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영국 BBC 원(One)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흥미롭게 봤다. 제목은 '다시 걷기 위한 파노라마(Panorama's To Walk Again)'였다. BBC 원의 다큐멘터리 '파노라마(Panorama)'의 한 에피소드였다.
이 에피소드는 척수손상 환자가 최초로 자가 세포 이식을 통해 걸을 수 있게 되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BBC의 관련 뉴스와 해당 다큐멘터리를 보고 한국에 있는 친구들도 나에게 연락을 해줬다. 몇몇 언론사에 의해 기사화도 됐다. 그만큼 이 사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확대되고 있다.
BBC 다큐멘터리의 놀라운 내용... 우리 아들도 걸을 수 있을까
나는 8살의 척수손상 환자를 아들로 뒀다. 그렇기에 BBC 다큐멘터리의 주인공 환자인 다렉 피디카(40)씨의 이야기를 꼼꼼히 봤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몇 가지 주목해야 할 팩트가 나온다. 우선 재생기능을 가진 자가 세포(Olfactory Ensheathing Cells)를 적출하여 척추에 이식한 첫 번째 케이스라는 점이다.
두 번째는 이 케이스가 상당히 의미가 있다는 점이다. 그간 비슷한 케이스가 몇 차례 주목을 받긴 했지만 상당히 이례적인 경우라 일반화하기 어려웠다. 이 케이스 역시 바로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이번의 경우는 '세포 재생'을 통해 끊어진 척수신경을 연결했다. 상당히 의미 있는 움직임과 근육의 동반 재생을 이끌어냈다.
이 연구를 맡은 의사는 "달 표면을 걷는 사람을 보는 것만큼 감동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분명 놀라운 과학적 발견이다. 이 연구의 향후가 기대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특히 척수손상환자의 엄마로서 무엇보다 내가 더 관심 있게 바라본 부분이 있다. 하나는 두 과학자의 결합이 있었다는 점이다.
영국의 한 과학자는 세포의 재생을 통한 척수신경의 회복을 연구하던 중이었다. 쥐 실험에 성공한 후 적당한 임상실험의 대상자를 찾고 있었다. 지난 2005년 이 과학자의 연구에 매료되어 있던 폴란드의 한 학생이 컨퍼런스에서 그를 만나 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당시 대화는 1분도 안 되어 끝이 나 버렸다.
그리고 5년 뒤, 세포 재생에 매료되어 있던 폴란드 학생은 의사가 되어 병원에서 일하게 됐다. 피곤했던 하루, 그날의 마지막 환자와 만나면서 다시 놀라운 실험을 떠올리게 됐다.
"그래 바로 이 사람이야."그는 등을 여러 차례 칼에 찔려 가슴 아래가 마비된 환자였다. 사고를 입은 지 불과 1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무척 밝고 긍정적인 세계관을 가진 이였다. 무엇보다 재활의 의지가 무척 강했다. 폴란드 의사는 이 환자를 보면서 5년 전 연구의 가장 이상적인 임상실험 대상자라고 결론 짓는다. 이 환자가 바로 다렉 피디카씨였다. 그 때부터 세계를 놀라게 할 세기의 실험에 영국인 과학자와 폴란드 의사의 협업이 시작됐다.
한편, 11년 전 18살의 나이에 치명적인 척수사고를 당한 아들을 둔 요리사 아버지가 있었다. 영국의 한 호텔에서 일을 하는 이 아버지는 병마를 극복하고 재활을 위해 힘쓰는 아들을 보며 자선단체 설립을 결심한다. 척수손상환자를 위한 연구기금조성을 목적으로 한 자선단체 말이다.
요리사인 아버지는 근사한 요리를 만들어 숟가락을 사용하지 못하는 아들의 입에 직접 넣어줬다. 호텔 음식 서비스 관련 최고책임자인 그는, 일을 하는 틈틈이 아들을 돌보면서 자선재단 설립 준비에 직접 나선다. 그리고 그렇게 조성된 기금이 이번 연구에 사용된다.
아들에게 언젠가 반드시 걷게 해주겠다고 했던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는 실험의 모든 과정을 지켜봤다. 이 아버지는 "아들의 미래가 희망적"이라고, "의지를 버리지 않고 꾸준히 두드린다면 어떤 문은 나를 위해 열릴 것"이라고 담담히 말한다.
아들이 다시 걷는 꿈... 헛된 망상은 아니겠지요
다렉 피디카씨가 기구에 의지한 채 다시 걷는 모습을 영상으로 지켜봤다. 나 역시 내 아이가 언젠가 걸을 수 있다고 믿는다. 기적을 꿈꾸는 것이 아니다. 헛된 망상도 아니다. 과학과 의료기술의 진보가 내 아이에게도 기회를 줄 거라고 믿는다.
분명 이번 실험은 주언이의 몸이 낫는 데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서는 희망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번 실험을 보면서도 흥분도 하지 않았다. 아이가 낫게 될 것이라고 의심한 적 역시 없기 때문이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치료를 받을 '기회'와 '비용'에 대한 문제다. 하루라도 빨리 아이에게서 '장애'라는 멍에를 제거해주고 싶은 엄마의 심정이다. 어떻게 하면 내 아이가 치료의 기회를 가질 수 있을지 궁금하다.
꼭 그들이 아니라도, 꼭 지금이 아니라도 좋다. 다만 아이 몸의 변형이 너무 심해져서 어떤 실험도 불가능해지기 전에 '기회'가 닿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리고 '비용'의 문제가 있다. 만약 임상실험 대상자라면 비용을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이 치료가 상용화되었을 때 과연 그 치료비용을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
자선단체가 일반화된 영국사회에서는 생각보다 넓은 범위에서 이런 수혜가 가능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적용이 쉽지 않은 사회적 시스템, 장애인 당사자와 그 가족들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전가하는 안타까운 시스템이 존재한다.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잠깐 눈물을 흘렸던 부분은 다렉 피디카씨가 스스로 한 발짝씩 떼기 시작한 드라마틱했던 그 장면이 아니었다. 자신의 아들을 위해 자선기금을 마련하고 실제로 이번 연구가 가능할 수 있도록 아들과 함께 해냈던 요리사 아버지의 이야기에서였다. 정말 감동적이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어쩌면 역사의 발전과 자연스럽게 같이 가는 부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달나라 토끼 얘기처럼 멀게만 느껴지는 치료의 기회, 그리고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비용의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우리 사회도, 내 아이에게도 아직 많이 요원한 일이다. 그래도 꿈꾸어본다. 포기하지 않고 희망도 잃지 말고 꾸준히 두드린다면 어떤 문은 열릴 거라고 그가 말했으므로….