않는 대부분의 콜센터(아마 모든 콜센터)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서 그리고 이직률이 높은 이 직업에 대한 위험부담을 줄이려는 방법이다. 나정씨도 이 직업을 평생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대부분의 동료들이 그랬고, 처음 함께 입사했던 20명의 동기들 중 지금 현재까지 일을 하는 사람은 단 한명이라고 했다. 그 한명도 여러 번의 이직을 했고 현재는 보험사 아웃바운드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 직장에서 머무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 것이다. 이러한 점은 직접고용의 형태로 바뀐다면 이 직업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는 것에서부터 콜센터노동자들의 생활도 달라질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불가능할 수도 있다.
나정씨에게 콜센터 업무에서 힘든 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물었다. 쉴 수 없다는 점을 제일 먼저 이야기했고, 그리고 NCSI지표 평가 시기가 오면 만사를 제쳐두고 이에 대한 대비로 긴장감이 올라가는 이야기를 했다. 또한 통신사의 경우 직무교육의 강도가 너무 강해서 이에 대한 고충을 이야기했다.
"힘든 점은 쉴 틈이 없다는 거에요. 정말 기계 같아요. 인바운드, 아웃바운드 모두 생산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니까. 쉬는 시간이 정해져있거든요. 점심시간을 빼고. 인바운드는 오전에 팀별로 20분, 오후에 30분 하루에 1시간 정도 쉬는 시간을 줬던 거 같고, 아웃바운드는 오전에 10분, 오후에 20-30분 정도였어요. 그거 이외에 자기가 잠깐 쉬는 거는 휴식 걸어놓고 화장실 갔다 오는 건데, 그게 길어지면 팀장이 독촉을 하죠. '뭐하느냐. 일해라. 니 때문에 생산성 떨어진다.' 왜냐하면 팀원들의 실적이 팀장들의 실적이 되는 거고, 센터의 실적이 되는 거죠. 계속 위에서부터 압력이 내려오는 거죠. 진짜 기계부품처럼. 쉴 틈이 없죠." 이렇게 개인적으로 휴식시간을 갖는 것에서부터 업무 중에도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여유시간을 갖기도 쉽지 않다.
"전화를 끊고 나서 느긋하게 처리할 시간이 주어지지가 않거든요. 그래서 입사초기부터 교육을 하는 게, 받으면서 처리를 하고 있고, 말하면서 하고 있고, 등록도 바로바로 할 수 있게 하는 거죠. 전화를 끊으면 바로 다른 전화가 와서 받고 끊으면 바로 연결되고, (중략) 버튼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휴식 버튼을 누르면 저한테 전화가 인입이 안되요. 근데 이럴 때 휴식 같은 거는 모니터에 표시가 되거든요. 그러면 팀장이 다 모니터를 하고 있죠. 얘가 휴식이 너무 길다. 문서작성 이렇게 표시되어 있으면, 팀장이 '문서 길다 풀어 전화 받아라.' 이렇게 그러면 '팀장님 이것만 하구요' 이렇게 되고, 그러면 이거 풀고 전화 받고 하는 거죠."NCSI는 업계 1위 기업들에게는 절대적인 지표인 듯하다. 앞선 인터뷰에서도 업계1위를 지키기 위한 기업내부의 노력은 절대적이라고 했다.
"NCSI에 목숨을 걸거든요. 절대 2위 업계에 지면 안된다. 그 기간이 되면 비상이 걸려요. 그 때에는 사정 봐주는 거 없고, 무조건 앉아서 친절하게 콜을 받으라고 하죠." 나정씨는 이 때에는 아파서도 안된다고 했다. 보통 시에도 조퇴는 꿈도 못 꾸는 형편인데, NCSI 시기에 아프기라도 하면 조퇴는커녕 병원에 다녀오는 것도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이때에는 사람이기를 포기해야할 듯 싶다.
콜센터 노동자들의 힘든 점을 극복하기 위해선 어떤 일이 먼저 이루어져야 할까.
"너무 많은데요. 콜센터에서 개선을 해야 할 것은, 직원 충원이 필요하다는 거죠. 직원이 적으니까 그만큼 지금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쉴 틈도 없이 일을 해야 하는 것 같고. 아무래도 자기들 인건비 줄이려고 그러겠지만, 일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고통분담을 해야 하니까. 모든 게 생산성 그것 때문에 비롯되는 것 같은데, 또 직원을 충원해서 늘려주면 어느 정도 여유도 생길 것 같고 덜 힘들 것 같은데." 나정씨의 이야기처럼 직원을 충원하는 것이 개개의 노동자들의 업무의 양을 줄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직접고용 조차도 꺼리는 원청회사에서 인원을 충원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인원을 충원한다는 것은 그 인원만큼의 비용지출이 발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정씨가 제시한 이 일은 불가능한 것일까.
그리고 나정씨는 "NCSI라는 평가에 너무 목을 메는 거에요. 절대적인 지표처럼."라고 했다. 하지만 NCSI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고객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이지 않을까 싶다. 시험 때 벼락치기를 하는 친구들처럼 기업도 이 평가시기가 되면 벼락치기라도 해서 좀 더 나아지고 싶은 것이지 않을까. 하지만 좋은 평가를 얻는 과정이 노동자를 착취하고 압박하는 과정과 동일하다고 한다면, 그 평가지표는 수정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지.
나정씨가 기억하는 좋은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A통신사에 입사하고 얼마 안되었을 때에요. 서울에서 사업하시는 나이 많으신 분이랑 통화가 되었는데, 전화하면 멘트 나오는 거 있잖아요. '전화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이 서비스를 등록해달라고 하면서, 제가 녹음을 해달래요. 처음에는 팀장님이 그런 거 해주면 안된다고 하셨어요. 왜냐하면 그런 걸 한번 해주면 너도나도 다 해달라고 하고, 우리가 일할 시간이 없어진다고 말이죠. 근데 그 분이 강성으로 해달라고 하셔가지고는, 제가 한 3-4번에 걸쳐서 계속 해드렸어요. 마지막에는 고맙다고 하셨는데, 며칠 있다가 부산 내려 오셔가지고, 지점에 직접 오셔선 고맙다고 하시면서, 화장품을 선물로 주시는 것이에요. 센터에서도 처음에는 말렸는데, 잘했다고 하셨구요. 센터장이랑 사진 찍고, 친절상담원이라고 하면서 사진 찍고 그랬죠. 그렇게 생각해서 직접 사들고 멀리서 오셨다는게 너무 감사했었어요."국문학을 전공한 한나정씨는 학교를 꽤나 오래 다닌 편이다. 그리고 졸업할 즈음이 되었을 때, 그녀는 굉장히 막막했다. 국문학을 가지고 일을 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일을 찾을 것인가에서부터 어떤 일을 할 수가 있을까 하는 것까지. 지금의 대학생들이 가지는 그러한 고민을 그 당시의 그녀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약 10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도 비슷하다. 당시 그녀가 선택한 것은 병원코디네이터라는 직업이었다. 당시에는 이 일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던 때라, 나정씨 역시 이 일을 한번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일에 대해서 알아보던 중에, 고가의 학원비가 들어가는 수업을 들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12년의 정규교육에 이어서 대학까지 졸업한 대부분의 청년들이 겪는 상황이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가 받은 교육이라는 것이 우리의 미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통과의례였던 것이다. 이 교육을 통해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 그렇다고 우리가 이 교육을 통해서 제대로 된 어른이 된 것도 아니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